SO-SO 한 이야기 (7)

by 시야

SO-SO 한 이야기 (7)

설명절이 다가왔다. 오늘은 모두 전을 부치고 음식을 장만하느라고 분주한 날일테지. 여성들은 설날도 되기 전부터 명절증후군에 시달린다는 웃지못할 농담을 한다.

우리 집은 이미 오래전부터 명절과 제사를 간소화 정도가 아니라 일상과 다를 바 없이 지내기로 하였는지라 나는 설명절만 되면 할 일이 없다. 아이들에겐 고기 가득 넣고, 김치 듬뿍 넣어, 갓 만든 손두부로 김치찌개 한 솥을 끓여주었다. 아들이나 딸이나 젓가락 들고 고기수색한다고 밥상이 소란스럽다. 찌개하나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배부르게 밥 먹는데, 왜 그리 음식만드는 일에 에너지를 써대는지 나는 사실 내 에너지를 그렇게 소모하고 싶지 않다. 밥 한 끼 해준 걸로 내 소임은 끝났다. 나머지는 알아서 할 것을 명하고 집을 나섰다.

내겐 갈 곳이 생겼다. 나만의 곳.

아름다운 소야에 사드가 배치된다고 확정하던 날, 나는 이곳 소야로 달려왔다. 소성리의 옛이름 소야, 아름다운 들판이라는 이름만큼이나 마을은 평화로웠고 마주 보이는 달마산 능선이 이어진 산줄기가 넓은 한복치마폭 마냥 마을을 감싸고 돌아 포근한 느낌이었다.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옥들과 뒷동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의 나무와 작은 텃밭들, 풀벌레들소리가 정겨워서 눈물이 났다. 이렇게 작고 아담한 시골골짜기 마을에 사드가 들어오다니, 나는 이곳에서 꽤나 오랜세월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운명적인 예감을 했었나보다.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유난히 눈에 띄는 하얀 집, 2층 옥탑방.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거 같은 느낌. 빈집일거 같은 예감. ‘내게 저런 방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을 일깨워주었다. 꿈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그 방을 얻게 되었다. 소성리마을이장님 덕분에 집주인이 애지중지 귀하게 자신의 휴식처로 쓰던 방을 내게 빌려주었다.

나는 나의 집필실로, 작업실로 쓰고, ‘소야의 비트’라 부른다. 알고보면 낮잠자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달마산의 바람은 시원했다. 나의 비트를 둘러싼 나무들이 바람에 부딪히면서 파장을 일으켜 더 시원했는지도 모른다. 더운 여름날 내 방 아랫비탈에 만들어진 달구집, 목청 좋은 달구들은 매일 죽어갔다. 이제 세 마리만 남아서 돌아가면서 고함을 질러댄다. “꼬끼오 꼬꼬댁꼬꼬” 그러면 앞집의 달구가 화답을 하듯이 “꼬꼬땍 꼬꼬끼오” 하며 달구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대화소리는 무척이나 시끄럽다.

가을공기는 읍내보다 빨리 차가워졌다. 보일러는 고장이었다. 세를 받지 않는 주인에게 보일러를 고쳐달라고 할 염치는 없었다. 고치려고 해도 답이 안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반짝반짝거리는 새 스텐 보일러를 설치했다. 기름 한 드럼 넣어두고는 올겨울 추위를 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영하 10도이하의 강추위 속에서 나의 스텐보일러는 힘차게 돌아가도 13도를 넘어서지 못했다. 방바닥에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도 추워서 벌벌 떨었다. 내가 난방준비가 서툴렀을까?

살림살이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는 글방으로 쓰겠다고 했던 처음 계획대로, 나는 매일 소야의 비트로 출근한다. 나의 작업실이자, 직장인 셈이다.

탁자와 노트북만 있으면 되었다. 마실 물 정도는 준비해야했고,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커피포트를 샀다. 커피말고도 차종류가 하나둘씩 모였다. 평화장터 덕분이었다. 누가 오더라도 차한잔 대접할 수 있게 되었다. 청소도 한 번씩 해야 할테니 청소기도 장만했다.

무엇보다 꽤나 긴 시간 이 곳에서 읽을 책들, 읽지 못했던 수많은 책들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한권 한권 책을 읽을 때마다 욕망은 한없이 더 커지는 듯 새로운 책들을 원했다. 책들이 쌓여가고, 때로는 이곳에서 잠들기도 했다. 이불과 베개도 필요해졌다. 깜빡 잠이 들면 포근해서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달구들이 울지만 않으면.

책꽂이를 만들어야겠다는 고심 끝에 방법을 찾았다. 벽돌을 기둥삼아 나무판자로 간이책꽂이를 만드는 것이다. 경산의 공방하는 지인께 나무판자를 부탁했고, 나는 벽돌공장을 찾았다. 황토벽돌 한 장에 13킬로그램이었다. 돈은 1300원 정도였다. 한 40장은 살 계획이었는데, 13킬로그램 짜리 황동벽돌을 이고지고 나를 자신이 없었다. 12장을 샀다. 13킬로그램짜리를 한 장씩 12번을 2층까지 오르락 내리락 거렸더니 온 몸에 땀범벅이고, 팔다리가 후들후들 거렸다. 황토벽돌을 한지에 싸서 쌓으면 흙먼지가 덜할텐데, 게을러빠져서 그냥 대충 모양을 냈다. 사 모은 책을 꽂아놓으니 갑자기 내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 듯이 행복에 젖었다. 책꽂이에 꽂힌 책만 봐도 배가 불렀다.

기분이 좋아져서 페이스북으로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책을 빌려달라고도 했다. 어떤 분은 책을 빌려주시기도 했지만, 책을 직접 사서 택배로 보내주시기도 해서 누군가에겐 민폐가 되기도 했다. 민폐일망정 무척이나 고맙고 따뜻했다. 추천받은 책은 목록을 만들어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강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채식주의자’. 한나절만에 세편의 연작소설을 잠시도 쉬지 않고 숨을 죽이면서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맨부커상은 아무나 타는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강의 문장이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설의 소재가 너무나 이색적이고, 구성이 재미졌다. 내가 단번에 책을 읽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한 20여년전 조정래작가의 태백산맥을 읽을 때, 아이랑, 한강을 읽을 때 그랬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고 또 읽고, 시간만 나면 드라마 연속극을 보는 것보다 더 재미나서 책을 읽고싶었던 적이 있었다. 주로 장편소설이었다. 박경리작가의 토지도 그랬다. 그 기나긴 이야기를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손에서 떼지 못했던 때였다. 그 때 나는 문학아가씨였었구나. 갓 스물안팎에 거장들의 장편소설에 빠져있었으니, 그리고 나서 그렇게 재미나게 책을 읽었던 기억이 없다. 주로 사회과학서적이나, 노동조합에 관련된 자료집을 보다보니, 어느새 내 안에 샘솟는 문학적 감수성은 말라버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랬다. 한강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책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이후 글을 쓰지 않았다. 그날부터 노트북을 열지 않게 되었다. 한참을, 그리고 책읽기에 더 빠져들었다.

소설에 빠져들었다. 읽고싶어서 몸이 달았다.

그리고 계속 고민했다. 내가 이 방에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소야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평화장터에서 하는 일 외에는 모든 시간을 소야의 비트로 옮겨왔다. 그리고 나는 왜 쓰는가?를 묻고 또 물었다. 아직은 답을 구하지 못했지만, 쓰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무엇을 쓰던, 어떻게 쓰던, 그것이 무엇이든, 아직은 답을 구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수년동안을 이렇게 살아도 행복할거 같다.

내게 소야의 비트가 가장 큰 보상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헌신하고 희생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미 큰 보상을 받은 셈이다.

나는 이곳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그것만큼 더 큰 보상이 어디있겠는가?

이곳의 삶이 기쁠 때가 많은 이유.

2018년2월15일 설명절 전날 나의비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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