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공 청소년노동자의 죽음

by 시야

그녀에게 물었다

“왜 시를 쓰고 싶나요?”

그녀는 시가 좋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당신은 뭘 하고 싶으신가요”

나는 다음 생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침 sns에서 접한 소식은 서울메트로 지하철 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살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었는데, 안 들렸는지, 나는 그들이 뭐라고 떠들어대는지 내 머릿속은 텅텅 비어가는 듯 했다.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사건이 이게 처음이 아닌 듯 한데,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스크린 도어는 하청노동자에게 죽음의 현장이 되어버렸다.

반복되는 중대재해 사고가 이 사회의 노동자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감각은 점점 무뎌져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무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걱정과 불안을 뒤로한 채 하루를 또 살아남았다.

세월호 학살로 전 사회가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서 슬픔에 젖어 산 지도 이년이 넘어섰고, 그 사이 대한민국은 안전한 사회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눈물과 울부짖음의 세월이었건만 여전히 노동현장에서는 매일같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쏟아져나온다.

죽음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노동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인간의 존엄이 최고의 가치여야 한다고 목놓아 외쳐댔건만 이 사회는 여전히 구성원들을 하청노동자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시키고 현장실습생이라는 온갖 구질구질한 명찰을 덕지덕지 목에 매달아 노동자들을 죽이고 있다.

그들의 죽음앞에 나는 망연자실했다.

하루를 살아남고 그 다음 하루를 살아 남기 위해 몸을 움츠린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부었다. 속이 좀 후련해 지려나 했지만 눈물은 좀체 멎질 않는다.

열아홉살이라는 어린나이의 노동자라서 가슴이 더 저몄는지도 모르겠다. 열아홉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인데 내 아들이 그곳에 있을거 같은 충격에 휩싸였던가보다.

나는 내 아들과도 같았을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곧 내 아들이 당할거라는 공포가 나를 떨게 한다.

다시 이런 일을 대면하고 싶지 않다고 그 많은 날 되뇌이며 다시는 노동자들의 죽음앞에서 넋놓고 싶지 않다고 해왔는데, 그들의 죽음에 추모하지 않고 투쟁하여 세상을 바꾸자고 해왔는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사회는 너무나도 비정하기만 하다.

현장이 하나같이 열악하고 환경이 엉망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학생들을 취업시켜야 하는 것도 학교의 책임이 있다는 선생님들의 고민이 무엇이든간에 학교당국의 고충을 우선 헤아려줄 수는 없겠다.

취업이 안 되서 모두가 실업자로 시간을 보내야 할 지라도 사람이 죽어가는 현장에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게나 보내지는 것은 단호히 거부할 것을 요구해야겠다.

내 마음 편하자고 울고 있는 나는 한없이 무기력한 존재이고,

그의 죽음은 너무 아프고, 슬프다.

지금 살아남은 나는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슬픔에서 헤어나야겠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세상이 변하길 원하지 않는다.

다음생에 다시 태어나서 무엇도 하고싶지 않다.

지금 살아남은 나는 살아가는 동안 인간다움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나고싶다.

여성을 살해하고, 노동자를 살해하며 피도눈물도 없는 이 야만의 세계를 버텨내는 것도 운동이라면,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고, 야만과 혁명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당연히 혁명을 선택해 갈 것이다.

살해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나는 투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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