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소리

2018년5월18일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5월18일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아침기도회는 마무리 했다. 38년 전 518광주 민중항쟁의 끔찍한 악몽은 가시지 않았다. 사람들은 잊지 않겠다고 하고, 기억하겠다고 한다. 가장 좋은 기억방법은 현실의 저항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리라. 정신을 기념비 속에 가두지 말라. 부정하고 타락한 정치에 맞서 민주화를 염원하며 투쟁했던 저항의 시간들을 행사로 전락시키지 않길 바란다.

현실은 여전히 518이고, 세월호다. 과거의 원혼들이 편안히 쉴 수 없다. 우리네가 살아가야 할 땅은 탐욕으로 살찐 제국의 앞잡이들이 득실거려 몸살을 앓고 있으니말이다.

무기장사로 재미보는 미국을 위해 애쓰는 한국경찰들은 내 등 뒤로 한 줄 정도 서있다. 대다수는 햇볕을 가릴 천막을 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내 등뒤로 들려오는 경찰들의 잡담, 핸폰기계소리, 내가 앉은 진밭교위에서 대각선으로 마주보이는 곳에도 천막을 쳐서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를 했다. 여경들이 한 켠에 앉아있고, 의경들이 앉았다. 마치 봄소풍 나온 중딩들처럼 여성들 한무더기 떠들어대고, 남성들 한 무더기 떠들어댄다.

아침일찍부터 진밭으로 향할 때면 하루일과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한다. 아침기도회를 마치고 공사차량과 건설노동자들이 출근할 시간에 맞춰 공사저지 피켓팅을 한다. 출근차량이 진밭을 통과하자마자 수많은 경찰들은 쏜살같이 진밭을 빠져나가고, 일개 중대 정도 진밭교에 남아 수시로 교대근무를 서는 듯 하다. 진밭재 경찰초소로 2부 기도회를 하고나면 우리선수들도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서 마을로 내려간다.

원불교 진밭교당이 있고, 교무님이 진밭을 지킨다. 나는 나대로 진밭에 머문다. 원불교는 법전을 읽고, 개신교는 성경을 읽고, 나는 인디언 연설집을 읽고 기도한다. 하루에 한편씩 연설문을 읽으면서 마음을 경건히 한다. 자연과 나, 자연의 일부인 나, 대지에 대해서 인디언들의 철학이 있는 연설문은 내게 아주 좋은 교안이 되고 있다.

마음먹었던 토지를 읽고, 내가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시집을 꺼내들어 시 몇 편을 읽기도 하고, 시를 외워보기도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릴케의 시도 함께

오늘은 오키나와를 다녀와서 오키나와에 관해 좀더 알고 싶어한 내가 읽기로 다짐했던 ‘오키나와의 눈물’을 읽었다. 얇은 책자라 하루만에 다 읽을 수 있을거라 여겼다.

진밭교는 나무그늘이 햇볕을 가려주고, 산바람이 피부를 시원하게 할 거 같지만, 내가 앉은 자리는 차량이 지나는 위치라 햇볕을 그대로 맞아야 하고, 경찰들이 등뒤로 나란히 줄서 있어 바람의 통로를 막아버렸다. 풀벌레소리, 새소리, 꽃들과 나무들의 대화소리, 자연의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힐거 같았지만, 경찰들의 잡담소리가 자연의 소리를 다 먹어버렸다.

경찰들끼리 잡담은 주로 아내를 험담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돈 얘기나 게임이나 뭐 그렇고 그런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의 집산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등 뒤로 들려오는 나이지긋한 남자의 목소리

“여기도 근무서는건데, 의경들은 핸드폰 없이 있자나 핸드폰도 메시지나 오면 살짝 확인하고, 사사로운 잡담도 좀 그만하고, 근무서는거니까 너무 노는거처럼 있으면 곤란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뉘신지 옳은말씀인지라 돌아앉은 내가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진밭에서의 적들과의 동침, 경찰들의 소음에 진저리가 쳐진다. 진밭이 결코 독서환경이 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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