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스물세장

진밭일기 2018년6월17일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6월17일

강남 갔던 제비 말고 강릉 갔던 패독이 돌아왔다. 한 달 남짓 소성리를 떠나있는 동안 봉정할배는 오전 동안 홀로 소성리평화마당을 지켜야했고, 매일 11시면 평화백배를 하는 교무님의 목탁장단에 맞춰 깊이 고개 숙여 백배를 올렸다. 봉정할배의 술친구이자 이야기동무였던 패독이 없는 외로움이 주름살 깊숙이 패여 있는 듯 보였다.

패독이 돌아왔을 때 가장 기뻤을 사람은 아마도 봉정할배였을거 같다.

아침 일찍 공사저지 피켓팅을 하러 진밭에 올랐을 때, 언제나 그랬듯이 패독은 길쭉한 카메라지지대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일단 한 사람이 더 늘어서 기뻤다. 패독이 우리 소성리패밀로 합류한 게 실감났다. 진밭에서 카메라 촬영을 하고 있으니 뭔가 우리 진밭지킴이 활동이 좀 있어보여서 어깨가 으쓱거렸다.

패독이 머물고 있는 참새집은 패독이 없는 동안 돌보는 이가 없어보였다. 강릉으로 떠나기 전에 뿌려놓았던 상추가 싹을 틔우고 이파리를 여러 장 키웠는가보다. 패독이 내게 귀하디 귀한 상추 스물세 장을 선물로 주었다. 상추 스물세 장이면 공기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양이다. 그 귀한 상추를 내게 주시니 감동으로 가슴이 벅찼다. 그 바람에 소성리평화장터에서 판매하는 귀한 약초쌈장을 한 병 주겠노라 약속해 버렸다. 약초쌈장으로 말하자면, 약초언니가 와송된장을 7년이상 묵혀놓아 약성이 아주 좋은데, 국산재료로만 만든 약초고추장과 약초효소들을 듬뿍 넣어서 만든 쌈장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재료로만 엄선해 만든 고급쌈장이지만, 메이크가 아닌 관계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 어려운 점이 있다. 암튼 쌈장을 주겠노라 해놓고는 마음이 살짝 변덕이 죽 끓듯이 끓는다. 팔아야 쓰는 물건을 다 퍼주고는 뭐해서 장사하고 수익금을 만드나? 투쟁기금은 어쩌나? 내 돈도 아닌데, 일단 퍼주고 말어? 뭐 요런 속좁은 고민을 하는데, 패독이 불쑥 “약초쌈장은 언제 줘?” 하고 묻는다. 약초쌈장을 꼭 드실거유? 그냥 쌈장도 많은데? 하면서 스리슬쩍 넘어갈라는데, 패독은 약초쌈장이 몸에 좋은거 아냐? 하고 불쑥 들어온다. 이쯤 되면 안 줄래야 안 줄 수 없을 듯 하다.

그렇게 백만년만에 참새집에 들러 맥주마시는 자리에도 끼여서 어울렸다.

패독이 머물고 있는 참새집은 연대자들의 숙소였다. 소성리에 사드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접해지자, 소성리로 모여들 연대자들이 머물 공간이 시급했다.

처음 소성리로 찾았을 때 연대자들이 모여들면 마을회관에서 잠자고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마을주민들게 여러모로 민폐가 될 수 있어서 연대자들 숙소를 마련하자고 했었다. 이장님은 빈집을 알아보았고, 마침 참새방앗간 사장님네 집이 빈 채 있어서 빌려주기로 했다. 처음 집을 빌렸을 때 연대자들과 집청소를 한다고 청소도구와 재료를 사서 먼지를 털고, 쓸고 닦고 집다운 모습을 만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참새방앗간 사장님은 자신들의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는 안채 방은 내줄 의향이 없었고 본채만 사용키로 이야기 했었다.

그런던 어느 날, 소성리로 찾아온 영화감독이라는 사람이 참새집에 둥지를 틀었다. 짐을 두고 생활하기 시작했는데, 참새사장님을 얼마나 잘 구워삶았는지,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참새사장님이 자물쇠를 열어 안채를 쓰게 해 준거다. 그 때 패독을 알아봤었다. 보통 실력자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의 마음을 스르르르 녹이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내 마음을 스르르르 녹이고 있는걸까? 난 갑자기 강릉에서 돌아온 패독을 다시 만나 반가운 마음을 너무 과하게 표현하다보니 아끼고 아끼는 소성리평화장터의 약초쌈장만 준게 아니라 오이모종에 방사닭들의 달걀까지 너무많은 선사품을 받치고 있다.

이제 소성리에서 함께 시간은 쌓여가고 있다. 처음의 어색한 만남으로 불편하고 어려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이었다. 사드를 제3부지로 밀어낸 군수에게 항의하러 군청을 쳐들어가던 날 우리를 따라왔던 패독이 영상촬영만 하는게 아니라 경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다못한 나는 끝내 싫은 소리를 해댔었다. 다행히 나이는 많지만 신사다운 패독이 내게 따지기 보단 그러겠다면서 경찰들 사이에서 멀어지는 바람에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한동안 패독이 내게 품은 서운한 마음이 왜 없었을까? 이제야 말할 수 있다. 두고봐라 하는 심정이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패독만 그랬을까?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만나서 오해와 갈등으로 반목하고, 평행선을 달려왔던 시간은 또 한편 함께 고생하고 아팠던 시간으로 쌓이고 쌓여서 안 보이면 궁금하고, 빈구석은 더 크게 느껴진다.

소성리 이웃들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 성낸 기억보다 웃고 행복했던 기억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 그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소성리평화지킴이들 모두 사랑합니다. 오랫동안 함께 이웃하면서 행복하게 지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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