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지 않을께요.

진밭일기 2018년6월18일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6월18일

“만지지 않을께요. 옆으로 나오세요”

공사인부를 태운 차량이 서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 두 팔을 쭉 뻗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내 뒤로는 평화행동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다가 ‘사드가고 평화오라’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의자 끌리는 소리며, 우왕좌왕 하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경찰들이 충분히 항의행동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으니 이제 옆으로 비켜달라고 하기 시작한 거다. 그에 맞춰 나를 밀어내려는 여자경찰이 나름대로 예의를 갖춰 한다는 말이 “만지지 않을께요. 옆으로 나오세요”라고 했던거다.

만지지 않겠다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뭘 안 만지지 않겠다는 거지? 뭘 어떻게 하면 만지겠다는거지? 언어가 주는 소름끼치는 불쾌감, 그녀는 내게 “터치하는 거 안 좋아하시는 거 같아서, 그냥 옆으로 나오라고 한거에요”라며 엄청 예의를 갖춰 나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만지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지금 안 나오면 너를 만져대고 말거다 라는 환청으로 들리는 이유는 뭘까? 하도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마침 공사를 시작할 당시부터 ‘4400’트럭을 몰고 다니는 공사인부가 목청이 터져라 공사하러 오지 말라는 마을주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리기 보다 비웃음으로 비수를 꽂았던 일이 여러번 있었다. 몇 번을 경고하고, 사과를 받고 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며칠 전 또 그랬나보다. 매일같이 무한반복되고 있는 평화행동에서 얼굴을 마주치고 있는데, 기분 나쁜 비웃음을 당하면서 가만 있을 사람 없을테고, 급기야 오늘은 공사인부를 잡아내기로 했다. ‘4400’트럭은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 차를 타고 들어오는 모양이다. 비굴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그럴거면 처신이라도 똑바로 할 것이지, 결국 잡아낸 모양이다.

그 사람은 못 올라가고 내렸다는 말을 듣고서 여자경찰이 원하는 대로 옆으로 비켜주었다. 말은 안 만지고 몸이 서로 대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공사차량이 들어가고 피켓을 공사차량에 좀더 가까이 보이려고 애쓰자 몸으로 막아서고, 내 몸에 그녀들의 팔이 대이고 몸이 밀치면서 대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만지지 않을께요” 라는 말은 소름끼친다. 당연히 사람 몸에 손을 대면 안되는거지.

며칠 전 문자한통이 날라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성주서 정보과 근무하는 000순경이라고 합니다... 아침에 가끔 근무설때마다 선생님의 감동적인 연설 잘 듣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혹시 ‘NO THAAD' 반팔티셔츠 재고가 있는지 싶어서 연락드립니다. .. 혹시 재고가 있으면 2장만 좀 구입할 수 있을지요?”

성주사드기지로 올라가는 길목인 진밭에서 매일같이 평화행동을 하다 보니 경찰들 눈에 많이 띄었겠지만, 내게 이런 문자까지 보낼 거라 상상한 적 없었다. 경찰과 개인적인 친분을 가질 일 없다. 물론 그들은 나에 대해 정보수집을 하고 있겠지만, 문자를 보는 순간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아주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문자뿐 아니라 카톡까지 보낸 걸 봐선 이 놈의 정신이 온전한가 싶을 정도로 의심스러웠다.

마음 좋은 종교인들은 경찰들을 제복 입은 평화시민이라고 칭하고 그들을 교화시키기 위해서 매일 아침이면 경찰들을 대상으로 소양교육을 시킨다지만, 분명한건 진밭을 지키고 선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도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위한 공익적 성격을 띤 공무수행을 벌이고 있는 경찰이 아니다. 정권과 자본을 대신해서 민중들과 대리전을 펼치고 있는 또 다른 총자본의 하수인이고, 권력의 집행관이다. 그들이 있어서 사드공사는 국방부의 시계소리에 맞춰서 척척 진척되고 있다. 그들이 연로한 할매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릴망정 이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서 상명하복 의 위계를 거스르는 따위의 불복종할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깨어나려면 최소한 경찰조직 내에 공산주의 경향성을 가진 저항세력이 형성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철옹성 같은 권력구조에 균열을 낼 만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말이다. 여순반란 사건 같은 역사적인 큰 사건이 있긴 했다. 군인이 자국민을 살해하지 않겠다고 항명한 사건, 혁명세력에 가담하여 빨치산이 되고 저항군이 되어 싸웠던 사건,

그런데 그 경찰은 사드 말고 평화 반팔티셔츠를 입고 사드공사를 저지하기 위해서 윗선의 부당한 지시에 항명을 해보겠다는 건가?

경찰, 특히 정보과경찰들은 사드공사를 저지하는 주민들과 연대자들을 감시하고 범죄자로 만들어 처벌할 구실을 찾고 있는데, 뒤에선 사드말고 평화 반팔티셔츠를 입고 사드반대하고 있다고 떠들며 양다리를 걸치겠다는건가?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나를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만약에 그 티셔츠가 정말 이뻐서 갖고 싶었다면 어찌 감히 내게 연락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교양없는 경찰놈들 때문에 스트레스 지수가 쑥쑥 올라간다.

우리의 팔다리에 족쇄를 채우는 이들이 우리와 무슨 친분을 쌓을 수 있다는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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