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머물 곳은 진밭이니

진밭일기 2018년6월19일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6월19일

“너거는 우리가 우스불지 몰라도 우리는 애간장이 탄다. 에이 떠거랄 것들아, 너거 이제 그만 온나. 돈 벌러 오지마라. 딴 데 가서 돈벌어라.” 매일같이 반복되는 구호에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도 공사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공사인부들의 차량을 마주하면 금연엄니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차 앞으로 나아간다. 목이 까실까실한 지 기침을 하면서도 확성기를 입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공사인부들은 차문을 모두 꽉 닫고는 핸드폰을 보거나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소성리엄니들은 진심을 다해 “꼴보기 싫다. 내일은 오지마라. 돈 그만 벌어라”고 외친다. 매일같이 무한반복되고 있는 외침기도, 평화행동, 지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지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제는 쇠비름나물이 많아서, 오늘은 ‘꿈꿈한’ 날이라 수제비를 뜬다고 하며, 금연엄니는 가려는 나를 붙들어 맨다. 저녁먹으라고 성화다. 엄니들의 일상의 키워드는 밥이다. 회관부엌은 후끈후끈하다. 태환언니와 규란엄니의 손이 분주하다. 감자는 큼직하게 썰어놓고는 모자랄까봐 더 깍고 더 썬다. 밀가루 반죽은 양이 점점 늘어난다. 할매들은 마당에서 기다리고, 춘자엄니는 얻어먹기 미안하다며 밀가루 한포대를 가져왔다.

커다란 솥에 끓인 다시국물을 작은 솥에 부어서 수제비를 뜨고, 할매들을 먼저 잡숩게 했다. 자꾸만 수제비를 뜨는 걸 보면서 저 많은 걸 누가 다 먹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할매들 한 상 차려서 먹고, 소성리평화지킴이과 연대자들 한그릇 가득 퍼서 떠 주고 나니 솥가득한 수제비는 금새 바닥을 보였다.

끝내는 규란엄니가 금연엄니를 타박한다. 밀가루 반죽의 첫 시작은 금연엄니였나보다. 수제비해먹자고 하면서 밀가루반죽은 쬐금 해 놓고 누구코에 붙이냐고 한다. 금연엄니는 내 이럴 줄 알았나? 처음엔 몇 사람 안됐어. 하지만, 보는 사람마다 수제비 한다고 소문내고 먹으라고 권한 사람이 금연엄니라는 사실...


핑화는 진밭의 경찰초소까지 잘 다녀와서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아빠나 다름없을 강장로님에게 마구 대들었다. 대들다가 강장로님의 허벅다리를 물었다.(살짝) 길거리에 버려진 마스크가 화근이었다. 어쩌다가 그걸 주워서 입에 문 핑화에게 강장로님이 손을 뻗쳐서 “이리 내”라고 했겠지만, 지 입으로 들어오면 씹어 먹는 한이 있어도 내주지 않겠다는 핑화가 ‘버럭’거렸다. 강장로님이 핑화의 입에 물린 마스크를 내놓으라고 손짓하자, 그것보단 아마 뺏으려 하지 안았을까? 그 순간 핑화는 순식간에 대들었던 거다. 장로님의 허벅다리를 문 순간 핑화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거다. “내가 왜 이러지?” 후회막심이었을거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핑화, 성견이 되었지만, 생후 1년을 넘기지 않은 핑화는 사람으로 치면 한창 사춘기 나이다. 강교무님이 핑화의 조련을 자임하고 나섰다. 우리에게 일체 핑화 간식을 주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주둥이 몇 대 때려 핑화에게 너의 잘못을 니가 알렸다 해본다. 핑화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을거다. 하루는 사료를 주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일찍 사료를 주었지만 핑화는 입을 대지 않았다. 자존심 싸움이 되었을까?

핑화에게 치명적인 형벌이 가해졌다. 목줄을 풀어놓고 산책시키지 말라는.

새벽일찍부터 풀어놓으면 삼사십분을 산으로 뛰어올라가 원없이 뛰놀다가 돌아와서는 쌕쌕거리던 핑화, 저녁나절 나와 함께 평화계곡으로 걸어갈 때면 나와의 간격을 유지하고 멀리 가지 않았던 기특한 핑화, 딴 곳으로 새려고 할 때 “남의 집은 안돼” 하면 마치 말귀를 알아듣는 듯이 냉큼 되돌아와서 내 곁을 따라다니던 핑화, 핑화와의 신비로운 체험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단 말인지. 안타깝다.

물론 수많은, 자신을 아끼고 돌봐주는 아빠들과 엄마들을 만만해 하며 “버럭” 거리지 않았어도 그 조치는 이뤄졌어야 할 때이다.

이제 성견이 되었으니, 혹시나 모를 사고위험에 늘 긴장할 수 밖에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진밭의 핑화, 네가 있을 곳은 진밭이니, 사고치지 마시라. 진밭을 떠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사진출처 : 강형구장로님 6/16 촬영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