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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n 23. 2018

콩국 한 그릇.

진밭일기 2018년6월23일

진밭일기 2018년6월23일


“김천 할마이들 일찍 빨리 잘 갔다.. 그 덕분에 우리 입만 호강시럽다 흐흐흣” 

엄니들이 후루룩 쩝쩝 소리를 내면서 우묵가시리 콩국을 둘러마시다 말고 한마디 툭 던진다. 어찌 저리도 얄미울 정도로 귀엽게 말씀을 하는지, 듣고 있다가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투쟁 3년을 넘겨야 하는 구미공단의 최초 비정규직노동조합이 있다. 어제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결의대회를 했던 날이다. 노동부가 아사히글라스의 불법파견을 기소해야 한다고 검찰에 의견서를 올렸는데도 검찰은 차일피일 시일만 미뤄왔다. 결국 길거리에 내쫓겨 서러울 노동자들을 더 서럽고 억울하게 만들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검찰의 범죄행위를 사회에 고발했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을 절벽으로 내 몬 건 대한민국의 개검이라 불려 마땅할 검찰이었는지도 모른다.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에서 열린 구미아사히비정규직지회 투쟁결의대회에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는 밥통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우묵가사리로 콩국을 만들어서 참여자들에게 나눠주었다. 밥을 제대로 못 먹고 도착한 집회장에서 만난 간식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아무리 배고파도 까다로운 내 입맛, 싱겁다. 주면 주는 대로 먹으라는 헌호씨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배님을 부려먹는 파렴치한이 될지라도 소금을 얻어서 간을 맞췄다. 진한 콩국의 영양가가 내 몸으로 쑤르르르 전달되어 에너지로 발산할 거 같았다. 

더운 날 집회에서 맛보는 시원한 간식거리의 짜릿함이란, 설렌다.  

집회를 마치고 이동한 곳은 김천역이었다. 김천에 온 김에 사드배치 결사반대 김천촛불에 참석까지 하기로 이야기가 된 모양이다.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은 최저임금 삭감법 폐기를 위한 100만인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참 오랜만에 서명선전전을 구경했다. 구경하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해달라고 호객행위를 하기도 했다. 대도시보다는 김천시민들의 반응은 우호적인 듯 보였다. 성주는 어떨까? 그런데 그들이 바라는 건 서명일까? 서명을 해도 안 된다는 체념이 몸에 인이 박힌 사람들에게 서명을 하라는 것이 와 닿을까? 

내 안에 불순한 생각들이 이리저리 맴돌았다. 민주노총은 정말 최저임금 삭감되는 법안이 폐기되길 바라고 있는 걸까? 의문도 든다. 그래야 한다면 싸워야지.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시간을 버는 것이라 이유를 설명하겠지만, 최저임금이 삭감되는데 동의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폐기하기를 바라는 국민은 말하지 않아도 대다수일거란 건 눈감고도 알 수 있는 진실이 아닐까? 그러나 목소리는 크지만 변화하지 않을 거 같은 현실을 직면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는 공허하다. 

김천촛불에서 우묵가사리 콩국은 성행하지 못했다. 김천촛불에 자리를 지켜주는 어른들은 너무 점잖은 분들이다. 한봉지 싸가시라고 했지만, 다른 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자신은 양보의 미덕을 보여주신거다. 우리는 운영의 묘를 발휘하는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사람들이 술렁 술렁 다 떠나가는 사이 우묵가사리는 한 솥 남아버렸다. 먼 길 달려온 밥통님들이 무척이나 고생스럽게 만든 귀하고 귀한 우묵가사리를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소성리의 평화지킴이들이 아주 많은 때도 아니라, 음식을 과하게 싸들고 갔다간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선뜻 나서기도 어려웠다. 후원물품들이라 개인이 싸가지고 간다는 건 생각도 안 해봤다. 어쩔 수 없이 소성리엄니들 집집마다 나눠드리자고 했다. 그 수밖에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밥통에서도 흔쾌하게 음식을 내어주시기로 했다. 

부녀회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할매들 마을회관에 모여있으니까 얼렁 들고오라고 한다. 할매들이 콩국 먹을려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콩국을 기다리게 되었다. 

마당에 도착하자 국그릇과 국자를 들고 와서는 성주주민대책위원회 이종희위원장님 한그릇 퍼드리고, 재영아저씨, 장사장님, 강사장님, 문호님, 선동님, 상패감독님, 현철님, 연대온 젊은색시, 그리고 우리 할매들 모두 ‘후르룩 쩝쩝 콩국’ 한그릇 보시하였다. 

봉다리 봉다리 싸들고 온 콩국을 집으로 돌아가실 때는 손에 한봉다리씩 쥐어드렸다. 

마을회관에 안 나온 엄니들 한 봉다리씩 나눠 드리고 싶어서 챙겼더니, 엄니들끼리 의논지은 것은 나온 사람들 우선 챙기는 게 원칙이라고 결론을 냈다. 

이게 민주주의지 뭣이 민주주의란 말인가? 모인 사람들이 의논하여 행동해 나가는 것이.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통님들의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먹기도 잘 먹고, 먹은 만큼 투쟁도 잘 할 겁니다 무엇보다 당신들의 땀방울이 소중하다는 것을 더 깊이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소성리 할매들 일동!!!

꼭 인사를 전하라는 엄니들의 전령을 받들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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