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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n 29. 2018

찬란한 계획

열매의 글쓰기 2018년6월29일

찬란한 계획    


며칠 동안 진밭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새벽에 눈을 뜨니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씩이나 맞으면서 처절하게 자리를 지킬 만큼의 열정이 내게는 없다. 며칠동안 집안에서 시간을 보낸다. 집에서 온종일 보낸 적이 언제였던가? 하루도 빠짐없이 나돌아다녔던 나로선 집에 있는 게 더 어색할 만도 한데 지금은 무척 평온하다.  

내 컴퓨터는 활기를 띄며 나를 인도하고 자판기는 부드럽다. 성주에서 유기농 농사지어 수확한 연리지 딸기를 약초언니가 거둬 들였다. 딸기잼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딸기잼 맛에 반했다. 작년 것보다 덜 달다. 새콤달콤한 딸기의 맛을 그대로 살렸다. 딸기 알맹이 씹히는 식감도 좋다.  잼이라기 보단 쫀득한 딸기를 씹는 맛이 일품이다. 딸기잼이 먹고 싶어서 플래인요구르트를 가득사서 딸기잼을 듬뿍 얹어서 먹고 있다. 

여성농민회 회장언니가 한동네 산다. 모처럼 전화연락이 왔다. 참외 생산량은 이전보다 많이 늘었는데, 가격은 폭락했다고 한다. 이럴 때 인심이라고 써야겠다며 참외 갖다먹으라고 한다. 올해 이상하게 참외구경을 못하고 있었는데 반가운 연락이다. 


성주로 이사와서 즐길 수 있는 기쁨 중의 하나가 안전한 먹거리를 신선한 상태로 즐길 수 있다는 거였다. 참외는 기본이고, 딸기, 토마토, 거봉, 사과 등등의 온갖 제철 과일들을 마음껏 즐겨 먹을 수 있었다. 마늘이나 양파 같은 밭작물들도 그렇다. 집에서 삼시세끼를 다 챙겨먹는건 아니더라도 신선한 식재료를 그때그때 장만해서 마음껏 요리하고 즐길 수 있는 시골생활의 장점이 주는 행복이다. 

오늘 그 기쁨을 오랜만에 맘껏 누렸다. 하루종일 집에서 머물면서 뒹굴뒹굴 먹고 놀며 생각하면 말이다.     

가슴 부푼 계획을 세웠다. 내년 겨울이 오기 전에 괌으로 갈거다. 미국령 괌에 주둔하고 있는 앤더슨공군기지를 찾아가는거다. 그 곳에 사드엑스밴드레이더기지가 있다. 

2016년도 성주로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에 언론기자들과 군관계자들은 괌으로 날아갔다.  사드레이더가 쏘는 전자파수치가 아주 안전하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설레발을 쳤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사드레이더 앞에서 참외를 갂아먹겠다고도 했었다. 

그 때 괌은 내겐 먼나라, 섬나라에 불과했었다.  

내가 절대로 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해외, 일본의 교가미사키와 오키나와를 다녀와서 나는 일센치 정도는 성장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보고오니 견문이 넓어지더라. 

사드레이더는 일본의 교가미사키와 사리키라는  두 곳에 배치되어있다. 사리키는 기회가 닿으면 가보기로 하자.     

괌을 향해 떠나겠다는 목포가 정해지자, 할 일도 생겼다. 

괌을 가려는 이유는 그곳에 사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의 군사패권전략으로 동남아 군사벨트의 요충지인 괌에 대해서 보고 듣고 관찰하고 싶기 때문이다. 

괌을 가기 전까지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기지들을 둘러볼 계획이다. 7월 초에는 군산 미군기지를 둘러볼 계획이다. 둥글교주를 졸랐더니 군산에서 미군기지 감시활동을 하는 분을 소개시켜주었다. 그 분이 기꺼이 안내를 해주시기로 했다. 

계획은 결코 구체적이지 않다. 단지 한반도에 팔십여 개의 미군기지가 있다고 수치상 나타내는데, 그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미군기지의 건설과정을 현지의 활동가나 주민들에게 듣고 싶다. 그리고 미군기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저항사가 어땠는지 알고 싶다. 물론 책으로 나와있는 경우도 있을테다. 읽어야 할 것은 읽으면 되겠지. 그러나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내 오감을 다 사용해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7월말8월초에 제주생명평화대행진에 참석할 예정이다 비행기표예매하던 중에 가격이나 시간대나 워낙 비싸서 날짜를 앞으로 좀 당겼다. 제주에 미리 도착해 여행을 할 계산도 했다. 막상 여행은 자신없다. 강정에 머물면서 해군기지를 지을 당시 주민들과 연대자들의 강렬하게 저항했던 발자취를 탐방할 계획을 세웠다.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접하던 강정사람 한분께 도움을 청했다. 다행스럽게 그 분은 친절하게 내가 머물 숙소를 예약해주셨다. 그리고 25일부터 섬들의 연대 평화캠프가 강정에서 있을 예정이라고 알려줬다. 내가 그 캠프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며, 참고하라는 것이었다. 

섬캠프는 작년 제주생명평화대행진에 참석했을 때, 센킴씨로 부터 들었다. 작년에는 이시가키 섬에서 개최되었고, 미국의 군사전략으로 기지화 되고 있는 섬에서 평화활동을 하는 이들이 모인다고 했다. 제주, 오키나와, 대만 등의 동아시아 작은 섬나라 들의 평화활동가들의 연대캠프라서 상당히 호기심이 생겼었고,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홀홀단신 생면부지의 섬을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시간도 촉박했고, 사실 돈도 문제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제주에서 섬캠프를 만나게 되었다니 무척 기대되고 흥분된다. 제주행 비행기를 날짜를 앞당겨 예약한 건 ‘신의 한수’인 셈이다.     

올 가을에는 평택미군기지와 동두천을 둘러볼 예정이다. 평택은 한반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힐 만큼 대단히 규모가 큰 미군기지라고 한다. 특히나 오산공군기지. 이 곳 평택은 미군기지가 도시의 한 복판에서 사람들의 삶과 함께 형성되었고, 삶속에 스며들어있는 곳이라고 보여진다. 

동두천은 미군기지 뿐 아니라 기지촌으로도 매우 유명한 곳이지만, 지금은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했고, 일부만 남아서 옛 모습이 남아있을 거란 추측만 하고 있다. 동두천에서 옛 미군기지의 발자취를 탐방하는 것은 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직접 둘러보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한반도의 80여개 미군기지가 어느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을까? 한번쯤은 다 둘러보면 좋으련만 어떻게 다 찾아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장은 눈에 띄는 큼직하고 굵직한 곳을 일차적으로 둘러볼 생각이다.  몸으로 체험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새로운 곳을 발굴해서 또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 

한국사회에서 미군기지는 무엇인지? 질문하고 답을 찾아보는 여행을 하는거다. 한 번이라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그곳 현지인들에게 미군기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삶의 터전에 미군기지의 건설, 그것으로 인한 주민들의 공포와 불안, 저항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미군기지가 들어선 이후 삶은 또 어떠한지? 미군기지로 인한 범죄와 사건사고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사람들의 감정은 어떤지? 

분명 배울 점이 있을거라 확신한다. 결코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거다.      

올 겨울엔 다시 오키나와로 가자. 지난 5월15일 오키나와 평화행동 보단 좀 더 깊숙이 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투쟁의 현장으로 가는 거다. 헤노코 기지건설을 반대하면서 싸우고 있는 주민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가장 좋을 거 같다. 민중들 속에서 체험하고 싶다. 어떤 경로오 어떻게 가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구체적인 건 서서히 만들어나가면 좋겠다. 다만, 다시 오키나와로 갈 때는 반드시 일본어를 공부하고 가자.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 자신 없지만, 그런 노력은 준비단계에서 충분히 해야 한다. 그리고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투쟁을 탐방하는 글을 쓴다는 목적을 분명히 하면 좋을거 같다. 여행수필 같은 형식이 될지라도 남겼으면 좋겠다. 

오키나와 투쟁의 근황도 소개하고, 조직적인 움직임과 주민들의 일상의 삶을 담아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오키나와의 투쟁에 연대하는 것은 미제국주의 강대국에 맞선 작은나라의 민중들의 연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잘 만들어내어 함께 대항해 가야 한다. 오키나와를 잘 알려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늘 생각한다.  

일본어 기초회화를 꼭 해야 한다.     

이렇게 나열한 나의 계획들, 꿈을 ‘무엇이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소성리에서 시작된 사드반대투쟁은 세계의 미군기지로 고통받고 저항하는 민중들과의 연대를 펼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다. 노력해야겠으나, 노력은 미미하고 어떤 결실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을거다. 설사 내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겐 매우 훌륭한 공부가 될 거고, 실속 있는 자산이 될거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좋은 글을 쓰는 거다. 탄생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는거다. 

반드시 찾아가는 곳마다 기록을 남기기로 하자. 당장 쓰임새가 없을지라도 기록은 기록대로 의미있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분명한 건 눈으로 보는 것과 피부로 느끼며 오감을 다 자극하기 위해서 직접 찾아가고 둘러보고 현지주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때 좋은 글감도 찾아지는 걸거다.     

괌을 향하면서 영어회화를 시작했다. 돈이 수월찮게 들었다. 인터넷 강의라서 끝까지 할 자신이 없었지만, 예전과 다르게 하고 싶은 열정이 생겼다. 목표가 생겼기 때문인가보다. 처음에는 기초회화 반을 일년과정으로 끊었다. 어제부터 미국교과서원서읽기 수업과정도 끊었다. 회화만으로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년이다. 내년 이맘때면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까지는 해봐야지. 잘 할 거라 기대하지 않지만, 까막눈은 면할 수 있으면 성공이라고 소박하게 꿈꾼다. 

일본어를 하겠다고 중얼거리다가 끝내는 영어로 키를 돌렸다. 

영어가 조금 입에 붙으면 스페인어에 도전할 생각이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남미의 공용어로 사용된다는 스페인어를 배우는거다. 쿠바로 향할 꿈을 꿔보는거다. 가능할거다. 꼭 한번은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글쓴다고 하더니, 어디 놀러갈 궁리만 잔뜩 늘어놓다니 말이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6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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