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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n 30. 2018

서예와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여인,

열매의 글쓰기 2018년6월30일 새벽녘에

서예와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여인,     


서화담선생님이 손글씩 현수막 작업을 했다.     

나는 이쁜 손글씨도 못쓰고, 엉덩이도 가볍지 않아서 조수로는 꽝이다. 거기에 보태서 센스까지 빠진다. 곁에 있어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할거다. 그러나 화담선생님 혼자서 작업하도록 둘 수는 없었다. 물론 선생님은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하셨다. 결코 괜찮지 않을텐데 말이다. 부지깽이도 끌어모으면 쓸모가 있다고 하는데, 나라고 옆에서 쓸모없을 리는 없을테니, 나는 하루종일 선생님 곁을 지켜드릴 생각이었다.     

큰 일은 아니지만, 구겨진 현수막천을 다림질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화담선생님이 글씨를 다 쓰고 나면 말린다. 다 마른 현수막을 둘둘 말아 한쪽으로 치워놓고, 다시 새 현수막을 깔아서 작업준비를 했다. 온 종일 허리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서 전신에 힘을 넣어 글을 쓰는 일은 화담선생님의 몫이었고, 이 작업은 노가다이기도 하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온 몸에 힘이 들어가서 편치가 않다.     


서예작품을 하나 출품하기 위해서는 한 문장을 쓰더라도 백장도 넘게 종이에 쓰고 버리고 한다는데, 손글씨 현수막은 연습할 여벌의 천이 없다. 바로 실전에 들어가야 하니 화담선생님으로서는 매우 긴장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서예작품을 쓸 때 사용되는 사이즈와는 정반대의 크기의 천이라서 더욱 힘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화담선생님께 힘든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평화현수막은 2여년동안 사드반대 싸움을 하면서 여러차례 작업을 했고, 이제 좀 손에 익숙해지기 시작해서 작업하기가 수월해졌다고 한다. 이번에는 내가 새로운 주문을 하나 드렸더니 그게 문제였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보내고 싶은 욕심에 문구를 하나 부탁드렸다. 그게 쓰면서도 계속 매끄럽게 작업이 안되고 턱턱 걸린다고 한다. 마음 한켠에 턱 걸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나보다.     


공장에서 쫓겨나지 않는 것이 평화!

사드뽑고, 해고막고, 비정규직 철페! 라는 문구인데, 내용이 분명하고 선명하다보니 화담선생님의 작품활동하듯이 쓰는 글과는 분명 다르다.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이 어느 위치에 서있어야 할지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니 글을 써도 술술 잘 쓰여지지 않고 자신이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구도가 전혀 맞지 않은데, 어떻게 맞춰야 할지 당황스러워했다. 

다 쓴 현수막은 미완으로 남겨진 느낌을 준다. 

나는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미완으로 남겨둔 느낌을 나도 받았다. 

그런데 본인은 오죽했을까? 

화담선생님은 투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온정적인 분이다.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한다면 훨씬 창의적인 작품이 나왔을거다.  

역시 예술가라는 생각이다. 글을 써달란다고 다 써지는 것이 아니다. 한 자를 쓰더라도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가 명확할 때 구도가 잡히고, 구도에 따라 글도 자연스럽게 써지는 법인데, 자신의 영역이 아닌 글을 쓸 때 혼란스러움이 몇 장 안되는 현수막을 작업하는 동안 화담선생님을 매우 힘들게 한 듯 하다. 앞으로 이런 글을 쓸때도 화담선생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예술가가 자신의 혼을 담아 쓸 수 있도록 배려해드려야 할 거 같다.     


날마다 좋은날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시중선생님의 작품세계에서 글귀로 쓰이고 있다. 다른 부연설명은 없다. 상형문자화 된 호일만 쓴다. 작품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시중선생님의 작품이 좋다.      

화담선생님께 우리현수막에도 ‘호일’을 쓰면 어떻겠냐고 여쭸다. “날마다 좋은 날,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자비로운 마음으로 수용하는 법을 터득하면 마음의 자유를 얻을 것”이라는 불가의 가르침인데,      

"날마다 좋은 날"이 내포하는 뜻이 상당한 마음공부가 되지 않고서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한글로 읽히는 대로 해석할 일도 아니지만,     

사드로 고생하고 있는 소성리에 날마다 좋은 날을 쓴다는 게 조금 엉뚱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문득  "날마다 좋은 날"의 어원과 뜻을 들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이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바로 소성리 엄니들이다.      

매일같이 8919부대 앞으로 올라가 피켓팅을 하던 엄니들이 “볼 일”을 보기 위해서 계곡 가파른 길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많이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국방부에 부대정문 화장실을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국방부는 단칼에 NO로 답했다. 팔순 노인이 화장실을 쓰는 것도 외면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엄니들은 직접 화장실을 짓겠다고 국방부에 엄포를 놓았다. 경찰에게도 모른 척하라고 부탁했다. 엄니들은 다음날부터 공사자재를 실어 올라갔다. 화장실을 짓기 위해서였다. 화장실 비슷하게 생긴 가건물?에 깃발을 꽂고는 무척이나 흐뭇하게 내려와서는 자신들이 지은 화장실이 얼마나 잘 생겼는지를 자랑한다. 

오늘 드뎌 부대앞 새로지은 화장실에 고사를 지내나보다. 함께 하지 못했지만 고사를 지내며 흥겨워하는 엄니들의 얼굴에 익살스런 어린아이의 얼굴이 담겨있다. 

엄니들은 사드로 매일 힘겨운 것이 현실이지만, 힘겹기만 한 것이 진실은 아니다. 

힘겨운 날들을 재치와 해학으로 이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좋은 날은 소성리엄니들에게 딱 어울리는 날이다. 

날마다 새로운 날도 소성리엄니들에게 딱 어울리는  날이다. 

우리는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들기 위해서 매일 진밭을 지키고, 소성리마을 지킨다. 우리가 하는 것은 비록 내가 사는 고향땅을 지키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이 작은 기운들이 모이고 모여서 세계 평화가 만들어지는 작은 구술이리라. 

날마다 좋은 날에 여성농민회사무실에서 화담선생님과 함께     

『열매의 글쓰기 2018년6월30일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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