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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l 02. 2018

행복을 찍어드립니다.

김천촛불 할매들 장수사진 찍는날

     

“늙어빠져서 쭈굴쭈굴한데 칠해봐야 헛일이제”  노곡리 마을회관에 모인 할매들은 화장은 해봐야 소용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종희님는 사진이 예쁘게 나올려면 입술은 빨갛게 발라야 한다면서 할매들을 구슬렀다. 화장품 가방을 열었다. 할매들에게 입만 내밀고 있으면 다 칠해드리겠다고 약속한다. 마침 노곡리로 농활 온 옆방 대학생들에게 부탁했다. 학생들이 할매들 치장을 돕기로했다. 갓 스물나이의 수줍음이 많은 여학생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 옆에 활달하고 애교가 넘치는 남학생이 바람잡이로 뒤따라 왔다.  남학생이 손등에 립스틱을 색색별로 칠해서 할매들께 물었다. “어느 색이 좋으세요?” 

남학생의 손등을 한참 들여다보던 할매가 가운데 색상을 가리키며 곱다고 응답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학생은 할매에게 두 번째 색상인 꽃분홍 립스틱을 열어서 입술을 발라주었다.      

“늙고 쭈굴쭈굴한 얼굴에 칠해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하던 할매들, “나는 화장같은 거 안할거라”고 도리질을 치던 할매들은 어느덧 얌전히 앉아서 발라주는 립스틱에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이 궁금했던 지 거울을 건네받아 바라본다. 거울 속에 비친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할매들은 한손에는 거울을 들고, 한손에는 립스틱을 들어 직접 입술을 그리기도 했다. 

눈썹을 그리는 펜슬이 없다고 하자 할매 한분이 펜슬을 가지러 회관을 나섰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펜슬을 가지러 다녀온 할매가 당도하자 종희님이 한 분, 한 분 할매들의 눈썹을 그려주기 시작했다. 눈썹을 그리기 전에 하얀 분도 발라주었다. 할매들의 쭈글쭈글 하던 얼굴이 뽀얗게 변신하기 시작했다.   

나이 팔순에서 구순의 할매들이 노곡리로 시집오기 전, 처녀 적에는 화장도 숱하게 하고 살았는데, 시집와서 애낳고 키우면서 살림에 농사짓느라고 화장 같은 거 다 잊어버렸다는 푸념이 여기저기 흘러나온다. 할매에게도 새색시였을 적이 있었을테지. 나이 팔순이 넘어 새삼스럽게 연지곤지 바르면서 수줍어하는 할매들이 웃고 떠드는 동안 사진 찍을 채비가 다 갖추어졌다.     


새벽부터 빗줄기는 거세게 내리쳤다. 아침이 밝아도 빗줄기가 잦아들지 않았다.  「한반도 사드배치 결사반대 김천촛불」이 680일째 되는 날인 오늘 김천촛불 어른들의 “장수사진”을 촬영했다. 장수사진이라고 하면 연세가 많은 어른들만 해당된다고 생각할까봐, 젊은 사람들의 프로필사진도 찍을 거라고 선전했다. “행복사진 촬영하는 날”이라고도 소개했다.

안타깝게도 비가 내리는 바람에 야외에서 촬영하기가 어려워졌다. 마을회관에는 농활 온 대학생 무리가 공간을 상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할매들이 쓸 수 있는 공간은 방 하나였다. 

방 한쪽에는 할매들이 꽃단장을 하고, 사진가들은 촬영을 하기 위해서 벽에 배경이 될 천을 펼쳤다. 조명을 설치하고, 모델의자와 작가의자를 준비해서 거리를 조정하고, 빛을 조절하면서 전체준비를 완료했다. 낭패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우리들도 아니기에 준비가 되는대로 사진촬영은 시작되었다.     

할매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화장을 하고 종희님이 준비한 한복저고리와 치마를 입어보기도 하면서 화기애애했다. 첫 번째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 의자에 앉은 할매는 카메라를 보는 순간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사진가가 카메라렌즈를 쳐다보면서 환하게 웃어야 한다고 주문하지만 카메라 렌즈만 응시하고 있는 할매는 웃으려고 입을 오므렸다가 펴 보기도 하지만 끝내 웃지 못할 긴장이 얼굴에 팽배하다. 첫 번째 사진의 주인공을 웃기는 데 성공하지 못하자, 이번엔 사진촬영의 스텝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앞에서 할매들을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었다. 할매와 마주한 우리는 할매를 웃기기 위해서 손짓, 발짓, 몸짓을 해대면서 큰소리로 “하하하” 자극해보지만, 함께 배꼽이 빠지라고 웃다가도 카메라 앞에만 앉으면 할매들의 표정은 굳어버린다. 

사진가는 입꼬리를 위로 올리라고 주문했다. 할매들의 웃음보따리를 자극하기 위해서 덕기님이 재미나는 이야기로 할매들의 감정을 이완시켜보려고 노력한 끝에 할매들은 조금씩 카메라앞에서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자연스런 미소가 나오기도 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기 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법인가보다.     


김천촛불 할매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사는 곳을 묻고, 이름을 알기까지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드가 성주 성산포대로 배치된다고 발표한 후에 성주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히게 되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제3부지라고 일컬었던 소성리로 배치결정이 났다. 가장 충격받았을 사람들은 당연히 소성리 주민이었을거다. 사드레이더 방향이 김천혁신도시로 향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김천시민들도 충격이 컸다. 롯데골프장 땅이 국방부에 공여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김천사람들은 소성리에서 “사드배치 결사반대” 선전판을 들었다. 그리고 매일 김천역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어 “한반도 사드배치 결사반대”를 외쳤다. 

매주 수요일 소성리집회가 있는 날이면 김천의 노곡리 어른들은 봉고차를 타고 소성리로 오셨다. 집회를 참석하기 위해서 노곡리 어느 교회 목사님이 차량을 운행해주었다. 할매들은 목사님 덕분에 소성리 수요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사진을 찍는 동안 할매들에게 들을 수 있었다. 새로운 사실이 놀랍다.  

매주 일요일 밤이면 소성리엄니들은 김천촛불에 참석했다. 김천촛불에 가면 김천할매들이 소성리할매들을 살갑게 맞아준다. 서로 반가워서 아이들처럼 좋아라 하지만, 촛불집회를 마치기 무섭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김천할매들의 사정이 있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김천촛불 할매들은 소성리할매들을 자신의 옆에 앉혀서 집회 중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여유가 없는 서로는 얼굴보는 것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우리는 사드반대세력이라는 것을. 

내 눈에 김천촛불 할매들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김천촛불을 가면 두어줄 정도, 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할매들의 모습이다. 모두가 소성리의 이웃마을에 사는 할매들로 주로 과수농사를 지을거라고 들었다. 김천시민대책위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촛불시간에 맞춰 운행했다. 버스를 타고 참석하고는 가기 바쁜데도, 하루도 빠짐없이 “사드반대”를 외치러 나온거다.  

김천촛불에서 할매들의 자리가 매우 크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소성리할매들과 김천할매들이 함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뚜렷이 뭘 할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도 했다. 

그러나 내겐 아주 귀한 보물이 있다. 사진가 친구들이다. 진영과 재각은 돈 한 푼 버는 일도 아닌데, 작년에는 소성리할매들의 장수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사진을 찍고 난 후에 사드브레이크 전시회가 기획되어서 사진이 빛을 보기도 했었다. 

김천촛불 할매들도 장수사진을 찍어보자고 제의했을 때 진영은 두말 않고 그러자고 해주어서 나는 신이 났다. 진영은 재각과 함께 노곡리 마을회관으로 먼 길을 달려왔다.

 

사진기 하나만 달랑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간편할까... 장수사진을 하나 찍기 위해 전문장비가 많았다. 사진 촬영하는 일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종희님이 갑자기 메이크업아티스트로 변신해서 할매들의 분장을 돕고, 재호님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소고기국을 사러 김천의 몇 개 마을을 헤매고 다녀야했다. 덕기총장님과 정목사님이 할매들을 웃게 만들려고 숱하게 노력했다. 계속 웃으려고 노력하는 일은 얼굴근육이 아픈 일이다. 하하하하. 

모델이 되기가 힘들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보는 날이었다. 

소성리의 숨은 인재 영재씨가 맥가이버 손으로 이것저것 도움을 주어서 무난히 행사를 치룰 수 있었다. 

다행히 할매들 뿐 아니라 김천촛불을 지켜주었던 빛나는 주역들이 사진을 찍어주는 영광도 있어서 오늘의 사진은 장수사진보다는 “행복한 사진”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가까워지는데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할매들의 이름 하나하나 적어놓았다. 나이도 적어놓았다. 

앞으로 수요일 소성리집회에서 할매들을 만나면 이전보단 더 각별한 사이가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서 내 마음은 부자가 된 거 같다. 내편이 더 많이 늘어난 거 같아서 말이다. 

원래 내편이었는데 그동안 몰라봐서 미안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한편이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 7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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