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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l 03. 2018

お元気ですか?(오겐키데스까?)

공판기일이 잡혔다.

 


새벽부터 세차게 퍼붓는 비소리를 들으면서 꼼짝없이 드러누워있었다. 유키는 비맞으면서 쉴새 없이 울어댔고, 유키의 우는 소리에 잠 못 이룬 한 사람이 결국은 두 손을 들어 항복했다.  유키는 다시 현관 앞으로 입성했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목줄은 짧아졌고 현관 앞 화단의 꽃나무를 괴롭힐 수 없도록 조치했다. 현관 앞에서 비를 피하려면 얌전해야 한다고 눈치를 팍팍 줬다. 유키가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키는 오늘 하루 얌전히 앉아있었다. 

우체국아저씨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법원에서 날라온 우편물을 전해주며 내게 사인을 받았다. 서부법원에서 날라온 서류에는 공판날짜가 정해져있다. 순간 성주경찰서 경비과장놈이 고소한 사건의 경찰조사를 거부했더니 그단새 검찰로 송치되었나 싶었다. 그러나 서류에는 공판기일이 정해졌다고 쓰여져있다. 사건번호는 2017고단3120 이라고 적혀있다. 2017년 사건이라면 소성리에서 여러 가지로 막은 것들이 많은데, 결국 전화를 해서 문의를 해보니, 사건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였다. 

2016년 7월 15일 황교활총리와 한맹구장관이 성주로 내려오던 날, 성난 주민들에게 가로막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차량에 있던 두 정부각료가 공무원퇴근시간에 맞춰서 문도 없는 뒷담벼락을 넘어서 토끼던 날부터 시작한다.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매일같이 성주군청에서, 쫓겨나서 문화원으로, 문화원에서 다시 성주군청 주차장으로 옮겨가는 동안에 K2군공항을 이전시키는데 후보지로 성주가 거론되면서 군공항 유치를 막기 위한 싸움까지 벌어졌던 과정이 있었다. 


공소장은 올해 초 1월2일에 집으로 날아왔었다. 공소장이 날라와서 재판이 시작되겠거니 했지만 감감무소식이어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이제야 공판기일을 알려온거다.  

공소장에서 제기한 범죄사실은 이렇다. 하나는 7월15일 황총리와 한장관이 토낄 때, 경찰들이 막아서서 뒤쫓지 못하도록 했다. 내가 경찰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서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정말 억울해서 기가 찰 노릇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김밥한 줄 제대로 못 먹고, 물 한 모금 못 마시면서 황총리와 한장관에게 사드배치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했다. 그때 마침 주민대표들을 구성해서 두 정부각료가 타고 있는 미니버스에 들어가 면담을 하고 나왔다. 오늘 이만큼 했으니 보내주고 다음에 정식면담자리를 가지자는 의견이 있어서 주민토론이 한창 벌어질 때였다. 두 정부각료가 주민대표까지 만나서 이야기를 진전시키려고 했으니, 뭔가 결론을 내야 했을텐데, 그들은 비겁하게도 주민들이 한참 토론을 하고 있을 때 문도 없는 뒷담벼락을 튀어넘어서 졸행랑을 친거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주민들이 울며불며 뒤쫓으려고 했지만, 경찰인지, 경호원인지, 공무원인지 알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가로막혀서 뒤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그 때 양복입은 그사람이 누군지 가늠할 재간도 없었다. 오열을 하면서 기절할 거 같이 쓰러지며 그의 와이셔츠 자락을 잡고 매달렸던가 보다. 그를 붙잡고 비켜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카메라는 용하게도 내 손이 와이셔츠 자락을 잡고 있는 장면을 포착한거다. 

사실 나는 그 와이셔츠 자락을 잡았는지 조차 기억에 없었다. 경찰조사를 받으러 가서야, 그것도 사진을 보고서야 머리가  띵하면서 기억이 돌아왔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았다. 그만큼 그 날의 사정은 너무나 다급했고, 절망적이어서 절규했던 날이다. 사드배치 철회하라고.  

오늘 공판기일을 알리는 서류를 보고 있자니 2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운다. 그 날 하루종일 멋지게 잘 싸운 성주주민들, 비록 교활한 총리를 놓쳤지만, 하루종일 뙤약볕에서 자리를 지키고 정부각료의 버스를 막고 섰던 사람들, 어느새 달려온 트랙터, 하루 현장지도부, 긴 싸움의 예고편 같았다.  2016년 7월15일. 하루지도부는 그 날 이후에도 성주군청 앞에서 열리는 매일 밤 촛불문화제에서 봉사를 했다. 거기까지다. 그들은 소임을 다한거다. 떠나간 그들이 야속할 때 있었지만, 자신의 역할을 다한 거니 원망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 길고 긴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 쓸 수 있을까? 한번쯤은 이야기들을 써봐야 하지 않을까?     

교활한 총리의 앞을 가로막았던 용감한 성주주민들 모두 잘 지내고 계시지요? 

お元気ですか?(오겐키데스까?)

이제야 2년 전의 사건을 재판하기 시작한다. 재판의 여정도 만만치 않은 길이 일텐데, 이것 역시 기록해놓아야겠다. 

변호사가 연락이 없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7월3일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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