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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l 19. 2018

꽁꽁 언 문어

꽁꽁 언 문어다리.     

엄니들은 시원한 물병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냉동실에 얼려있는 문어다리를 들여다본다. 누가 갖다놓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문어다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마을회관의 냉장고에 들어온 물품은 사드반대하는 연대자들의 후원물품일거다. 회관물건은 함부러 손을 대는 법이 없는 엄니들이다. 문어다리를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과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혀를 끌끌 차면서 나를 부른다. “소희씨 이거 우야면 좋노? 몇날 며칠 동안 이래 들어앉아있고, 해먹을 생각은 안하고 있으니, 이거 우짜노?” 

결국 성질 급한 나는 엄니들의 고민거리를 해결하기로 했다. 민들레합창단이 노래연습하는 날인 수요일(7월18일)에 야식으로 문어를 먹자고 했다. 

그런데 이 문어가 어떤 문어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꽁꽁 얼려져있는 문어라는 것 말고는. 내 팔뚝만큼이나 굵고 긴 문어다리는 보기에도 흉측한 몰골이라 먹고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내 임무는 삶아서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된다. 문어다리를 처리하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매주 수요일은 낮부터 소성리 사드철회를 위한 수요집회를 하고, 모인 사람들이 성주사드기지 정문에서 피켓팅을 한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면 다시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어서 노래연습을 한다. 민들레합창단은 벌써 수개월동안 매주 수요일이면 노래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곧 7월28일 정전65주년 평화홀씨마당 무대에 민들레합창단과 김천 노곡리할매들이 함께 노래공연을 한단다. 드디어 김천 노곡리 할매들과 소성리 할매들이 조우하게 된다니 기대해볼 만한 일이다. 

그리고 제주에서 매년 이맘때면 전국의 평화활동가들과 시민들이 모여서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을 개최한다. 우리 엄니들도 제주로 찾아갈 계획이다. 제주 강정에서 성산의 제2공항 추진지역까지 행진을 하고 캠프를 하면서 ‘군사기지 없는 제주’를 염원한다. 우리는 평화행동을 할 예정이다. 생명평화대행진 마지막 행사가 될 문화제에 우리 소성리엄니들의 ‘민들레합창단’이 공연을 하기로 했단다. 

큰 무대를 두 번이나 연달아 오를 예정이라서 새 노래를 배울 여유가 없다. 전부터 불렀던 노래를 계속 연습하고 공연준비를 한다. 

소성리엄니들은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가사도 다 외웠고, 음정과 박자도 다 꿰고 있다. 그리고 노래부르면서 몸짓을 어떻게 할지도 연구한다. 자신이 가장 편하고 자연스런 몸짓을 만들어간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한 옥타브 낮춰서 불러보기도 하고, 높여보기도 하면서 엄니들이 가장 잘 부를 수 있고, 가장 폼나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있어보여야 한다. 

노래를 부르다가도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가사는 고쳐서 부르자고 한다.  개사도 직접 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2절은 ‘우리의 소원은 평화, 꿈에도 소원은 평 ~~~ 화, 이 생명 다해서 평~~화, 평화를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평화, 소성리 살리는 평~~ 화’ 로 소성리가 다시 일상의 평화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실었다. 

우리는 늘 엄니들이 주인공이라고 했다. 엄니들은 진짜 주인공이 되어서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노래도, 몸짓도, 노래연습도, 엄니들이 앞장서서 

음악선생님들은 “선생은 수준이 그대로인데, 학생들은 매일 꾸준히 발전하고 있어서 선생이 가르칠게 없어질까봐 걱정된다”는 만족스런 농담을 한다.     

꽁꽁 열려있던 문어는 뜨거운 솥에 풍덩 들어갔다 나왔다. 녹아도 문어의 살은 딴딴해서 씹을 수 있을지 살짝 걱정스러웠다. 찜솥에 약한 불로 쪄서 칼로 썰었다. 냉동실에 있을때는 엄청 커 보이던 문어다리가 삶아내 보니 쪼그라 들었는지 가늘어졌다.  

썰어서 먹어보니 조금 질긴 감은 있지만 먹을만했다. 

소성리 달밤에 문어 씹으면서 사드도 씹었다. 기름탱크를 달마산 꼭대기에 꽂겠다는 국방부도 씹었지만, 자신의 고향땅에 기름탱크를 심는데 협조해서 소성리평화지킴이들을 무지막지하게 끌어낸 경찰들도 씹었다. 성주경찰서는 나쁜 사람들이다. 

안주거리 있으니 막걸리파가 모였다. 비주류는 비주류대로 문어씹으면서 사드를 씹어댄다. 알뜰살뜰한 성격은 아니지만, 사드 때문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힘겨운 소성리의 평화지킴이들에게 영양좋은 식재료를 후원해주는 고마운 의인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다. 한 점도 버리는 일 없이 먹어야 한다. 먹도록 노력한다. 사람이 못 먹으면 짐승이라고 먹일려고 한다. 진밭의 평화~.  영양분이 에너지로 변신할 수 있도록 잘 소화시켜내야 한다. 

또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시끌벅적 떠들 자리를 만들 수 있어서 좋은 날이다. 

우리는 웃는다. 웃을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웃을 일을 찾아서 웃는다. 

웃으면서 삼킨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 7월19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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