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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l 23. 2018

달마산 꼭대기에 기름탱크가 심겼다.

달마산 꼭대기에 기름탱크가 심겼다.    


“야 임마, 내가 여기서 60년을 살았어. 내가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야해. 이런 걸 산속에 묻어놓고 살겠나? 어떻게 살 수가 있겠어?” 어깨까지 올라가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전00대령을 마주한 재영아저씨는 참고 참아왔던, 누르고 눌렀던 분노가 분화구를 뚫고 솟아올라 불이 되어 내뿜어나왔다. 눈을 크게 뜨고 있었지만 입술은 가냘프게 떨렸다. 가슴으로 하고싶은 말은 많았을텐데도, 차마 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지는 못 한 채 전대령을 향한 분노가 눈 속에서 이글거렸다.     

하필이면 더위가 본격적으로 찾아온다는 초복(7월17일 화요일)에 국방부와 경찰이 짜고 사고를 쳤다.  새벽일찍 공사인부들 출근시간에 맞춰 기름탱크가 들어왔다. 분명 국방부는 기름탱크가 들어오기 전 하루 전에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찰떡같이 믿고 있었다. 

다른 날과 다름 없이 사드공사저지 출근피켓팅을 하러 사람들은 진밭교에 모여서 아침 개신교기도를 하였다. 경찰들의 움직임이 전날과 다르게 분주하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국방부가 한 약속을 순진하게 믿고 있었던 착한 사람들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된 경찰들은 진밭교에 오른 김감독님께 평소같으면 아침식사했냐는 의례히 하는 인사를 할 만도 한데, 그 날 따라 안면을 몰수하고, 표정이 굳어져있었다. 

아침평화행동을 하는 중에 순식간에 사람들을 에워싸고 옆으로 밀쳐 붙여놓고는 기름탱크가 들어가버린거다. 공사인부들의 출근차량과 함께 기름탱크는 성주사드기지로 올라가버렸다.   
  

“야.. 이 새끼야.. 니 눈에 우리 주민들이 그렇게 우습냐? 우리가 우스워? 왜 약속을 안 지키는데.. 기름탱크 들어오기 하루 전 날에 우리 마을에 이야기하기로 했다면서... 이 새끼야.. 그거 넣지말라고 그만큼 이야기 해도 안 듣고, 들어갈 때 약속도 안 지키고, 우리가 그렇게 우습드냐 이 개새끼야.....”

성주사드기지 문밖으로 나온 전00대령을 마주 본 순간 울화가 터진 부녀회장님이 부채든 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분노를 폭발시켰다. 할매들은 문 앞에 나란히 주저앉아서 위로 쳐다보고 있을 찰나에 동영엄니가 벌떡 일어나 전00대령 앞으로 나가더니 덥석 셔츠를 잡고는 쥐어흔들었다. 

순식간의 일이라 쳐다보고 있던 나도, 부녀회장님도, 옆에 있던 할매들도 모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해졌지만, 속으로는 통쾌하고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갔다.     


불시에 기습공격을 당한 사람들은 기름탱크를 실은 길다란 트럭들과 장비들이 내려오는 것을 막아섰다. 경찰은 자신들의 임무인 기름탱크가 무사히 달마산 꼭대기에 올라갔으니 내려오는 차를 막는 것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이 여유를 부렸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소성리엄니들과 주민들, 성주주민대책위 어른들, 김천과 원불교의 사드반대 동지들이 모여들었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진밭교로 모여들었다. 

서울에서 소식을 들은 원불교환경연대 이태옥처장님과 강해윤교무님이 서울에서 달려왔다. 부녀회장님은 먼 거리를 달려온 사람들에게 감동하였다. 

뜨러운 뙤약볕에 그늘을 만들고 앉았다. 뒤편에는 트럭과 장비차가 줄지어 서있었다. 

마을회관에는 규란엄니와 태환언니, 상순언니가 때마침 점심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잘 먹어야 한다며 밥솥에 쌀을 안치고, 콩나물을 무치고, 몇 가지 나물과 오이냉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점심식사를 배달하러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회관에 왠 덩치 큰 남자가 양손에 수박을 들고 들어섰다. 

“아... 손00씨죠?” 

“아.. 네에.. 누구셔요?”

“군수님께서 복이라고 수박을 보내셨어요.. 이거 할매들과 시원하게 잘라드시라고요” 

군수 비서실장이란 남자가 마을회관으로 들어섰다. 

“아이고,, 여기는 정신없습니다. 할매들 다 진밭에 올라가 있습니다. 수박 들고 그리로 올라가시지요.. 군수님은 뭐합니까? 소성리 빨리 오라고 하시지예,, 여기 달마산 꼭대기에 오늘 아침에 국방부에서 기름탱크를 박아넣었다 아닙니까.. 여기 다 농사짓고 사는 동넨데, 저 산꼭대기에 기름탱크를 넣어두고, 폐유관리 똑바로 하지도 못하고, 땅으로 기름스며들어서 오염시키고 물도 오염시키고 하면, 성주바닥 엉망 진창 난리날텐데 언능 군수님 여기 오라고 하이소.. 소성리는 그 기름탱크 막을라고 난리났다 아입니까”

“군수님은 다른 일정이 많이 잡혀서 ... ”

그가 뭐라 하건 말건 별로 신경 쓸 것도 없이 부엌에서 나물을 무치고 오이냉국을 만드는 엄니들 곁으로 가서 밥솥과 숟가락, 젓가락, 그릇을 챙겨들고 차에 옮겼다. 음식은 아직 덜되었다면서 태환언니가 실어오기로 했다. 

차에 실고 다시 마을회관으로 들어오니 때마침 군수비서실장이란 자가 한 손에는 수박을 들고 부엌입구로 다가가면서 수박을 전해주려는 모습을 만들자, 비서실장을 따라온 또 한 명의 사내가 뒤쪽에서 사진을 찍는 자세다. 

나는 다급하게 “엄니, 쟁반 주이소.. 쟁반 몇 개 챙겨가서 상 대신 써야겠어요.” 하면서 소리치자 규란엄니가 밖을 내다보면서 “쟁반?” 하고 되묻자 비서실장은 얼릉 수박을 바닥에 내려놓고 쟁반을 몇 개 찾아서 내게 전해주었다. 

나는 쟁반을 전해들고는 나오면서도 비서실장에게 

“여기 정신없는데, 수박 들고 진밭으로 오세요. 바로 요기 몇 분거리라요” 

하면서 나왔다. 그리고는 비서실장을 만나지 못했다. 어느 새 수박 두 덩이는 진밭에 올라와있었다.     

내가 챙겨간 물건들을 진밭에 내려놓으니까, 금방 태환언니가 나물 담은 반찬통과 진미와 오뎅볶은 반찬통을 들고 왔다. 커다란 대접에 비벼먹을 수 있도록 밥을 퍼고, 접시에 반찬을 담아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차렸다. 새벽부터 올라와서 긴장의 연속이었던 진밭의 평화지킴이들은 배가 많이 고팠을거다. 강교무님이 맛있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정가수는 밥을 먹는데 목이메인다고 응석을 부렸다. 

무더운 여름날에, 진밭의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도 고생이지만, 수 많은 사람들 목구멍에 들어갈 밥을 준비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을 엄니들의 고생이 서린 밥상이다.  밥상을 마주 보면서 눈물이 날만 하다. 

감동에 겨워야 할 나는 또 투덜거렸다. 

“ 반찬 너무 많아. 이럴 때는 덮밥 같은 거 간편한 거 해야지.. 음식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불편하기 짝이 없는 야외에서 밥 먹으면서 다 차려 먹어요?”

내 불평에도 엄니들은 

“그래도 김밥 이런 것 보다 훨씬 낫다. 힘은 들어도, 잘 먹어야지. 집밥으로 먹어야 끈기도 있고, 배 금방 안고파서 낫다. ” 

찜통같은 부엌에서 삶고 무치고 끓이고 씻고 치우고 온갖 허드레 부엌일로 고생하는 거 생각하면 진밭에서 진수성찬을 받아먹는 건 분에 넘치는 호사다. 

엄니들이 차려준 밥상 받아들고 맛있다는 호들갑을 떨면서 나물을 가득 담은 비빔밥은 눈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어간다. 


군수 비서실장은 끝내 진밭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비서실장은 군수에게 연락이나 했을까? 수박만 진밭에 올라서 우리는 식사 후 디저트로 수박을 잘라서 한 조각씩 나눠먹었다. 초복에 먹는 수박이다. 

작년 초복에도 미군의 유조차가 들어오는 바람에 음식을 준비하던 마을의 부녀회원들이 하던 일을 놓고는 모두 진밭으로 올라왔던 기억을 해냈다. 

그리고는 경찰은 작전을 개시했다. 기름탱크를 운반했던 트럭과 장비들이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는지 밥상치우기가 무섭게 수박도 다 먹지 못했는데 경비과장이 기동대장에게 귓속말을 하고,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손짓을 몇 번 하더니 남자경찰들이 우리가 앉은 자리로 치고 들어왔고, 여경들이 들어와서 다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숫적으로 당해낼 수 없는. 몸부림쳐봐야 아무소용없는. 수명에게 고착당하고 감금상태로 싸워야했고. 도로를 열어주고 경찰들의 몸으로 벽을 세워서 일제히 가로막아서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할매라도 봐주지 않았고. 할배라고 봐주는 법 없었다. 

모두가 몸에 생채기를 남긴 채 기름탱크를 실었왔던 트럭과 장비들, 차량들을 다 내려보냈다.      


성난 주민들은 분이라고 풀어야겠기에, 오늘의 무법천지 같은 일들이 일 년에 몇 차례 반복되면서 누적되어온 분노를 폭발하지 않고서는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성주사드기지로 올라간 우리는 “전00대령 나와, 이 개새끼 나와” 라고 고함을 쳐댔다. 때마침 철조망을 두를 새가 없었던지 바로 기지 정문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보초병들은 나와보지는 못하고 문 안쪽에 자리배치되어 섰다. 

금연엄니가 들고 온 작은 막대기로 철문을 두드려대니 안에서 보초병은 ‘두드리지 마세요’ 하면서 개미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철문을 꼭 잡고 서 있었다.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퍼지지 못하도록 할 셈인가보다. 

한참을 그렇게 서서 부르고 서 있었나보다. 전대령을 기다렸던 건 아니었다. 

평생을 흙을 일구면서 살았던 시골마을에. 봄이 오고 새순이 날 때쯤 산에 올라 산나물을 뜯고 약초를 캐던 달마산에.

달마산 산꼭대기에 기름탱크가.  

국방부가 약속한 하루 전의 통보로 기름탱크를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아는 우리로서는. 

기름탱크는 막아야 한다는 우리로서는. 

우리에게 불어닥칠 재앙의 부메랑이란 것을 잘 알기에 성주사드기지 앞에서 통곡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7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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