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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Oct 31. 2018

사드철거 소성리 100회 수요집회에서 소성리 들기름 첫

사드철거 소성리 100회 수요집회에서 소성리 들기름 첫선!!

추수철이 되기도 전부터 들깨 수확하면 소성리평화장터로 내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작년에 우연히 들깨를 한말, 두말씩 냈더니 들깨를 받아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알이 튼실하고 양도 많다고 좋아라했다. 무엇보다 어리숙한 우리는 들깨 한 말 가격을 턱없이 낮게 불렀다. 소성리농가는 사드 때문에 소성리마을을 찾아주는 연대자들에게 파는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가격은 생각하지 않고 듬뿍듬뿍 퍼 담아주었다. 갓 장사를 시작한 애숭이 상인인 나는 농가에 소득이 되도록 이문을 남기지 않는다면서 농가가 부르는 가격대로 물건을 냈다. 농가에 정말 소득이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소성리 들깨를 받아든 사람들은 소성리 할매들이 농사를 아주 깔끔하게 잘 짓는다고 입을 모아 칭찬해주었다. 소성리 농산물은 믿고 살 수 있다는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주었던 작물이 바로 들깨여서 더욱 애정이 간다.  

올해는 날이 아주 가물었고, 뜨거워서 들깨수확이 변변치 못하다고 한다. 부녀회장님이 할매들 집집마다 농사지은 들깨 수확량을 보고 공평하게 내보겠다고 했는데, 생각만큼 양이 안 나오는 지 아직까지 뚜렷한 답이 없다. 할매들은 집에 먹을 만큼만 했다면서 낼 게 없다고 손사레를 치기도 한다. 부녀회장님이 워낙 밭농사를 많이 지어서 다른 집 물량 없어도 충분하겠지만, 명색이 소성리평화장터인데, 주민들이 농사지은 거 골고루 받을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 한말이든 두말이든 되는대로 내어달라고 부탁했다. 소성리평화장터 때문에 소성리주민들이 애먹는다. 

부녀회장님이 소성리할매들께 들깨 한말이든, 두말이든 내어주자면서 가격은 작년보다 조금 더 받아야 한다고 해서 나와 최종적으로 가격협상을 타결지었다. 부녀회장님이 할매들께 당부한 것은 되를 깎지 말고 고봉으로 담아달라고 했다. 가격은 작년보다 올랐지만, 할매들의 인심이 고봉보다 더 큰 고봉인지라, 장사 잘하면 돈도 많이 벌겠거니 기대한다. 

나도 할매들에게 약속을 했다. 들기름 많이 팔아서 돈 벌면 민들레합창단에 후원하겠다고 주거니 받거니 한다.     

올해 소성리평화장터는 소성리에서 나고 자란 들깨를 스무말 사들일 작정이다. 소성리들깨로 짠 기름을 올해 내내 팔 예정이다.   

첫 번째 들깨를 내준 분은 봉정할매(나, 도금연이오!)다. 많은 농사는 아니지만, 들깨 타작하고나니 낼만큼은 되어서 두말을 내어주신다. 봉정할매댁에 들깨를 가지러가니 할매 덩치만한 자루에 가득 담은 들깨를 저울에 달아 보여준다. 바늘이 20하고도 2에 찍힌다.  한말의 무게가 9킬로그램인데, 한 두되 더 넣어주면 10킬로그램을 찍는단다. 할매는 두 말을 한 자루에 담아서 몇 바가지나 더 퍼담았나 보다. 저울 위에 올라선 들깨자루가 22킬로그램을 찍었는데도 봉정할매의 손은 바가지를 들고 옆 자루의 들깨를 퍼서 옮겨 담는다. 나는 속으로 좋으면서도 입으로는 할매 그만 퍼담으이소. 너무 많이 퍼주면 할매 남는 것도 없겄어요. 하면 봉정할매는 괘안타. 이거 짜면 스물 몇 병 나올끼다 한다. 

들깨 한 자루를 들고 차로 실어 나르니 무거워서 낑낑거렸다. 봉정할매는 들깨 실어 놓고 온나. 꿀밤 묵 줄 텐께 가져가서 묵어라고 한다. 나는 지난번에 얻은 묵도 있어서 안 받아도 된다고 사양하지만, 야짤 없다. 봉정할매는 이것도 먹어봐라며 막무가내 챙겨주신다. 내려가면서 참새방앗간에 들러서 기름 짤기제? 주원이네도 한 모 줘라 하신다. 

참새방앗간은 묵 많이 만들었던데 뭐하러 줘요? 하고 물으면 이것도 맛 봐야지 하신다. 

글고 한의원에 있제, 의사도 하나 갖다 줘라. 지난번에도 약 지었는데 그냥 주더라. 매번 미안터라. 꿀밤묵이라도 하나 줘야지. 하며 이 사람 저 사람을 챙긴다. 한모만 주면 인심 없다면서 한 모를 더 얹어주신다. 

올해 꿀밤이 풍년이라 소성리할매들이 꿀밤 줍는다고 한창 주웠는데, 꿀밤으로 하루가 멀다하고는 묵을 만들어서 소성리 토요촛불문화제에 뒷풀이 음식으로 내어주셨다. 묵을 만들 때마다 이 집에서 한 모, 저 집에서 한 모씩 챙겨주어서 나는 하루에 두 끼를 묵을 쳐서 먹어야 했다. 귀한 음식이다.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꿀밤 줍느라고 수구리고 있어야 하지, 추운날 찬물에 손담구고 무거운 솥이며 대야며 날라 대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게 얼마나 고된지 안다. 그래서 묵 한 모 받는 손이 부끄럽고 미안한데, 먹기라도 알뜰하게 잘 먹어야 겠다면서 열심히 묵을 쳐서 먹었다. 그런데 오늘 또 묵을 받으면 이 일을 어찌할꼬? 

다행히 내가 받은 묵은 할매께는 잘 먹겠다고 인사하고, 한의원의 의사와 직원들 나눠먹으라고 다 내어드렸다. 마음만 감사히 받는다. 

참새방앗간에도 봉정할매가 만든 묵을 드렸더니 사장님이 씩 웃는다. 다들 이렇게 노나먹고 사는구나. 

지난번에 참새방앗간 사장님이 묵 한 모 줄라는거 한사코 사양했는데, 내가 얼마나 경우 없는 짓을 했는지 뒤늦은 후회를 했다. 나눠주는 건 이것도 맛보고 저것도 맛보란 건데, 많으면 나도 이웃과 나눠먹으면 될 것을 말이다. 

들깨 이야기 하다가 도토리묵 이야기로 새었다. 올해 도토리가 많이 열리는 해라서 묵도 실컷 배부르게 먹었다. 내년에는 도토리가 이만큼 안 나올거란다. 

다람쥐는 올겨울 풍족하게 먹겠지? 

봉정할매가 내 준 들깨 두 말을 참새방앗간에 맡겼다. 먼거리 택배 보낼 수 있도록 플라스틱병도 주문했다. 집에 도착하면 한번 헹궈서 말려서 사용해야 한다. 일단은 첫 번 들기름은 참새방앗간의 병에 담기로 했다. 

내일 사드철거 소성리 100회 수요집회에 들기름을 선보일 작정이다. 

소성리 들판에서 나고 자란 들깨를 수확한 농부의 정성으로 사드가 철거되는 날까지 정직한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보자.     

「열매의글쓰기 2018년 10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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