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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Oct 31. 2018

죄 많은 항고니

죄 많은 항고니,    

며칠 전, 김천촛불로 향하던 일요일 밤에 할매들이 느릿느릿 골목길을 따라 나오는 모습이 보였지만 부녀회장이 나오지 않았다. 추수철에 많이 바쁜가보다 하면서 일부러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그 다음 일요일에도 부녀회장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은 되었지만 밭에 추수할 것이 많다는 걸 알기에 굳이 전화를 드려서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내심 무슨 언짢은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토요일 부녀회장님은 한 팔을 꼭 감싸 안고 촛불문화제에 오셨는데, 팔이 펴지지 않을 정도로 아파하고 있었다. 

추수철에 할 일이 밀리고 있는데, 일하다 팔이 아파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방에 드러누워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면서 통증이 심하니까 나도 모르게 항고니 욕이 입에서 절로 나오더라면서, 항고 xx야 하고 악을 쓸 때마다 내가 이러다가 지옥 가는거 아닌가 걱정도 되는데, 욕이라도 안 하면 서러워서 안되겠더란다. 

작년 한창 사드 때문에 싸울 때 경찰들한테도 억압을 많이 당했지만, 지금 아픈 팔은 결정적으로 성주군 행사에 항의할 때 공무원들이 쫓아 나와서 잡고 비틀었던 팔이다. 아픈 게 어디 한 가지 이유만 있겠나 만은 작년에도 팔이 아파서 한참을 병원 다니고, 한의원 다니면서 침맞고 뜸뜨고 찜질해가면서 통증을 달랬었다. 올해 아니나 다를까 일이 많은 철에 들어서니 팔이 고장 나고 말았던거다. 

결국 몇날 며칠 아픈 걸 참아가면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했고,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부녀회장님이 내일은 열일 제껴 놓고 병원에 가야겠다는 말이 나왔다. 규란엄니도 어깨랑 팔이 아파서 죽겠다고 하고, 금연할매도 들깨 타작하고 나서 어깨랑 팔이 아프다고 해서 월요일에 한의원 가자고 했다. 내가 모셔가겠다고 하니까 옆에 섰던 규란엄니가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버스타고 가면되는데, 뭐하러 이까지 왔다갔다 하냐고 손사레를 치면서 말린다. 워낙 남한테 손 벌리는 성미 아닌거 아니까, 필요할 때 언제든지 연락주시면 달려올테니까 괜히 미안해 하지 말라고만 했다. 

병원가기로 한 월요일은 또 병원 가는 걸 미뤘다. 다음날 부녀회장님께 연락이 왔다. 뭐하고 있냐며 조심스러운 전화목소리가 들린다. 집에 있다고 하니까 한의원에 왔는데, 소성리 올라가는 버스시간이 한참 남아서 전화를 한거다. 규란엄니랑 금연엄니랑 셋이서 한의원 치료는 다 받고 보니 버스시간이 한참 남아서 연락을 취한 듯 보였다. 규란엄니는 아마도 말렸을테고, 부녀회장님이 전화를 한번 해보자고 한 듯 하다.  다행히 다른 일은 없어서 당골한의원으로 쫓아갔다. 세 어른이 신발가게 앞에서 장화를 산다고 서있다. 

그냥 자기 살궁리로 일하다가 아프기만 했다면 내 마음이 그렇게 애닳을 일은 아니었을거다.  사드가 들어오기도 전부터 사람 속을 홀라당 뒤집어놓고, 사드가 들어오고 나서도 홀라당 뒤집어진 속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롯데골프장을 사드부지로 확정하고 나서 군민들 배신한 성주군수 항고니가 롯데골프장에서 마지막 골프대회를 개최한다고 했을 때, 처음으로 골프장으로 올라가는 마을도로를 막았던 사람들이 소성리 엄니들이다. 골프장 장비를 빼내려고 커다란 대형화물트럭이 내려올 때도 도로를 막고 버텼던 사람들이 우리 엄니들이다. 그리고 나서부터 사드 들어오기 전까지도 군대를 갖추는 데 필요한 각종 장비들과 미군차량, 유조차, 기름탱크 등 온갖 잡것들이 들어올 때마다 막고 싸우고 끌려나오고 나이든 몸뚱아리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이제 골병을 안게 되었으니, 기가 막히고 콧물,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규란엄니는 괜찮다고 하지만, 버스도 잦지 않은 시골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고달프게 한의원을 다니게 하고 싶지 않은 것도 내 마음인지라, 다른 건 몰라도 엄니들 한의원 다니는 건 잘 모시고 싶었다. 다행히 교통이 불편하니 내게 연락을 한거다. 

한의원에서 치료받고 나니까 좀 괜찮은 거 같다는 느낌적 느낌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몇 번은 더 다녀야겠지만 오랜만에 나들이 나온 김에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월항에서 왜관으로 넘어가는 산길에 있는 오래된 칼국수집으로 갔다. 월항의 용각출신인 규란엄니가 어릴 적에 소풍가던 길을 따라 달려가니 으스스한 귀곡 산장 같은 칼국수집이 나왔고 입맛 까다로운 우리엄니들은 국물이 시원치 않다며 평가점수가 낮아졌다. 나는 꼭 비빔칼국수를 먹는다.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규란엄니가 점심을 사주었다. 

다음날은 부녀회장님 딸레미가 차를 태워서 한의원으로 모셨다. 딸레미까지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딸레미는 출근을 해야 해서 소성리로 모시고 올라가는 건 내가 맡았다. 치료를 마칠 때면 딱 점심시간이라서 밥을 먹자며 돌솥밥을 먹으러 갔다. 여러 가지 잡곡과 콩을 넣어 구수하고 찰진 밥이 맛있는 집이었다. 내가 계산하려고 일어서는 순간 잽싸게 부녀회장님이 나를 밀리고, 딸래미가 계산을 해버렸다. 무슨 눈치작전도 아니고,  한의원 가는 길이 매일 잔칫날이다. 

삼일을 연달아 한의원을 다녔다. 다녀올 때마다 맛있는 점심을 함께 먹었다. 몸이 좀 가벼워지고 개운해져서 그런가 치료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경쾌한 수다도 많이 떨었다. 항고니 욕 안해야 할낀데, 내 아플 때는 항고니한테 온갖 악담을 다 퍼붓게 되더라는 부녀회장님의 우스개 소리도 웃으면서 들었다. 

사드배치가 성주로 확정될 때는 반대한다고 발벗고 나섰던 성주군수가 소성리는 마치 성주가 아닌 양 제3부지를 운운하면서 소성리로 떠넘겨버린 항고니는 소성리주민들에게 역적 중에 제일 역적이 아닐 수가 없으니 악담을 퍼붓고 저주를 퍼부어도 항고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거다. 

소성리로 들어서자 엄니들은 추수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빠졌다. 팔이 좀 나아졌으니 또 아플 때까지 일해야 한 해를 또 살아질테니까. 그러다 또 팔이 빠질 듯이 아프면 한의원가서 침맞고 뜸뜨고 찜질해야지. 이렇게 골병이 들어가는가보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 10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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