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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Nov 05. 2018

이게 다 사드때문이야.

청와대 연풍문 상복입은 소성리할매들

이게 다 사드 때문이야.


집실댁할매가 나를 보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배가 고프다”고 한다. 버스에서 먹다 남은 떡이랑 김밥을 드렸다. 청와대 사랑채 앞 광장에 남은 우리는 청와대 관계자와 면담을 하러 간 대표단들이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소성리부녀회장님과 할매들 일곱 사람도 대표단과 함께 청와대로 올라가고, 집실댁할매와 춘자할매, 상순언니는 걷는 게 불편하여 남아있었다. 다행히 십시일반 밥묵차 유희님이 소성리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버스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떼운다는 소식을 듣고는 따끈한 쇠고기국을 끓일 준비를 해왔다. 

집회하는 중에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밥묵차에서 따끈한 쇠고기국밥을 먹고 있다고 했다. 자리가 듬성듬성 비워져서 배고프다는 집실댁할매를 모시고 일어서지 못했다. 자리가 텅 빌까봐 걱정도 되었다. 아침도 옳게 못 먹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실댁할매한테 쇠고기국밥 끓여놨다는데 가입시다 하고 여쭈니 할매는 그래 가자면서 벌떡 일어났고, 옆에 앉았던 춘자할매랑 상순언니도 따라 일어섰다. 밥묵차로 향했다. 

십시일반 밥묵차에 큰 솥 두 개가 끓고 있었는데, 하나는 맑은 쇠고기국이고, 다른 하나는 생강차 냄비였다. 돗자리를 꺼내서 인도 한 켠에 펴서 할매들이 편히 앉게 해드렸다. 

따끈한 국물에 밥을 말았다. 국물 한 숟갈 후후 불면서 떠먹었더니 속이 후끈 달아올랐다. 춥진 않았지만 소성리에서 서울까지 장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면서 시간에 쫓겨 제대로 된 식당에서 밥을 먹지 못했다. 김밥 한 줄과 떡이랑 몇 가지 주전부리를 하면서 끼니를 떼웠더니 배는 안 고팠지만 속은 허전했었나 보다. 속이 좀 풀리는 듯 느껴졌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퍼먹을 때마다 청와대로 올라간 우리 소성리할매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청와대 면담에 함께 들어간 줄 알았는데, 소성리부녀회장님과 할매들은 연풍문 앞에서 상복을 갈아입고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한 낮의 햇살이 따듯했다. 많이 춥진 않지만, 햇살이 비치지 않는 곳은 쌀쌀했다. 아침도 못 먹고 점심이라고는 버스 안에서 김밥한 줄 먹은거 밖에 없을텐데, 따뜻한 국물 한 그릇 드시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부녀회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할매들과 연풍문 앞 도로에 나앉아있는데 행인들이 꽤 많이 지나다닌다고 했다. 올라와도 괜찮을 텐데 하지만, 이미 우리가 길을 건너서 청와대 방향으로 올라갈려고 할때면 경호원들이 쏜살같이 나와서 못 올라가게 제재를 가했다.  노곡리에서 온 할배도 소성리할매들이 상복을 입고 연좌시위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모셔드리려고 했지만 길을 건너는 신호등에 서는 순간 경호원들이 우리를 빙 둘러싸고 못 올라가게 막았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노곡리할배만 경호원이 모시고 다녀왔다. 다녀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길건너에서 보기만 하고 가까이는 가지도 못하게 했단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자유롭게 통행하는 길에 사드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사람들만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았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부녀회장님께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다. 부녀회장님은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다른 할매들은 어떤지 물어봐야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부녀회장님의 전화가 왔다. 할매들이 배가 살살 고플라 한다면서 뭐 먹을 게 있겠냐고 묻는다. 마침 십시일반 밥묵차가 쇠고기국밥을 준비했다고 말하니 부녀회장님은 잘되었다면서 할매들 한 그릇씩 드실 수 있도록 보내달라신다. 

전화통화를 끊자마자 유희님께 할매들 드실 국밥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먹을 수 있도록 포장해주시겠다고 했다. 소성리부녀회장님과 할매들 일곱명과 면담 들어간 우리 대표단들을 합하니 모두 열 두명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12개의 종이그릇에 남은 밥을 탈탈 끍어서 담고 국을 펐다. 그리고 생강차를 그릇 두 개에 담았다. 상자 안에 14개의 그릇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들어앉았다. 내 품에 안기자 뜨끈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유희님은 애정넘치도록 센스있게 반찬거리와 삶은 고구마도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싸주었다. 할매들 만나러 갈 생각에 빨리빨리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었다. 정신없는 건 유희님도 마찬가지인지 국을 퍼던 국자로 생강차를 퍼서 담고, 내가 무슨 국자로 어떻게 퍼담았는지 깜빡깜빡한다면서 웃었다. 

정보과형사가 밥묵차로 슬쩍 다가왔다. 위에 밥얘기하던데요 하고 묻길래, 나는 할매들 밥먹는데 시비를 걸거라는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할매들이 배고프다고 해서 국밥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갖다드리고만 올께요 하니 그는 의논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밥 먹는 걸 무슨 의논을 해요 하고 물으니 제가 결정권자가 아니라서요 했다. 얼렁 의논해주세요. 금방 준비 다 돼요 하니 알았다면서 돌아갔다. 통상적으로 정보과형사와 친할 이유는 없지만 밥 먹는 문제는 당연히 협조하는 게 상식이라 여겼다. 그때까지는. 

형선교무님은 반찬봉다리를 들고, 나는 국밥상자를 안고 청와대로 가는 신호등에 섰다. 경호원들이 긴장하면서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가냐고 묻는 경호원들에게 소성리할매들 따끈한 국밥을 드리러 간다고 했다. 경호원들은 자신들이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직접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빨리 갖다드리고 내려오겠다고 했다. 그들은 안된다고 했고, 그들은 우리가 대표단 열명으로 약속을 했는데, 한명 두명씩 올라가서 약속을 어겼다고 했다. 우리는 아무도 올라가지 못했다. 올라가도 곁에 가지 못했다. 길 건너에서 바라보고 내려온 사람이 있긴 했지만, 이후로 우리는 청와대일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었다. 우리는 계속 청와대 경호원들과 경찰의 제재를 당해야 했다. 경호원은 의논해보겠다고 했고, 안된다고 했다. 우왕좌왕 길거리는 소란스러워졌다. 관광객이나 길을 걷는 행인들은 청와대 경호원과 경찰이 뒤섞인 거리에서 엄호를 받으면서 길을 건널 수 있었지만 우리는 아무도 신호등을 건널 수 없었다. 신호등 건널목은 경호원과 경찰이 다 막아서 버렸다. 광장은 계속 집회를 이어갔지만 할매들께 드릴 밥이 길을 건너지 못하자 신호등 앞 인도에서 항의하기 시작했다. 

사드뽑고 평화심자라는 구호를 외쳐야 할 우리는 소성리할매들께 밥을 전하라는 요구를 외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실랑이 벌이면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나를 본 유희님과 태령님이 국밥에 손을 대보더니 국밥이 식어가고 있어 라며 흥분했다. 내가 들고 있는 국밥상자를 뺏아 들고 경찰을 뚫을려고 몸부림 쳤다. 순간 나는 국밥이 쏟길까봐 걱정했다. 밥묵차에 있던 마지막 밥을 싹싹 긁어온 것을 아는 나로선 이 와중에 유희님이 다시 밥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을거라서 국밥이 쏟기지 않도록 감싸 안았다. 할매들 먹을게 없어질까봐 걱정이었다. 나는 국밥이 담긴 상자를 꼭 안고 있었다. 

신호등 앞은 경찰들이 가로막고, 신호등 아래로 시민들이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안내한다. 내가 길을 건너는 시민들 쪽으로 걸을때면 경호원이며 경찰은 나를 막기 위해서 이동한다. 시민들도 가로막히기도 했지만 그들은 무슨일인지 호기심을 가지지 않았다. 

우리 사람들은 줄기차게 사드를 철거하라고 요구하면서 소성리할매들에게 밥도 주지 않는 문재인정권을 비판했다.     

이게 다 사드 때문이다.

할매들에게 밥을 올리지 못한 나는 차도로 내려와서 걸었다. 나를 가로막던 일부 경호원들이 저녁식사시간이 되자 식당을 향해 걸어 내려가는 것을 따라 걸었다. 경호원들은 내게 다가와 위험하다면서 인도로 올라가라고 한다. 그들은 나를 빙 둘러싸면서 몸을 밀쳐대었다. 여러 사람이 나를 위협했다. 내 두 손은 국밥이 담긴 상자를 들고 있었고, 내 곁에는 태령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위험한건 차도를 달리는 차가 아니라 나와 나의 이웃들을 위협하고 인신을 구속시키는 국가공권력이다. 

그들은 내 안전을 걱정한다고 했다. 안전이라고?

당신들은 젊은 내 안전은 걱정을 하고, 나이가 팔순이 넘어선 할매들의 안전은 외면하는가?  점심 때 먹은 김밥 한 줄로 다섯시간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길바닥에 앉아서 추위를 맞이하고 있는 할매들의 안전은 걱정되지 않냐고 따져물었다. 젊디 젊은 당신과 나의 안전보다 더 안전해야 할 사람이 할매들이다. 당신들은 할매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국밥이 다 식어가도록 길을 막고 우리와 할매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할매들을 고립시키고 감금시켰다. 도대체 누가 더 안전해야 하나? 당신들이 말하는 안전은 누구의 안전인가? 소성리할매들을 위험에 빠뜨린 당신들이 내게 안전을 말할 자격이 없다.     

이게 다 사드 때문이야. 

우리가 시골에 산다고 무시하는가? 시골 촌구석이라고 얼마나 무시했으면 사람들이 농사짓고 살고 있는 마을 바로 위에 위험천만한 군사무기를, 사드를 주민들에게 동의 한번 구하지 않고 소성리에 처박아 둘 수가 있나? 사드가 그렇게 좋은거면 소성리 골짜기에 갖다두지 말고 청와대 너른 앞마당에 꽂아두면 될거 아닌가? 소성리주민들은 사드가 필요하지 않다. 사드가 바라보고 있는 김천의 혁신도시 시민들도 사드는 필요없다. 사드 같은 백해무익한 군사무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가져가라고 매일같이 촛불을 들어 외쳤건만, 대통령은 자국민의 목소리에 한번이라도 귀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이렇게 사람을 무시할 수가 있나? 우리는 시간이 많아서 남들 단풍놀이 하러 관광버스 탈 때 청와대를 향해서 데모하러 온 줄 아는가? 평생을 땅만 파던 농사꾼들에게 가장 중요한 추수철에, 눈코뜰새 없이 바쁠 시절에 4시간이 넘도록 버스를 타고 서울을 오는 게 우리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청와대로 올라와야 할 만큼 급박하고 긴요한 일이 있지 않았나? 

비록 문재인대통령이 사드배치를 철회시키겠다고 약속한 바는 없다손 치더라도, 1700만의 촛불정국으로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대선주자로 나왔던 문재인대통령의 후보시절, 적폐청산의 6대과제 중의 시급한 문제였던 사드배치와 관련해서 소성리주민들과 사드를 반대하는 국민들에게 기대를 품을 희망고문을 끊임없이 가해오지 않았나?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다지만, 임시배치라는 말도 안 되는 말장난 해대는 당신의 세치의 혀에 나는 분노했다. 그러나 임시배치라는 말장난에도 배치의 사유가 소멸되면 사드는 뺀다는 희망적인 해석을 하면서 임시배치의 기만성보다는 언젠가는 사드를 뺄 날을 만들겠다는 희망으로 고난의 시간을 버텨왔다.  자국민의 작은 소망을 외면하는 정경두 국방부장관의 사드정식배치 망언을 듣고 우리더러 또 등신이 되고 또 참고 기다리라고 할 참인가? 정경두의 망언은 정경두의 망언인가? 물어야 했다. 대답을 들어야 했다. 

우리 할매들은 자존심이 없나? 

청와대 연풍문앞까지 가서 상복을 갈아입고 연좌시위를 하는 할매들이 밥을 안 주면 내려올 사람들인가? 밥먹고 밤새워 싸울까봐 겁먹단 말인가? 

애초에 이 먼 땅 서울까지 올라올 때 우리 할매들이 작정을 한 것이 당신들 눈에 보이지 않는가? 

싸울 때 싸우더라도 모질고 인정머리 없이 밥을 막아선단 말인가? 

비정한 국가권력

비루한 정권

내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더욱 분노가 끓어 올랐다. 

문재인정권 당선되자마자 해고되어 길거리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청와대 면담을 요구하면서 스무날이 넘는 시간을 농성할 적에 비닐 한 장 치지 못했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비 가릴 비닐 한 장 내주지 않았던 정부가 촛불로 교체된 문재인정권이었다. 

길거리에 쫓겨난 노동자에게 비닐 한 장 내주지 않는 정권이면 할매들 밥 굶기는 것도 예사롭다. 

감정이 폭발할 거 같이 끓어오를 때 국밥이 담긴 상자를 저들의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지만 참았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나마저 할매들을 밥 굶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참고 참았다. 

결국 어둑해질 때쯤 국밥은 점점 식어갔지만 아직은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경호원에게 사정했다. 누구에게도 사정해 본 적 없었던 내가, 나는 올라가지 않겠다 당신들이 국밥을 할매들께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직은 미지근해서 먹을 수 있다. 더 시간이 지나면 차가워져서 먹지 못한다. 내 대신 전달해달라고 사정했지만

그들은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열매글쓰기 2018년11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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