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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Nov 06. 2018

상복 입은 소성리할매가 청와궁 간 사연

상복 입은 소성리할매가 청와궁에 간 사연

     

서울 청와궁에 도착했다면서 버스를 세웠다. 청와궁 바로 앞은 아니고 200미터정도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짐을 챙겨서 내리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임순분부녀회장님이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짊어진다.

아이고 가방에 뭘 넣어가지고 이리 큽니꺼? 제가 들께요. 하니 임회장님은 한사코 자신이 가방을 들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한테 신세 지는 성격아닌 거 아니까 가방 안에 상복이 가득 들어있을거란 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정경두 국방부장관의 사드정식배치 라는 망언에 분노한 소성리주민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 청와대에서 내린 지시였는지, 정경두의 혼잣말인지 따져봐야 한다면서 청와대로 올라가자는 이야기가 벌써 여러 날 전부터 나왔고, 청와대로 항의하러 올라간다고 하니 김천촛불도 같이 가자고 나선 길이었다. 버스는 한 대 맞췄는데, 사람은 꽉꽉 차서 결국 승용차 두 대는 따로 올라가야 했다.

서울 청와궁으로 가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나섰지만, 사람은 많고 좌석은 부족하고, 김천에 들러서 율동맘을 태워야 하고, 어수선한 출발로 시간은 지체되었고, 토요일 단풍놀이 가는 관광객이 많은 고속도로는 정체가 심할 거라 예상하면서 휴게소도 딱 한 번 들렀다.  

휴게소에서 화장실 볼 일을 보고 탑승하기 직전에 임회장님과 할매들 열 명이 둥글게 모여서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임회장님은 마을주민들끼리 의논할 거 있다면서 나를 물렸다. 작당이 있을거란 생각에 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알때가 되면 알게 되테니까.  

청와대 사랑채 앞 광장에서 ‘사드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지고 청와대 측과 면담을 진행키로 되어있었다. 우리측 대표단과 임회장님과 할매 일곱명이 청와대를 향해 걸었다. 대표단이 떠나고 나니 소성리에서 함께 올라온 집실댁할매와 춘자할매, 상순언니가 광장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청와대 연풍문 앞에 올라간 우리 할매들이 상복을 입고 연좌시위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임회장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집실댁할매와 춘자할매를 광장에 두고 와서 걱정이 되었던 거다. 상복이 일곱 벌밖에 없었고, 대표단은 모두 열 명만 올라가기로 약속이 되어있어서 거동이 불편한 세 사람은 광장에 두고 나머지 할매들만 올라갔던거다. 남은 할매들이 섭섭해 하지 않도록 잘 설명을 해달라는 거였다. 그리고 연풍문 앞에 있어보니 관광객이나 시민들이 모두 자유롭게 지나가는 거 보니 세 사람이 올라오고 싶으면 와도 될 거 같다면서 모시고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연락을 한거다.

광장은 우리측 대표단이 면담을 잘하고 올 수 있도록 힘을 실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참여자들의 발언과 민들레합창단의 젊은단원들의 노래며 ‘사드뽑고 평화심자’를 줄기차게 외쳐대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집실댁할매와 춘자할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올라가볼라요? 하고 여쭈니 다리가 아파서 걷고 싶지 않다고 했고, 광장을 지키겠다고 한다. 우리 옆 노곡리의 할배가 소성리할매들 상복입고 연좌시위한다는 데 한번 가보자고 한다. 그러나 청와궁으로 가는 신호등 건널목에 서는 순간 청와궁 경호원들이 우르르 우리 앞을 막아섰다. 할배만 경호원이 모시고 연풍문으로 다녀오기로 겨우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연풍문 앞 소성리할매들 가까이 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고, 길건너에서 상복입고 길에서 연좌하는 모습만 보고 내려왔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춘자할매랑 상순언니가 한번 올라갔다가 오자며 길을 나섰다. 나는 일부러 따라가지 않고, 어디로 가는지 길만 알려주었다. 내가 나서면 길도 건너기 전에 붙잡힐거 같아서였다. 두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이 보았다. 찾아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잠시후에 경호원들이 서둘러 움직인다. 소성리에서 온 주민이라는 걸 눈치채고는 붙잡으러 간거다. 잠시 후에 두 사람은 경호원에게 붙잡혀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기 마을이 아니다 보니 아무말도 못하고 이끌려 내려오는 듯 보였다.

춘자할매가 내게 화를 낸다. 나한테 화가 난건 아니다. 저놈들이 가던 길을 돌려세웠으니 화가 날 수 밖에.

사회자가 발언을 독려할 때, 춘자할매께 한 말씀 하라고 했다. 춘자할매는 할 말이 없다면서 손사레를 쳤고, 나는 경찰들이 못 올라가게 막은거라도 이야기 하면 좋자나 했더니 단번에 마이크를 달라고 한다.

마이크를 잡은 춘자할매가 “아 이놈들아. 이 나쁜 xx놈들아, 니들이 뭔데 내 길을 막는거야. 니들만 사람이냐? 우리가 있어야 니들도 있고, 니들이 밥먹고 사는건데 왜 우리를 못 가게 막는거야? 이 xx새끼들아” 하면 생각지도 못한 폭발음을 낸거다.

그렇게 고래고함을 치고 들어와서는 내게 “내가 너무 심했지요?” 하면서 멋쩍어 웃는다.

     

사드철거를 요구하는 평화회의 대표단과 함께 연풍문으로 간 임회장님과 소성리할매들은 길에 나와 있었다. 연풍문에 도착하자 대표단은 청와대 측과 면담하기 위해서 건물 2층으로 올라갔고, 청와궁 행정관이 임회장님과 소성리할매들은 1층의 영접실로 안내를 하더란다. 할매들이 실내는 답답하다면서 건물 밖으로 나왔고, 연풍문 앞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임회장님이 상복을 갈아입자 청와궁 행정관의 눈이 둥그렇게 커지더란다. 할매들도 그 자리에서 상복을 주섬주섬 꺼내 입었다. 한 낮이라 햇살을 따뜻했지만 그늘이 조금만 끼이면 쌀쌀한 날이었다. 겉에 외투를 입을까 살짝 고민이 되었지만, 연풍문 앞에서 상복을 입는 건 소성리에 사드를 빼가라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데, 외투를 입으면 아무소용 없을거 같아서 추워도 벗기로 했다. 할매들도 협조가 잘 되어서 상복 위에 외투를 걸치지 않았다. 다행히 옷 위에 상복을 입으니까 춥지는 않았다고 한다. 낮에는 춥지 않았을거 같다.

청와궁 행정관은 연풍문 앞 길거리에 상복을 입은 할매들이 연좌시위를 시작하자 그 모습을 혹여나 지나가는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보일까 싶어서 승용차와 봉고차를 끌고와서 차벽을 치려는 시도를 하자 임회장님도 민첩하게 도로로 뛰어들어 도로가로 얼굴만 내민채 누워 아찔한 상황이 돌발했었다. 청와대 행정관도 놀랐을테지만 소성리 상황실장도 너무 놀랐을 정도로 아찔했었다고 한다. 결국 온몸을 던져서 상복 입은 소성리할매들을 가리는 차벽은 거둬낼 수 있었는데, 숭악한 청와궁에서 길거리에 나앉은 할매들의 심정을 헤아릴 생각은 하지 않고 감시하고 감금하기 시작한거다. 화장실 가는 길도 따라 다녔다. 화장실 문앞에 경호원이 서 있더란다. 어딜 가도 할매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더란다.  

목이 말라서 물 한 잔 달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더란다. 소성리 할매들이 성질이 나기 시작하더란다. 서울인심이 야박하다고 해도, 그래도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사는 집에서 어찌 시골 먼 길 달려온 할매들한테 냉수 한잔 안 내주나 싶어서 약이 살살 오르더란다.

지나가는 거지가 집에 들러서 냉수 한사발 달라해도 거절하지 않는 법인데 우리가 거지보다 못하더냐고 악을 썼단다.

때마침 아래 광장에서 소성리 할매들한테 밥을 전해주라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할매들은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서 소리치기 시작했다는데.

바깥에 앉아있다가도 연풍문 문을 열고 “야 이놈들아 배고프다. 밥 내놔라”고 소리 치고, “목말라 죽겠다 물 한 잔 가져온나” 소리치며 항의를 했었다.

아래 위에서 밥 달라고 항의가 시작되자, 청와대 행정관이 쫓아와서는 할매들을 구슬렸다.  내려가서 식사하고 오란다. 연풍문 앞에서는 밥먹을 곳이 없단다.

우리 할매들은 내려가면 못 올라온다면 내려가는 걸 거부했다. 밥 가지고 오라고 요구했다.

행정관은 상복입은 할매들만 두 분씩 차례로 내려가면 꼭 올라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상복입은 할매만이라는 말에 할매들은 버럭 화를 냈다. 우리 대표단들도 배고픈데 우리만 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밥 안 줄라면 우리는 밥 안먹겠다. 밥 안먹어도 밤새 농성할 거다 라며.  

“국방부에 돈 쌓아놓고 있더만, 우리한테는 물한모금도 안 주는 이 숭악한 인간들아. 우리가 있어야 너거가 있지, 너거만 있으면 너거가 어찌 살건데?” 하면서 청와궁을 향해서 할매들은 비난을 퍼부었다.

“여기에 우리가 뼈 빠지게 일해서 넣은 것도 있자나. 근데 저 으리으리하게 좋은 건물에 우리한테 줄 물 한 모금 없단 말가?”

하면서 한참을 소리치고 항의한 덕에 겨우 물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었다고 경임할매가 전한다.

뜨거운 물이 든 컵을 바라본 우리 금연할매가

“여기에 커피 한 봉지 넣으면 좋겠구만 너거 국방부에 돈을 쌓아놓고 산다면서 커피 하나 못 태워주나?” 하며 비웃자.

행정관이란 자가 “죄송합니다”라고 하더란다.

할매들은 행정관들이 미안하다는 말은 참 잘하더라 고 한다.

할매들은 목도 말랐지만 뜨거운 커피 한 잔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더란다. 뜨거운 물을 보니까 커피믹스는 더욱 절절했던가보다.

태양이 기울수록 햇살의 따뜻한 기운은 받을 수 있는 양이 적어지고, 날도 까무룩 해지기 시작했지만, 할매들은 대표단에게 큰소리를 쳤다.

우리는 밤새울 작정으로 왔으니까 대표단은 우리 걱정하지 말고 면담 하이소. 결과도 없으면 나올 생각도 하지 마라고 했다.

사드철거가 하루만에 결정 될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도 서울까지 올라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정경두가 사드를 정식 배치하겠다고 말한 이상 임시배치이니까 사드가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고 해서 금방 나갈거란 기대도 희박해져버렸다. 언제 어느 때 정부가 정식배치를 하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벌여나갈지 알 수 없는 불안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다행히 아주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지만, 군부대를 건설하기 위한 공사를 하기 전에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겠다는 정도의 답변을 듣고서야 임회장님과 할매들도 자리를 정리할 수 있었다. 경찰을 철수시켜야 하는 몇 가지 사안도 있었지만, 할매들이 청와궁 앞에서 상복입고서라도 저항하지 않았더라면 무시하고 짓밟았을 저놈들이기에 비록 사드를 철거시키지 못했을지라도, 사드를 철거시킬 만큼의 아주 의미 있는 답변을 들은 것이다.

낯선 땅 서울, 그것도 대통령이 산다는 청와궁을 코앞에 둔 길거리에서 경호원에게 감금된 채 길바닥에 나앉았을 임회장님과 소성리할매들의 고립감이 얼마나 컸을까, 할매들의 긴 삶의 연륜과 지혜로 잘 극복할거라고 믿는다지만, 그래도 젊은 것들과 함께 있어야 힘이 날텐데, 할매들끼리 말은 못하지만 많이 두렵고 힘겨웠을 걸 생각해보면 가슴이 타들어갔다.

청와궁에서 내려온 할매들은 광장에 모인 사드철거에 열렬히 함께 해온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환영을 받았다. 화장실로 향하던 광순할매가 내게 그런다.

“소희씨가 간식봉다리 준거 있제? 그거 없었으면 클날뻔 했어. 할매들이 간식을 하나도 안 들고 왔더라구”

버스에서 내릴 때 참여자들에게 나눠준 간식봉다리는 떡이랑 귤, 사탕이랑 요구르트, 박카스가 들어있었다. 마침 하나가 남길래 내 뒤에 앉은 광순할매의 가방안에 넣어두고 집회하다가 나눠 먹읍시다 했던 것인데 그게 청와궁 상복시위하면서 유용했다는 뜻이다.

청와궁에서 뭔가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걸 아는 금연할매는 일부러 김밥한 줄 더 받아서 가방에 넣어두었지만, 막상 꺼내 먹으려니까 쉬어터져서 썰어 놓은 거 하나씩 나눠먹었다고 하고, 광순할매가 간식봉다리의 바람떡 하나씩 나누니까 모자라서 귤을 쪼개서 또 나눠 먹었다고 한다. 입맛만 다실 정도이지 배를 채울 수가 없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허기지고 추워지면 팔순노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을거다.

할매들 배 고플거라면서 내가 안고 있던 국밥상자는 밥묵차에 맡겼다. 유희님이 한 냄비에 담아서 다시 팔팔 끓였다. 밥과 국이 퍼질 데로 퍼져있지만, 그것마저 없었으면 어쩔뻔 했을지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힌다. 막막한 서울에서 식당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우리에게 십시일반 밥묵차는 구세주나 다를바 없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십시일반 밥묵차 식구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할매들 앞장 서는 일 없도록 젊은 것들이 좀더 나서야 할 때이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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