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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Dec 28. 2018

지금 컨디션이 최상이다.

지금 컨디션이 최상이다. 마음이 가뿐해졌고, 내 속에 켜켜이 쌓여갔던 원망과 설움이 폭우에 싹 쓸려 내려 가버린 듯 개운하고 가볍다. 

성주사드기지의 장병들 숙소의 지붕과 오폐수처리시설 등의 공사를 하는 바람에 한참동안 공사저지를 위해서 아침마다 진밭교로 오를 내릴 때였다. 몇 명 되지도 않는 공사저지 평화지킴이는 수백 명의 경찰에 에워싸여서 옴짝달싹을 못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동안 우리 평화지킴이가 얼마나 치욕을 견뎌왔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러던 한 날 나도 경찰에 둘러싸여서 있던 중에 젊은 경찰 한 놈이 내 가슴팍을 팔꿈치로 쳐서 나를 안으로 쑥 집어넣은 사건이 벌어졌다. 미친 듯이 그 놈의 팔을 부여잡고 경찰들에 둘러싸여 소리를 질러대면서 내가 폭행당했다는 소식을 알렸지만, 나의 동료들이 무엇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들도 나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인부와 공사차량은 모두 성주사드기지로 들어가 버렸고, 수백의 경찰병력이 빠르게 철수를 해야 하는데도 내가 악착같이 그 놈의 팔을 붙들고 놓지 않으니 또 다른 경찰 한 놈이 내 양팔을 꽉 쥐고 1차 가해했던 놈을 놓아주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그 놈은 경찰들 틈 속으로 들어가 행방을 찾을 길 없었고, 내 양팔을 벌려 위력적으로 잡았던 2차 가해자 놈은 나를 내팽개치면서 그들 속으로 유유히 들어가버렸다. 그날 나는 평소와 다르게 이성을 잃고 미친년 널뛰듯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쳤었다. 

미친년 널뛰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미친년 널뛰었다.     

내가 경비과장을 찾아가서 내가 당한 일을 알렸을 때 경비과장은 분명 내게 붙잡혀서 내가 이끄는 대로 끌려와주었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당한 수모를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경비과장의 몸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 그의 눈은 내 옆의 여경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또 다른 경찰에게 말을 해대면서 내말은 듣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나는 그를 잡아당겨서 팔꿈치로 가슴팍을 치고 말았다. 

내게 맞은 경비과장이 흥분하여 길길이 날뛰면서 나를 아주 험악하고 못된 여자로 취급하면서 아래로 뛰어가다시피 내려갈 때였다. 내가 그를 잡으려고 뛰어 내려가자 나와함께 경비과장에게 항의해주지 못할망정 나를 오히려 붙잡고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했던 거다.

그리고 위로의 말보다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무슨 문제를 해결해준단 말인가? 내 대신 아파할건가? 내 대신 수모를 겪어줄건가? 내 대신 고소를 당해줄건가? 내 대신 뭘 해줄려고 했길래 해줄 수 없다는 말이 내게 돌아왔단 말인가? 

그리고 경비과장은 나를 고소하였고, 나는 출석요구를 여러 차례 받았지만, 경찰에 출두하지 않아서 집 앞에서 연행되었다. 수갑에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경비과장의 치졸한 방식의 복수를 나는 받아주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경찰에 대한 원한도 깊어질 대로 깊어졌고, 내가 오르던 진밭에서 평화행동을 했던 사람들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었다.

그들이 나를 위해서 싸워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싸워주지 않아서 섭섭한 일은 없을거다. 그러나 흥분한 나를 붙잡을 것이 아니라 내가 경찰에게 당한 일에 대해서 항의를 함께 했어야 할 상황에 오히려 내가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된 거다. 

그 날 현장에 있지 않은 사람의 입에서조자 내가 너무 과잉행동한 거 아니냐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뒷담화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내 감정을 더욱 자극했다. 

경비과장을 지나가면서 보는 것도 치가 떨렸다. 그 놈과 웃으면서 인사하는 사람이 야속하고 섭섭했다.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면서 누군가에게는 친절을 과장하는 경비과장의 속셈을 모를 리 없다. 

이게 다 사드 때문이다. 

이게 다 국가권력이 주민들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사드를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경비과장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진밭은 내게 기피의 장소이게 했다. 조용한 시간에 평화를 만나러 간다. 평화의 간식을 먹이고, 운동시켜주고, 성주사드기지로 가는 길목인 진밭은 참 아련하게 슬프다. 

내 마음 속에 찌꺼기 같은 감정이 쑥 내려가게 된 건 연극창작모임을 하게 되면서다.

어쩌다가 진밭에서 경비과장의 가슴팍을 쳤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영웅담이 아니라 내겐 상처가 된 이야기다. 그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서럽고 원망이 가득하다. 경비과장이 미워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 남모를 이런 사연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을테지만 누구도 입밖으로 내지 못할 테니까. 특히나 남성, 어른, 지위를 가진 사람은 더 그럴거 아닌가? 감정을 배설하지 못해서 속에 홧병을 담고 살고 있을거 생각하면 

나는 내가 겪은 일을 밖으로 바가지에 듬뿍 담아 퍼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진실을 알게 되었다. 

반전이다. 

소야의 하얀집 쥔장과 손배우가 마침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공사저지활동하다가 경찰들 사이에 둘러싸여 꼼짝 달싹 못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으니 말하지 않아도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손여사의 눈에는 내가 경비과장을 개끌 듯이 끌고 가더란다. 경비과장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거 같이 보여서 말을 잘 들어주는 걸로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팔꿈치로 경비과장을 치는 걸 보고는 전마가 폭행당사자인가 싶을 정도였다고, 

이제야 말할 수 있다 분위기가 조성되자, 옆에 앉았던 쥔장이 내 바로 근처에 보고 있었는데, 내가 팔꿈치로 경비과장을 칠 때 ‘퍽’ 하는 소리가 날 정도였고, 경비과장이 뒤로 나자빠질 정도는 아니지만 뒤로 휘청거렸다는 거다. 경비과장의 표정은 무척 놀랍고 당황스러워 하는 거 같아보였다는 거다. 설마 자신을 칠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테니까 말이다. 

너무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빵’ 터져버렸다. 

지금껏 가장 서러웠던 것 중의 하나가 경비과장에게 팔꿈치로 가슴을 치는 흉내는 냈지만 내 팔꿈치가 가슴에 닿지 않았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그렇게 맞았다고 시늉만 했을 뿐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한번도 때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고소까지 한 그 놈이 미워서 미칠 지경이었던거다. 

그런데 경찰너머에 있던 쥔장이 ‘퍽’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세게 쳤다는 목격자 증언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던거다. 왜 이제야 그 이야기를 하냐고 물으니 내가 너무 흥분해 있어서 말할 수가 없었고, 고소까지 당했다고 하니 차마 입 밖으로 말을 꺼집어 낼 수가 없었다는 거다. 

혹시나 재판을 하게 되면 증인으로 참석해도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손여사의 표현대로 내가 경비과장을 개 끌 듯이 끌고 왔다는 것도 우습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쳤다는 것도 상상만 해도 배꼽이 빠질 뻔 했다. 

내가 과히 얌전하지는 않았구나. 머리에 뚜껑이 다 열려있어서 내 행동은 객관화시키지 못하고 미운 경찰놈들 때문에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섭섭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나 하는 반성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묵은 채증이 내려가는 거 맨치롬 꼬시방통해 죽겠다. 

경비과장 고 자식도 얼마나 쪽팔릴까? 

이제야 말 할 수 있다는 쥔장과 손배우 덕분에 우울했던 기분이 날아갈 듯이 방방 뜬다.  

아무튼 지금은 공사가 끝났고, 경찰들도 경비인력만 남겨두고 철수를 한 상태다 보니 밉새이 경비과장은 볼 일이 없어서 마음은 편하다. 앞으로 본다고 해도 내 마음이 괴롭지는 않을 거 같다. 이 새끼 쪽팔리게 주민에게 맞고 타박상가지고 병원진단서 2주짜리 끊어서 고소고발이나 남발하는 놈이 무슨 경찰이라고 실컷 비웃어주고 말자. 

오늘 이 이야기를 다 쓰고나니까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가 생각난다. 어릴적에 아이들에게 무진장 읽어줬던 동화책인데, 내가 오늘 그 짝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를 주눅들게 했다. 괜히 설치다가 우세만 당한다는 생각이 머리에거 떠나가질 않았다.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현장에서 벌어진 일에는 정답이 없는 법인데, 다시 경찰들에게 둘러싸여서 당하고 싶지 않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12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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