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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Dec 28. 2018

이야기의 시작은 단톡방의 사진 한 장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 날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항아리 속은 무가 그득하고 그 위로 소금이 뿌려진 사진이었다. 김감독님이 무짠지를 담는다고 올린 사진이었다. 직접 농사지은 무도 있고, 정수님이 보내온 무도 있고, 무가 천지삐까리라며 내게도 무를 다섯 개 주셨다. 

나더러 동지날에 팥죽을 끓이라는 감독님, 진심은 아니었을거다. 무짠지가 동지 쯤에는 선보일 수 있을거란 계산인 듯 하다. 사람 잘못 보았다. 내가 팥죽 끓일 줄 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할매들께 무짠지를 만드냐고 물었다. 

백광순할매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땅속에 장독을 깊이 묻어두고 김장김치를 독 속에 담아두었는데, 독이 워낙 깊으니까 가장 밑바닥에는 무를 통째로 가지런히 놓고 그 위로 김치를 얹었다는거다. 김치를 다 먹는 동안 붉은 국물이 무에 적셔져서 간도 베이고 물도 베이는데 맨 마지막에 무를 꺼내면 무가 붉은 빛깔을 띈다고 한다. 그걸 한 여름내내 무짠지처럼 반찬 삼아 먹었다고 한다. 

재래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무가 간장의 검은 빛깔이 아닌 붉은 빛을 띄는 무짠지를 발견하는데  그게 바로 김칫독 깊숙한 곳에서 김치국물에 절인 무였구나. 

이젠 세월이 변해서 땅속에 묻은 장독에는 김치를 담아두지 않는다. 김치냉장고가 좋으니까.  붉은 빛깔나는 무짠지를 만들 수도 없다. 김치에 큼직큼직하게 썰어둔 무를 박어서 잘 익었을 때 꺼내 먹는다. 

땅 속 깊이 묻어두었던 장독도 사용하지 않고 오래 놔두었더니 쩍쩍 금이 가서는 물이 샌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앞으로 김치국물에 절인 무짠지는 더 먹을 수가 없겠구나. 

동지날 팥죽에는 동치미국물이 제격이다. 

팥죽은 누가 끓일지 모를 일이다. 

마침 광순할매가 김장하고 남은 무가 다섯 개 있다며 동치미를 만든다고 한다. 동치미 만드는 법을 어깨머너로 배우고 싶어서 광순할매네 일거들러 갔다. 

적당한 크기의 빨간 들통 속에 무는 소금간을 쳐놓았다. 보리쌀로 풀을 쑤어두었다. 옛날에는 커다란 가마솥에 보리쌀밥을 해 먹을 때 팔팔 끓는 보리쌀물을 바가지로 퍼내서 동치미육수 만드는데 썼다고 한다. 지금은 가마솥에 밥을 하지 않는데다가 보리밥을 해먹지는 않으니까 보리쌀 끓는 물을 펴낼 수가 없다. 

광순할매는 홀로 사는 넓은 집에 안방만 기름보일러를 틀어놓았다. 김장 하는 날은 아들네와 딸네가 내려와서 온 집안을 후끈하게 기름을 썼다. 자식들이 다 떠난 후에는 다시 안방 벨브만 남겨두고 모두 닫았다. 나더러 춥다면서 안방에 있으라고 한다. 안방에서 몸을 좀 녹이고 있으란다. 그러고는 할매 혼자서 자꾸 일을 한다. 나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할매 꽁무니를 졸졸졸 따라다녔다. 

배추는 김장 할 때 간쳐 놓은 것 중에 기죽지 않는 파릇파릇 한 놈을 두 포기 정도 빼내 놓았다. 소금간 쳐놓은 무 위에 배추를 얹었다. 보리쌀 풀물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냉장고에서 배를 꺼내놓았다. 지난 추석명절에 차례상에 올렸던 배가 냉장고에 그대로 있어 꺼냈다.  밑동이 골골하긴 하지만, 곯은 부위는 잘라내고 나서 껍질 채로 씻어서 삭둑삭둑 네모난 크기로 잘라두었다. 

고추 수확할 때 쓸 만큼만 고추에 소금을 뿌려서 삭혀두었다. 삭힌 고추위에 짚을 얹고 둥둥 떠다니지 못하도록 돌을 얹어두었다. 날이 많이 추웠는지 꽝꽝 얼어 있는 것을 물을 붓고 따뜻한 햇살을 받게 두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얼음이 녹은 자리에 누렇게 익은 고추의 자태가 드러났다. 누렇다기 보다 올리브 그린 빛깔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거 같다. 초록은 벗어났고, 그렇다고 노랗지는 않은 오묘한 빛깔이었다. 

어느 마을의 사람은 자기 농사짓는 고추 말고도 남의 집 고추까지 받아서 겨울 내내 고추를 삭혀서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돈 백 만원도 더 벌었다고 한다. 광순할매는 그만큼 많이 할 필요가 없으니까 고춧대에 주렁주렁 열린 고추로 고춧가루 만들고 남들과 나눠먹고 딱 쓸만큼만 삭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차” 싶었다. 지난 날 아랫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에 상돌할매가 나더러 고추를 한 자루 준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걸 다 받아서 어쩌냐면서 한사코 거절했었다. 여기저기서 주는 고추가 많았지만 처치 곤란해 손사레를 치면서 거절했었다. 그 고추 다 받아서 삭혀놓을 걸 때늦은 후회를 했다. 돈 백 만원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런데 누가 살까? 내가 삭힌 고추를 살 사람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보다 내가 고추를 제대로 삭힐 수 있을지도 의문이긴 하다. 광순할매께 내년에는 고추 삭혀서 팔자고 하니까 할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보리쌀풀물이 다 식었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무와 배추가 켜켜이 담겨진 통에 부었다. 풀물이 부족하다싶어서 맹물을 적당량 퍼부었다. 그 위에 썰어놓은 배를 얹어두었다. 

대파를 깊숙이 눌러서 넣어두고, 생강도 썰어서 넣어둔다. 마늘은 빻고, 청강은 깨끗이 씻어서 썰지 않고 그대로 보자기에 싸서 담아둔다. 그리고 삭힌 고추를 넣어서 시원한 동치미국물맛의 절정을 이룬다. 

말로만 듣던 동치미,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다. 김치 중에 가장 쉬운 게 동치미라며 배울 것도 없는데 찾아온 나 때문에 광순할매는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나보다. 

때마침 김장하면서 아들이 사둔 가라비가 많다며 쪄주신다. 과메기도 남았다면서 한 상을 차려주신다. 가까이 사는 이웃인 규란엄니를 불렀다. 앞집에 사는 동서네도 불렀다. 

가라비와 과메기를 실컷 배부르게 먹고 있는데 내놓은 건 다 먹어야 한다는 광순할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상위에 몇 개 남지 않은 과메기는 의무방어전이 되어 억지로 먹었다. 과식한 덕택에 하루종일 배가 꺼지지 않았다. 광순엄니는 밥을 안 먹은 게 맘에 걸리는지 된장찌개 밥한 술 먹으라고 성화다. 먹는 걸 마다하는 내 심정도 편치는 않다. 

종갓집 맏며느리 광순할매도 할배가 살아계셨을 적만 해도 해마다 동치미를 담아서 먹었다는데, 할배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멀리 떠나있으니 동치미를 담아도 빨리 먹고 헤치울 사람이 없다. 몇 년 동안 담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는 아마도 내게 가르쳐 줄려고 담을 생각을 했나보다.

내년에는 꼭 고추를 삭혀야겠다. 그렇다고 고추 삭혀서 팔겠다는 뜻은 아니고, 동치미를 담을 때 삭힌 고추가 필수라는 게 요점정리다. 

깻잎 삭히는 방법도 꼭 알아두었야겠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12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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