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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Dec 28. 2018

한장의 사진

한 장의 사진, 

사진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2년 전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사진이다. 

할매들이 도로가로 나와 앉았다. 할매들이 앉은 의자는 바뀌었다. 무슨 상황인지 감은 잡히지만 소성리로 당장 뛰쳐가지 않고 형선굠님께 전화를 걸었다. 계산기를 먼저 두드렸다. 상황이 어떠냐고 여쭸더니 “올라와” 한마디 날라왔다. 바로 “네”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부릉부릉 달려갔다. 

실컷 갔더니 끝나버리면 어떻게 하지? 오늘 밤 소성리에서 모임이 하나 있다. 소성리 앞을 지나가는 장비를 오랫동안 막지 않으면, 금방 해제해 버리면, 시간이 어중간하다. 집을 다녀오기도 애매하다. 길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 될까봐 망설여진다. 

계산기를 두드려보지만 답이 없다. . 

내가 변했구나. 예전같지 않구나. 소성리로 올라가는 데 엉덩이가 무겁구나. 

소성리에 도착한 후에 의자에 앉자마자 상황은 해제되었고, 의자는 정리되었다. 

나는 소야의 하얀방에 기름을 넣기로 작정했다.     

밥 먹으러 오라는 규란엄니의 전화, 

마을회관 부엌은 지글지글 굴비 굽는 소리가 요란하다. 소리보다 냄새가 더 요란스럽다. 굴비의 비릿한 향이 얄밉지 않다. 굴비 두 꾸러미는 지난 번 영광탈핵순례에서 만난 광주평통사 정동석님이 소성리 식구들 먹으라고 사 준 굴비다. 보리굴비가 유명하다면서 사 줄려는 것을 말리고 말려서 값싸고 양 많은 놈으로 골랐다. 마을회관에서 소성리 식구들 한번 먹고 남은 것이 있어서 오늘 구웠다. 

오늘 사태에 대비해서 밥을 한 솥 가득했다는 규란엄니와 광순엄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니들의 손이 분주하다. 광순엄니가 김장김치 한조각 들고 와서는 썰이고, 된장국을 끓이기 위해서 멸치 몇 마리 넣어 다시국을 끓인다. 무와 파 그리고 청양고추 몇 개를 스삭스삭 썰어서 된장국에 풍덩 빠뜨려 넣어서 된장국을 완성했다. 볼품없는 된장국이 천하의 일품요리 뺨칠 정도로 맛있다. 

밥상은 차려졌지만 와야 할 사람이 안 온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먼저 수저를 들었지만, 규란엄니는 현관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몸을 기우뚱 젖히면서 현관문 열리기만 목이 빠져라 쳐다본다. 접시에 놓인 굴비는 손을 대지 않는다. 올 사람이 와야지 먹을 요량인가보다. 

형선굠님이 

“이정이라서 그렇게 기다리는거요?” 하고 우스개 농담을 하자 

“온다고 하디 안오니까 ” 하지만 “이정이라서 기다리는 거 맞아” 하면서 부정하지 않는다. 

밥상 앞에서 까르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조금 있으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드뎌 규란엄니가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이정 영재씨가 등장한다. 영재씨 앞으로 굴비가 가득 담긴 접시가 놓이고, 엄니들은 영재씨가 젓가락으로 굴비를 뜯자 마음 편히 굴비를 뜯어서 잡수신다. 

일선에서 가장 고생하는 영재씨 잘 먹이고 싶은 엄니들 마음이 헤아려진다. 나도 챙겨달라고 질투하지 않는다. 우리만 자꾸 먹으라고 쑤셔넣지 말고 엄니도 잡수라고 밥그릇에 굴비 한 마리 올렸더니 광순엄니가 웃는다. 

엄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았다. 참 맛있다. 

내일은 소야의 하얀 방에 기름을 넣어야겠다. 앞으로 계산기 두드리지 마라. 

소성리는 내 집이다. 

내 집앞에 위험하고 더러운 물건은 치워야지. 

내가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치워야지. 

내 집앞에 더럽고 추접은 것들은 못 다니게 막아야지. 

성주사드기지로 가는 모든 것은 소성리 땅을 밟지 못하게 해야지. 

「열매의 글쓰기 2018년12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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