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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Dec 28. 2018

유키의 출산

현관문을 열고 “유키야 밥먹자” 하다가 까무라칠 뻔 했다. 

마당 한가운데 얼룩덜룩한 무늬를 가진 물체는 분명 딱딱한 고체가 아닌 어떤 생명체인 듯이 보였다. 쥐일까? 유키가 홀몸도 아닌데 밤새 쥐를 잡았을까? 쥐보다 좀 더 커보이는데, 고양이새끼일까? 유키가 밤새 고양이를 잡았을까?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물체 아니 생명체는 뭐지? 살짝 뒤집어진 듯 보이지만 다리 네 개가 경직되어 누워있다. 아................. 유키가 새끼를 낳은 거 같아. 

유키 어딨어? 

유키는 멀쩡한 집 놔두고 늘 잠자던 나무뿌리가 다 드러난 흙바닥에서 새끼를 낳았다. 두 마리 강생이가 유키의 품속도 아니고 엉덩이에 치여있고, 한 마리는 다리사이에 낑겨있는데, 한 마리가 마당 한가운데까지 어떻게 나왔는지 차가운 흙위에 드러누워서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몸이 파리하게 떨고 있는 와중에도 살아볼끼라고 “이잉~~~~~” 하면서 우는 소리를 내고 있어서 죽은건 아니었다. 저 강생이를 어떻게 유키옆으로 옮겨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창고로 가서 목장갑을 끼고 작은상자를 하나 들고 나왔다. 두 눈을 찔끔 감고 새끼를 겨우 잡아서 개집으로 옮겨갔는데 나를 본 유키가 지 새끼를 데리러 개집으로 쫓아온다. 나는 개집 속에 새끼를 넣어주었더니 유키는 그 녀석을 입에 물고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축축한 흙바닥에 새끼 세 마리가 눈도 못뜨고 어미곁에서 꼬물꼬물거리면서 바둥거리는데, 버려진 한 녀석은 꾸물거리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유키가 열심히 핥는거 같아보이더니 자기 품속으로 아기를 넣는 게 아니라 혓바닥으로 자꾸만 밖으로 밀쳐낸다. 담요 한 장 있는걸로 유키 앞으로 감싸주었다. 

때마침 지나가는 옆집 할배께 개가 새끼 낳았는데 한 마리가 죽을거 같다고 걱정을 쏟아내니, 할배가 담요는 새끼를 기어다니다가 숨막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논두렁가서 볏짚을 주워서 밑에 깔아주고 덮어주라고 한다. 구라마에 박스하나 얹어서 문을 열고 나갈라니 유키가 지 새끼를 버려두고 일어나서 나온다. 내가 나가니까 불안한지 울고불고 난리다. 

동네 뒤편으로 나가서 논두렁에 가보니 볏짚이 너부러져 있길래 주워서 돌아왔다. 바위돌앞과 바닥에 볏짚을 깔아서 주었다. 유키가 낳은 두 녀석은 어미 젖가까운 곳으로 가려고 꼬물꼬물거리고 있는데 마당에 널브러졌던 한 녀석은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고 입은 벌리고 네 다리는 경직되어있는거다. 죽었나 싶어서 유심히 쳐다보고 있으면 한번씩 “이~~~ 잉” 하면서 우는 소리를 내는 거 보니 죽지는 않았다. 도저히 만질 수 없을 거 같은데도 죽지 않고 우는 소리내는 아기를 유키 품속에 넣어주고 싶어서 살짝 건드릴려고 하면 유키는 나를 경계하는 듯이 주둥이를 아기에게 갖다대고 핥아주지만 품지 않고 바깥으로 내몬다. 이러다 죽겠다 싶긴 한데 나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쳐다만 보고, 자연의 섭리대로 지 새끼니까 지가 거두긴 안 거두겠나 싶어 유키에게 맡겨놓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딸예미가 집으로 돌아왔다. 유키가 새끼를 낳은걸 보고 깜짝 놀란다. 흙바닥에서 새끼를 낳아서 웅크리고 있는걸 보니 한심스럽다. 유키를 개집에 들여보내기 위해서 작전을 개시했다. 

딸예미는 수건을 한 장 가져와서는 갓 태어난 새끼를 집어들었다. 마당에 굴러나와서 움직이지 않는 아기다. 새끼를 개집으로 옮기려고 하니까 유키가 긴장을 하고 따라온다. 새끼를 언능 입에 물어버렸다. 딸예미가 새끼 두 마리를 다 집어 들어서 개집으로 넣었다. 개집의 지붕을 열어서 새끼를 넣고 볏집을 넣어서 보온이 되도록 만들어놓았다. 유키를 억지로 집안으로 들여넣고는 개집 지붕으로 구멍을 막아버렸다. 지붕이 없어서 위는 트였지만 드나드는 구멍을 막아버렸으니 유키는 영락없이 개집에 감금되었다. 개집으로 들어간 유키가 안절부절 하면서 똥싸는 포즈를 취하더니만 또 한 마리를 낳았다. 축축한 녀석의 몸을 혓바닥으로 싹싹 핥아댄다. 눈도 못 뜨는 녀석들이 아우성이다. 유키가 자리 잡고 앉으니까 한 마리가 꿈틀거리면서 악착같이 어미의 젖을 찾아서 품에 파고 드는데, 갓 태어난 녀석과 한 녀석은 둘이 엉겨붙어서 방향을 못 잡고 서로 밀어대면서 울고불고 난리다. 보다 못한 딸예미가 어미품쪽으로 살짝 밀어넣어주니까 그제서야 어미 젖을 향해서 돌진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마당에 버려졌던 녀석이다. 입은 벌리고 네 다리는 경직되어 보이는 녀석은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딸예미가 대담하게 유키의 품속으로 집어넣어주면 유키는 그녀석을 핥는 척 하면서 주둥이로 밀어내 버리고, 딸예미가 야단을 치면서 품속에 넣어줘도 밀어내 버린다. 

유키야 니 새끼자나. 품어줘야지. 생명을 그렇게 다루면 안돼 

유키는 그 녀석을 포기한 듯이 품지 않는다. 녀석은 죽은 듯이 누워있지만 발가락을 꿈지럭 거리면서 나 살아있슈하고 알려주는 듯 했다. 

보다 못한 딸예미가 숨이 꼴딱 넘어가는 아기를 집안으로 데리고 와서는 무릎담요에 싸서 핫팩을 찔러넣어서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발가락을 만져보니 정말 차가웠다. 다른 녀석들은 따끈따끈한데 이 녀석만 차가워서 젖은 나중에 먹이더라도 체온을 올려줘야겠다 싶었던 거다. 

따뜻한 담요속에 들어가니 좀 살만해졌는지 녀석은 눈은 뜨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점점더 커지고 있었다. “이~~~잉” 하고 우는 소리가 여러번, 꿈틀거리는거다.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면 빠는 힘은 없어보였다. 사람손 타서 유키가 새끼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이대로 유키품에 두었다간 밤새 얼어죽을지도 모르니 집안에서 데리고 있는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동물병원 가서 강생이 분유와 젖꼭지를 사왔다. 분유먹이기 전에 억지로라도 유키의 젖을 먹여보자 싶어서 강생이를 데리고 유키의집으로 갔다. 유키의 다리를 벌리고 젖을 찾고 있는 다른 강생이들 틈에 아기를 넣어주었다. 입을 유키의 젖에 붙여주었다. 유키는 핥아줄라고 자꾸 주둥이를 대려는 것을 못하게 말리면서 젖을 물리려고 했다. 다행히 유키가 아기를 내치지는 않는다. 아기도 힘을 내서 젖을 찾아서 꾸물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니까 유키도 더 이상 내치지는 않을 모양이다. 이젠 유키가 아기를 품어주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마침 냉동실에 얼려놓은 곰탕을 꺼내놓았었다. 녹으면 팔팔 끓여서 신김치 넣고 국밥이나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데, 어찌 유키가 새끼 낳을 때를 딱 맞춰 꺼내놓았는지 모르겠다. 갑작스런 유키의 출산에 산바라지를 해야 할 판이었는데 잘 되었다. 새끼들 젖 줄려면 산모가 잘 먹어야 하니 시시때때로 곰탕 한그릇씩 밥그릇에 담아주었다. 유키는 사료만 주면 안 먹고 있다가도 곰탕만 부어주면 싹싹 다 긁어서 깨끗하게 그릇을 비운다. 

내가 잠시 집을 비우면 유키가 새끼를 돌볼 생각도 않고 뛰어나와서 안절부절 울고불고 난리라고 한다. 그러다가 낑낑거리면서 태반을 쏟아내면서 피를 한바가지 쏟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딸예미가 다 지켜보았다.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유키는 지가 쏟아낸 거 다 핥아서 먹더란다. 그리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싹 치우더란다. 아이고 맙소사. 

내일 해가 밝아봐야 알겠지만, 오늘 한 생명을 살린건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나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내 딸은 정말 대단히 용기있게 해내었다. 

아이고 다시는 이런 꼴 안 보게 해줍소서.      

「열매의글쓰기 1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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