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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Dec 28. 2018

유키의 임신소식

유키가 임신했다는 소식은 날벼락이었다. 어느 한가한 날에 유키에게 물 갈아주고, 밥을 주고 있을 때 이웃의 아낙이 우리 집 앞을 지나가면서 알려주었다. 유키 젖꼭지가 탱탱하게 부풀어오르지 않느냐고 묻는다. 얼마 전 다리가 작달막한 누런얼룩 무늬 털을 가진 개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더란다. 우리집 담벼락을 어떻게 뛰어넘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집안에 들어와 있더란다. 또 담벼락은 어떻게 넘어갔을지 아는 이는 없지만, 두 녀석의 수작을 이웃이 목격한거다. 세상에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또 다른 이웃의 아낙이 지나가면서 내게 유키 임신했제? 지난번에 누런 털 개랑 그러고 있더란다. 그게 키는 작아도 이쁘장하게 생겼더란다. 

아니 이쁘장하게 생기면 뭐하나, 남의 담이나 타넘는 개면 볼짱 다 본 놈인 것을, 내가 유키를 어떻게 키웠는데 엄한 놈이 담을 넘나! 담을...

세상에서 제일 멋진 놈을 소개시켜줄려고 했는데, 

딸예미가 당하면 무조건 여자가 손해라면서 신경질을 냈고, 나는 왜그랬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화를 버럭 버럭 냈더니 저 들으라는 줄은 아는지 괜히 귀를 납작하게 내리고는 꼬리를 설레발레 흔들어대면서 최대한 낮은 포복으로 내 주변에서 안절부절한다. 딸예미는 나를 말린다. 애가 눈치본다면서 애 그만 야단치라고 한다. 

천지도 모르고 설쳐대던 철딱서니가 이제 애 엄마가 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성질같아서는 소박데기를 칠까 싶었지만 그래도 키운 정이 있어서 이제부터는 출산 뒷바라지에 산후뒷바라지, 강생이들 낳으면 처분까지, 생각만 해도 뒷골이 땡긴다. 

한 겨울 추위 속에서 출산을 하게 될텐데 새끼 낳을 공간을 빨리 마련해줘야 한다. 

유난히 배고파다고 눈이 빠지도록 현관문을 쳐다본다. 누가 나오기만 하면 밥그릇이 다 닳도록 핥아댄다. 마치 우리가 밥도 안 준 주인이나 되는 양, 새끼 가진 어미가 되었으니 뒤돌아서면 배가 고프겠다. 먹고 싶은 것도 얼마나 많겠나 측은한 마음에 고구마 삶아서 하나씩 간식으로 줬다. 다시국 끓일려고 사둔 명태대가리도 하나씩 간식으로 주니 우적우적 잘도 씹어먹는다. 

임신한 거 같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부터 유키의 행동거지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산책 나갈려고 줄을 들고 나오면 총알같이 튀어나갈 폼이지만, 막상 바깥으로 달려나가 동네 한바뀌 돌라니 헥헥 거리면서 숨넘어갈 듯이 거친 숨소리를 낸다. 혓바닥은 땅바닥에 끌고 다닐 지경이다. 그러다 지가 알아서 집 방향으로 틀어서 온다. 나가기만 하면 집으론 절대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만 보면 돌진하던 유키가 알아서 집방향으로 돌아온 건 처음이다. 그만큼 몸이 무거워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비가 오는 날이면 비를 맞추지 않으려고 현관앞으로 올려둔다. 이제 몸도 무거운데 설마 담을 넘을까? 하는 마음에 비가 멈출 때 풀어두었다. 줄을 풀자마자 튀어나가지는 않더라. 우왕좌왕 내 곁에서 어떻게 할까? 살짝 고민하는 듯 보이더니 유유히 휀스 담벼락으로 나가더니 지난번보다 훨씬 유연하게 한발씩 휀스 구멍에 짚고 올라서더니 풀쩍 뛰어 나가버렸다. 

이런젠장. 몸이 완전 무거운 건 아닌가보다. 아직 정신 못차리고 싸돌아다닐라고 하는 걸 보니 철들라면 한참 멀었다. 

멀리 떠나지 않는 유키는 잡히지 않으려고 거리를 유지하면서 집 앞으로 왔다리 갔다리 돌아다닌다. 명태대가리를 흔들어 보여줘도 처음에는 모른 척 지나쳐간다. 밥통에 밥 퍼담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주었더니 집으로 걸어 들어온다. 명태대가리를 입에 물려주었다.  우적우적 씹는다. 다행히 주인이라고 먹을 때 건드려도 화내는 법이 없는 유키에게 목줄을 걸었다. 아직은 새끼 밴 몸이라 무겁다고 하지만 문만 열리면 콧바람 세러 나가고 싶어서 환장하는 유키를 풀어놓을 수가 없다. 

아우.. 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유키가 새끼 낳는 걸 지켜봐야 하나? 새끼들은 또 어떻게 해야하나? 유키 말고는 키울 수도 없고, 자신도 없는데, 새끼와의 이별은 마음아파서 또 어떻게 하나? 망할뇬이 왜 새끼는 가져서리. 그러면 사람들은 중성화 수술을 안 시켜줬다고 날 비난하겠지. 

인생이 내 뜻대로 안 되는거야 살아보니 그렇더라만은 유키뇬이 이렇게 배신 때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누런 얼룩이 놈, 길거리에서 만나기만 해봐라. 나쁜 놈, 유키인생 망친놈, 이 자슥이 씨만 뿌려놓고 가버리면 그만이다. 

일치면 여자만 손해. 이건 진리일까?

앞으로 얼마 후에 유키는 몸풀라나. 홀몸 아닌 유키 보니 마음이 측은해서 잘 챙겨먹여야겠다 싶은데, 정말 너무 밝힌다. 그래도 영양가 있는 걸로 챙겨먹여야지.     

「열매의 글쓰기 2018년12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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