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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Dec 28. 2018

할매들 김장 준비한다고 얼굴이 핼쑥하다.

할매들 김장 준비한다고 얼굴이 핼쑥하다. 김장 끝나고 앓아누울까 걱정이 된다. 맨날천날 얻어먹는 게 미안시러워서 뭐라도 하나 거들려고 소매를 걷어부치다 말았다. 

경임할매께 김장할 때 불러달라고 했다. 배추 소금간 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소금간 치는 거 도우러 가겠다고 했더니 경임할매가 일찍 올 필요없으니까 천천히 오라고 한다. 

아침부터 바람소리가 쎄엥 거리는데, 뭔가 하나는 뒤집어질 거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찬 날씨다. 경임할매네 배추간 칠 수 있을까? 혹여 안 하면 어짤? 머리로 통밥 굴리다가 느릿느릿 소성리로 향했다. 경임할매네 도착했더니 태환언니랑 상순언니도 왔고, 동네 할매도 와 계신다. 배추 소금간은 다 쳤다. 허걱~ 

장작 떼는 큰 솥에 물 붓고 끓여서 소금간 해서 미지근하게 배추무더기 위로 붓고 있다. 

경임할매가 일찍 올 필요없다는 얘기는 새벽을 의미한 것이렷다. 

동네할매가 도트리묵을 경임할매네서 만들었나보다. 오늘 드뎌 사각틀 속에서 모양을 갖춘 도토리 묵을 네모 반듯하게 잘라낸다. 태환언니가 자를 대고 슥삭슥삭 반드하게 잘도 자른다. 

동네할매가 상돌할매, 경임할매, 태환언니, 장순언니 한~두모씩 도토리묵을 챙겨준다. 엉겁결에 곁에 있던 나까지 맛보라면서 챙겨준다. 안 받겠다고 양손을 휘저어대는데도 끝끝내 내게 도토리묵을 한봉다리 안겨주신다. 결국 잘 먹겠다는 인사를 드렸다. 동네할매가 떠나고 나자 도토리묵을 나한테 몰아주기 한다. 나는 이 많은 걸 어떻게 처치하라고 다 주냐고 급구 사양했지만 소용 없었다. 네모난 도토리묵을 납작납작하게 썰어서 햇볕에 말려놓으면 오래 먹을 수 있단다. 내게 다 안겨준다. 혼자 못 먹겠으면 소성리마을에서 나눠 먹으라고 내게 안겨준다. 주시니 감사히 받았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배추 소금간도 안 치고 엉뚱하게 도토리묵만 바구니 가득 얻었다. 

이름도 모르는 동네할매는 힘들여서 도토리묵 만들어 함께 품을 들였던 이웃에게 나눴는데 내가 다 가져가니 내 양심에서 소리가 난다. 이걸 어찌 하누?     

하우스의 길다란 철봉에 매달린 무청을 솥에 물 끓일 때 삶았다. 아들, 며느리, 딸네와 사위 왔을 때 무씨래기 조금씩이라도 싸줄라고 삶는다. 햇볕에 잘 말린 무청을 팔팔 끓는 물에서 건져내면 서너번은 치대면서 씻어낸다. 옛날에는 소죽 쑬 때 맹물 먹이는 것보다는 씨래기 삶은 물 주는게 좋다고 동네마다 씨래기 삶은 물을 받아와서 커다란 솥에 소죽 쑬 때 썼단다. 옛날 사람들은 물 한바가지도 헛되게 쓰지 않았다. 고생스럽게 꾸중물을 모아서 끓였다니. 분명 맹물보단 비타민이 풍부해도 풍부했겠지. 분명 맹물보단 영양가 있는 물이겠지. 소가 집안의 큰 재산이고, 노동력인데, 당연히 애지중지 잘 먹이고 키워야지.     

상돌할매가 소희 전화번호 폰에다 찍으란다. 옆에 있던 태환언니가 할매가 무말랭이랑 반찬거리 있으면 챙겨주고 싶어서 전화번호 찍으라고 하는갑다. 하지만, 할매들한테 빌붙어서 얻어먹기엔 내가 너무 염치없다. 그래도 주시면 잘 받고, 잘 먹겠다고 인사하고, 태환언니도 할매들한테 이것저것 많이 얻어먹었다고 하지만, 태환언니의 노동력이 상당히 투하되고 있다. 힘쓰는 일은 태환언니가 해내고 있으니 할매들 입장에선 태환언니는 애지중지하는 이웃일 수밖에 없다. 상순언니도 음식을 맛있게 잘 한다.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척척 해내고 있으니 할매들한테 반찬 얻었다고 염치 없을 일이 아니다.     

매일 지나쳐 다녔던 소성리 아랫마을 연봉할매들의 집에서 삼삼오오 일을 해내는 것이 궁금했던 터였는데, 오늘에서야 할매들 일하는 걸 가까이서 겪어본다. 진작에 와서 소금간 좀 쳤어야 면이 서는데, 아쉽다. 다음부터는 부지런히 달려와서 거들어야겠다. 그래야 뭘 하나 얻어먹어도 마음이 뿌듯할 거 아닌가? 

일한 것도 없이 마을할매들과 소성리지킴이들과 점심회식하는 자리에 따라가서 만두전골을 배터지도록 먹었다. 일본으로 출장다녀온 영재씨도 반갑고,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일본의 상황을 설명하니라고 귀를 바짝 기울여가민서 들어야 하는 고충이 있긴 했지만, 일본의 평화활동가들의 배려가 세심하고, 일본의 정세가 예사롭지 않아서 걱정과 의문과 뭔가 알아야겠다는 학습욕구가 마구 쳐오른다.  내가 사드반대 투쟁한 지 벌써 2년을 넘어섰는데, 지금까지 주워듣고 보고 배운게 제대로 있기나 한건지 의심이 되기도 하다. 

며칠 전 군산여행을 한 건 무지 잘한 거 같다. 군산 미공군기지를 둘러본 건 처음은 아니지만, 미군이 한반도에서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나면 마음속에서 의욕이 불끈 솟으면서 마음가짐을 다시 단도리 하게 된다. 무엇보다 성과는 여행에 동행했던 김감독님이 군산미군기지를 촬영해서 소성리와 김천 주민들게 보여드리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여행을 하고나서 자기만족만 누리는데 그치지 않고 뭔가 내용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 매우 의미있게 다가와서 지금 기분이 최고조를 이루고 있다. 

며칠 후 우리는 군산으로 간다. 

그때는 할매들 김장은 얼추 끝나 있겠지. 

군산을 몇 번이고 둘러봐도 상관없다. 미군이 한국을 어떻게 점령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폭로할 수 있어야 할테니까. 

느릿느릿하지만 황소같이 일하고 있는 할매들 보면 걱정되고, 아련하고, 귀엽기도 하다. 개인 개인의 성격이 다 맞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소성리할매들 덕분에 내가 빗나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찾아서 돌아온다. 

내게 소성리는 나를 가장 위로해주는 곳이다. 

평화에게 건빵 한봉지 다 주고 바라본 쌀쌀한 진밭의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정도는 과장스럽지만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수놓은 듯이 선명하고 아름다운 밤하늘인 것만은 사실이다. 

내게 소성리는 별이 쏟아질 거 같이 나를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결론적으로 도토리묵은 소성리부녀회장님께 드렸다. 마을에서 나눠 드시라고 몇 모를 드렸고, 내려가는 길에 이종희위원장님 댁에 두 모를 갖다드렸다. 부인께 아첨을 한거다. 나는 빈손으로 돌아갔다.     

「열매의 글쓰기 2018년12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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