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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Dec 27. 2020

 어째서 '쉬운 폐업'에는 침묵하는가.

<<회사가 사라졌다>>편집자후기

일하는 사람의 목숨 때문에 

기업 문 닫게 할 수 없다는 이들, 

어째서 ‘쉬운 폐업’에는 침묵하는가


 마야 ('회사가 사라졌다' 편집자)


“여성노동자들은 본인을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노동력’으로만 대하려는 사장과 자본에 맞서 ‘일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싸웠다. 아니 지금도 그 싸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긴 싸움을 통해 품게 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결국 미미하게나마, 세상을 바꿀 것이다.”  

_ <회사가 사라졌다> 중에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2020년 겨울,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노동력’이라는 말이 그저 수사인 것만은 아님을 보았다. 일하는 사람의 목숨 하나 때문에(?) 기업 문을 닫게 할 수는 없다는 식의 부들거림을 보며, 이 땅에서 노동을 하는 이로서, 말 그대로 ‘모욕감’을 느꼈다. 기업을 봐주고 또 봐주는 일이 결국 모두가 살기 위한 방편인양 으름장놓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노동자의 권리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던 그 무렵, 이 책 <<회사가 사라졌다>>는 독자들의 손에 가닿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업 문을 닫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깊숙이 박혀 있는 사회에서, ‘기업의 폐업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였다.

문장의 논리로만 본다면, 이 둘은 상충되는 내용이다. ‘(노동권을 주장하여) 기업 문을 닫게 해서는 안 된다’와 ‘(자본가가) 기업 문을 닫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말. 우리는 동시대에 이 두 가지 말이 공존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결국 자본가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여성노동자들, 사회 전반의 ‘무감각’에 맞서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일, 회사가 폐업하는 일, 노동자가 쫓겨나는 일… 이 모든 일들에 어느 순간 무감각해지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일로 들여다보면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러한 일들이 겹겹이 쌓여 사회 현상이 되고 구조가 될 때에는 의구심조차 사라지고 만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기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래, 여자가 더 적은 임금을 받고, 가장 먼저 쫓겨나는 일이 어디 하루이틀 일인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기획, 위장 폐업을 하는 일도 이제 더는 낯설지 않다.

자신들을 쫓아낸 회사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은 이러한 ‘무감각’에 맞서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대로 물러서 다른 일터를 찾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온통 납득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다. 제조업 공장에서 나온 돈으로 세운 골프장은 아직 건재한데 왜 이들만 쫓겨나야 하는지,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넘쳐나던 일감은 왜 하루 아침에 끊기게 되었는지, 우리 노동은 정말 ‘천 원짜리’ 노동인 것인지. 의구심을 놓아 버리고 무감각해질 것을 종용받는 가운데서도, 질문하기를 멈출 수 없던 사람들. 이들은 싸움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동하는 사람이 아닌, 손만 필요로 하는 사회


"여기 사람 쓸 값이면 저기서 사람 몇 명 쓴다."

여성노동자들의 말 곳곳에서 여러 징후들을 느꼈지만, 그 중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손부업’이라는 영역이었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열과 성을 다해 일을 해도, 자본가의 눈에는 더 줄일 수 있는 비용으로만 보이는 건 바로 이 ‘손부업’ 때문이었다. 식대도, 공장도, 전기도 필요없는 일하는 손들이 있었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이쪽도, 그쪽도 모두 여자들이긴 마찬가지였다.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손’인지도 모르겠다. 개당 얼마, 시간당 얼마인 손.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도 않고, 목소리도 내지 않는 손. 각자 떨어져 있어 서로가 서로를 잡을 수도 없는 그런 손.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노동자’가 아닌, 떨어져 존재하는 ‘손’들이 되어 가고 있다.


위기의 목격자들


경영 관리 기법에서 ‘리스크 관리’는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리스크/위기로 지목되고 관리되는 대상은 대부분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이 목격한 위기는 따로 있었다. 세제 지원, 고용 지원, 금융 지원 등 각종 지원을 받고도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폐업하는 사업주, 제조업에서 레저업으로 자본을 이동시켜 폐업하는 사업주들이 결국 위기의 근원이었다. 폐업에 맞선 이들은 차별적 구조의 피해자이자 위기의 목격자였다. 이렇게나 많은 목격자들이 존재하는데도, 폐업은 답이 없는 ‘미제 사건’처럼 계속 치부되어 왔다.

최근 개봉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영화에서, 내부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여성직원들은 위기와 갈등을 촉발한 존재로 내몰리지만, 사실 위기의 주범은 따로 있었다. 이 영화의 설정을 보며, <<회사가 사라졌다>>의 이야기와 겹쳐 읽기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세 명의 여성이 목격하고 마주한 진실(영어로 된 방대한 기밀문서)을 함께 받아안고 해석 가능한 형태로 번역해 낸 동료들이 없었다면, 그건 현실에서 아무 효력 없는 텍스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뭉클한 장면은 <<회사가 사라졌다>> 저자들의 무수한 회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했다.


‘기록’, 진실을 더욱 강력한 것으로 만드는 작업


또록.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또박또박 기록하기 위해 ‘쓰는 여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싸우는 여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붙든 채 몇 시간이고 대화를 이어갔다. 편집자로서 조력 차원에서 몇 차례 회의에 들렀지만, 회의 자리의 끝을 채 보지 못한 채 나온 적도 많았다. 현장에서 들은 단어의 뉘앙스 하나, 말 한마디를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기에 회의는 반나절쯤은 우습게 훌쩍 넘겼다. 밤을 꼴딱 새워 내게 전달된 교정지를 받았을 때에는, 말 그대로 자세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진실이 주는 무게에 더해, 기록이 주는 무게는 실로 무거웠다.

“이 책은 자신의 인생에 들어온 폐업이라는 사건에 온몸으로 맞선 여자들의 싸움을 응원하며, 이들이 사회에 던지는 물음을 보다 선명히 드러내기 위해 쓰였다”는 말이 그저 수사나 거짓이 아님을 곁에서 오래 보았다. 각자 더 덧붙이고 싶은 말들이 있더라도,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더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말을 고르고 절제하는 장면들도 보았다. ‘기록’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도, 지금껏 그 의미를 제대로 몰랐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에겐 인상 깊은 시간들이었다. 

저자들이 이제는 자동차 가죽시트의 재봉선과 문구류의 라벨, 휴대폰의 만듦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고 한 것처럼, 나도 기록물을 보면 누군가의 노동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여기에 담긴 무수한 고민과 노동들을 떠올려 주신다면, 그리고 진실의 무게를 함께 받아안아 주신다면 좋겠다.



"고용노동부는 누구 편이냐고? 편할 편이야. 우리한테는 우리 편인 척 하지만, 지네 편할 편."고용노동부와 같은 행정부서만 ‘편할 편’이면 다행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꽤 많은 돈을 들여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펼친다 ... 정부는 각종 포상제도를 이용해 지원금을 기업에 쏟아붓는다. 그런데 그후 일어나는 일에는 놀랍도록 무심하다.- P33




"내 이야기 들어 주는 게 마음에 약이지." 자신의 ‘고생담’을 말하는 것이 그의 마음에 약이 된 것이다. ‘내가 듣고자 하는 것을 묻고 싶다’는 마음과 ‘그가 하려는 말을 듣고 싶다’는 마음이 뒤섞인 채 인터뷰를 다시 부탁했다."그래 허자. 너 숙제라니까 내가 해줘야지."
- P74




가족은 불평등한 사회다. ‘남성 가부장‘ ‘아내이자 엄마인 여성‘ ‘자녀‘로 이어지는 권력의 위계가 명확하고, 각자에게 부여되는 권한과 역할도명확하다. 친밀한 가족이라는 신화는 위계를 활용해 이윤을 확대하는 기업에게 차용하기 좋은 모델이 된다. 어쩌면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사소한 순간, 편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모든 순간이다.- P135




누군가 노동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에 대해 묻는다면, ‘담대해지는 순간’을 만나는 일이라고 답하고 싶다. 레이테크 사장이 멀쩡한 정규직 일자리를 계약직으로 돌리려고 시도하자, 사장의 나발수 위치에 서야 할 관리자급 팀장 이필자 씨가 팀원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막기 위해 계약서를 거부하고 팀원들과 노조를 만들어 대항한 순간이 그렇다.-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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