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보이는 창 109호 / 차헌호, 초희 공동작업
#4 서울 상경투쟁
거리에서 두 번의 여름을 보내고 또 다시 겨울을 맞이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절에 연연하지 않고 겁 없이 서울 나들이를 결정했다. 지방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문제가 잘 풀리지 않으면 서울로 간다. 남들 다하는 서울 상경투쟁을 우리도 한번 해보기로 했다. 우리를 문자 한 통으로 해고한 아사히글라스 자본과 그들을 대신해 칼잡이 노릇을 했던 노조탄압 앞잡이 김앤장을 만나고 싶었다.
상경투쟁을 결정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김앤장이 우리를 만나줄 리 만무했다. 김앤장 가까이에 있는 정부 서울청사에 천지를 모르고 천막을 치는 것도 기획했다. 김앤장 규탄 문화제도 준비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나선 서울길은 낯설지만 설렜다.
서울은 역시 달랐다 눈알이 빙빙 돌아갈 정도로 정신없이 복잡한 지하철을 갈아타는 것은 고역이었다. 가장 기가 막힌 건 경찰이었다. 서울 정부청사 앞에 천막을 치려고 하자마자 경찰이 우르르 달려들어 천막을 다 부서셔 가져가버렸다.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우리 수에 비해 수백 배나 되는 경찰의 무력진압을 당해내지 못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간판이 없다. 서울의 수많은 건물들은 자신의 사무실을 알리기 위해서 눈에 띄는 자리마다 간판 경쟁으로 도배를 해대는데도 김앤장은 역시 달랐다. 김앤장 사무실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앤장 사무실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덩치 큰 경비들이 대거 나와서 고급 자가용이 들어올 때마다 자가용 문을 열어주며 깍듯이 인사를 하는 모습에서였다. 우리는 상경한 첫날부터 선전전을 하기 위해서 김앤장 사무소로 들어갔다. 경비가 막아섰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경비가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김앤장 대표 면담 신청하러 들어갑니다.” 나는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서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경비도 호락호락 길을 열어주지 않았고 건물 안에서 양복 입은 남자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를 만나러 왔냐고요? 어떤 변호사를 만나려고 하는데요?” 길을 막아선 저들을 보니 갑자기 화가 치솟았다. “김 씨하고 장 씨 만나려고 합니다. 김앤장 대표 변호사요.”
그러자 옆에서 누군가가 “내가 김 씨인데, 여기 김 씨랑 장 씨가 한둘도 아니고 누구요?” 경비는 옆에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사히글라스, 하이디스, 동양시멘트, 유성기업, 갑을오토텍, 현대자동차의 노조 파괴에 법률 자문을 맡아 온 것이 김앤장이다. 김앤장 앞에서 김앤장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는 사업장들이 모여서 김앤장 규탄 문화제를 진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방송 데시벨이 높다며 덤벼들었다. 문화제는 중단되었고 방패를 든 경찰들은 우리를 에워쌌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이 물러나고 다시 문화제를 진행했다. 경찰은 김앤장 사무소 앞에서는 유독 민감하게 행동했다.
자본가를 대신해 노조 파괴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김앤장의 행태를 사회적으로 문제제기 하고 알려내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은 금속노조의 수많은 사업장이 피해를 당했고, 김앤장의 악행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노동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대한민국 로펌 1위인 법률단체가 돈과 권력에 미쳐 불법을 대놓고 저지르고 있어도 오히려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지배계급의 핵심 보좌관인 김앤장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나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자본의 도구이자 수단인 김앤장은 하루빨리 해체시켜야 할 대상임이 분명하다.
상경투쟁의 목적은 김앤장을 타격하고 아사히글라스 투쟁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최순실 파일이 발견되고 정세가 급변했다. 우리의 문제를 넘어 자연스럽게 노동자 전체의 요구를 걸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문제뿐 아니라 그동안 당해왔던 노동자들이 모두 자신감을 갖고 싸워야 할 시기다.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것만 아니라 전경련, 김앤장, 국정원을 해체해야 한다. 노동법을 전면 개정해 노동기본권이 온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이 기회라는 심정으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의 서울 상경투쟁은 전체 민중의 싸움으로 함께 한다.
온힘을 다해서 자본가 정권을 갈아엎자. 함께 싸워서 함께 승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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