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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n 16. 2021

6월15일, 열세번째 침탈당한 날

<소성리를 쓰다>

6월15일은 1000여명 경찰병력을 태운 경찰버스 50여대가 소성리로 13번째 침탈들어온 날이다. 금연할머니한테 물었다. 싸우기도 힘든데 밥까지 다 해먹일라고 하면 할머니가 너무 힘들지 않냐고,  왜 꼭 밥을 해먹일려고 하냐고, 

“우리 동네 일로 그 먼데서 새벽부터 왔는데 밥도 안 해먹이면 되겠나. 이게 다 우리 동네 위한 일 아니가.”     

새벽4시에 눈이 뜨였다. 오늘부터 촬영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일찍 집을 나섰다. 소성리로 가는 길에 경찰버스 한 두대는 만날 법도 한데, 이상하게 버스 한 대 마주치지 않았고, 소성리로 도착하니 평소에 얼굴이 익숙한 정보과 형사들만 여럿 나와 있었다. 마을회관 앞 난로가엔 재영아제가 부지런히 난로불 피우고, 커다란 전기물통에 물을 끓이면서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고 계셨다.      

사람들이 하나 둘 소성리로 모여들기 시작하고, 박규란어머니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걸어오셨다.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근래 마늘 캐고 밭일이 바빠서 일을 많이 했더니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모습이 안 보여서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보았더니, 백광순할머니는 돼지고기를 썰고, 금연할머니는 마늘을 씻어서 빻을려고 준비하고 계신다. 허리를 곧게 펴지 못하는 규란엄니는 김치통을 꺼내들고 도마위에 김치를 올려서 썰 준비를 하신다. 조금 있으니까 소성리부녀회장님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면서 부엌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모두 가슴이 철렁했다. 할머니들이 어쩌다가 다쳤냐고 묻자, 부녀회장님은 마늘 캐고 양파 수확할 철이라, 지난 주말에 양파망을 들어나르다가 허리를 삐긋했다고 한다.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허리통증이 심해서 지팡이까지 짚고 길을 나선 모양이었다.        

오늘은 대학생들이 스무 명 넘게 서울서 버스를 맞춰서 연대를 온다고 했고, 아침부터 싸울 주민들과 연대자들을 위해서 할머니들은 돼지김치찌게를 끓여서 밥을 해먹일 준비를 하느라고 새벽 5시30분의 회관 부엌은 분주했다.      

회관바깥으로 나가보니까 젊고 생기발랄한 대학생들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경쾌하게 들렸다. 대략 5시 4-50분 경에 경찰버스가 하염없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우리도 소성리마을앞 도로에 집회대오를 이루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행히 멀리서 연대 온 분들이 있어서 초라하지 않았다.      

강형구장로님이 아침기도회로 사드기지 건설공사 저지행동을 시작했고, 6시20분이 되자 경찰방송이 시작되었다.  집회대오는 경찰진압에 대응하기 위해서 팔짱을 끼고 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장치를 걸기 시작했다. 원불교 김선명교무님이 법회를 시작하는 6시40분 경부터 경찰진압이 시작되었다. 물론 시간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시간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었지만, 대략적인 시간이 그러했던 거 같다. 그 와중에도 가장 앞자리에 앉은 규란어머니는 부엌에 밥이 잘 되었는지, 국이 쫄지는 않는지 걱정이었고, 가장자리에 앉은 이장님 부인 문여사에게 부엌을 살펴보라고 일렀고, 문여사는 회관부엌을 다녀와서는 밥과 국이 어찌되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원불교 교무님의 법회와 동시 경찰진압이 소란스런 와중에도 할머니들은 아침밥을 걱정하고, 경찰들은 가장자리에 앉은 남자들을 무지막지하게 끌어내었다. 

집회대오가 하나씩 끌려나오기 시작하자, 김선명교무님을 둘러싼 종교안전팀은 성물함을 들고와서 종교행사의 물품을 치우려고 했고, 김선명교무님은 목탁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가장 앞자리에서 교무님을 바라보고 있었고, 또 등 뒤로 들려오는 연대자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불안하게 뒤를 돌아보아야 했다. 혹여나 경찰들이 연대자들을 끌고 나가는 과정에 할머니들의 안전을 위협할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에 교무님은 종교안전팀 경찰들에게 할머니들의 안전을 신신당부하였다. 종교안전팀 경찰들이 교무님을 끌고 나가려고 하자 그 자리에서 교무님은 목탁을 두드리면서 독경을 외기 시작했고, 바로 앞에 할머니들은 두 손을 꼭 모아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목탁소리와 교무님의 독경외는 목소리는 경찰들의 군화발 소리에 뒤덮이기도 하고, 연대자들의 비명소리에 적셔지기도 했지만, 내 카메라의 마이크에는 할머니들의 가냘픈 입술에 새어나올 듯 말 듯한 기도소리와 한숨소리가 들렸다. 두 손을 꼭 모으고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서 끝날 줄 모르는 소성리의 전쟁같은 일상을 어찌 기도가 되돌려 놓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오늘의 투쟁이 경찰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하면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끌려나와야 하는 우리가 기도라도 하지 않으면 또 어떻게 지금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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