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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l 07. 2021

진밭교를 건너지 못한다.

<소성리를 쓰다>

7월6일은 미군수송작전 열아홉번째 군경합동작전이 있는 날이다. 밤새 비가 내려서 촬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결에도 고민했다. 비가 많이 내리면 비닐로 카메라를 덮어써도 장비에 비가 들어가게 되고 고장나게 되면 비용이 들어가게 되고, 내게 가장 비싼 물건인 카메라를 빗물을 맞추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었다. 그렇다고 날 좋을 때만 투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비가 온다고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으면 이것 또한 기록자의 태도가 아니니 대략난감이다.

다행히 새벽에 비가 그쳤고, 소성리의 자연은 땟물을 다 벗긴 듯이 깨끗하고 말갛다. 아... 연두연두하구나. 

앞으로 폭우가 쏟아지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아침에 눈뜨고 창밖에 비가 내리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또 고민했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의 작업동료인 희정이 소성리로 내려왔다. 하은과 혜미 그리고 희정, 노동기록작업을 함께 하는 팀원들이 소성리의 소식을 듣고 마음을 써줘서 고맙고 위안이 되었다. 무엇보다 소성리에서 고립감을 느끼는 나는, 그들이 오는 날이 설렌다. 하룻밤을 묵으면서 밤새 말동무가 되어주고 교감을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새벽6시가 되기 전에 사람들은 소성리마을회관으로 모였고, 6시도 되기 전에 규란어머니는 주섬 주섬 의자를 챙겨들고 준비하자면서 도로로 나섰다. 나는 카메라에 비닐을 덮어서 부직포로 감쌌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는데 조은샘이 나에게 비옷을 입으라고 권해주셨다. 품이 아주 넓어서 풍덩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비옷이라 마음에 들었다. 원래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 편인데 마음에 쏙 드는 걸 만나면 탐을 내고 꼭 내 손안에 넣고야 마는 성미이다. 그렇다고 아무 사람 물건을 다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조은샘 정도는 내가 가지고 싶다고 하면 줄 사람이니까. 안 돌려주고 있다.      

저 멀리서 연두색 형광비옷을 입은 경찰들이 줄줄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집회대오를 둘러싸고 시간이 되면 안으로 들어와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어낸다. 여자경찰들이 누군가를 옮겨가면서 내 카메라에 부딪혔는데 갑자기 허리통증이 밀려와서 나는 한 여자경찰의 비옷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한 손에는 여자경찰의 비옷을 움켜잡고, 순간 골반위 허리가 찌릿하게 아팠다. 일어날 수 있을까. 못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119를 불러야 하나, 생각이 스쳐가고 나자 통증이 가셨고 괜찮아졌다. 이거모지? 허리가 불편하지만 걷고 움직이고 있는데 조금 충격이 가해져도 통증을 느끼니까 굉장히 조심스러워진다. 불에 댄 것처럼 화들짝 놀랄 일이 생길까봐 조심스럽다. 내 주변에 뭔가 물체가 있을 때 괜히 긴장된다.      

경찰에 의해서 집회는 해산당했고, 사람들은 모두 마을회관으로 끌려 나갔다. 나는 도로 위에 있었다. 기름을 실고 있는 걸로 의심되는 ‘음용수’ 차량 또는 ‘음료수’ 차량이 몇 대 들어가고 공사인부를 태운 승합차들이 들어가고, 작은굴삭기를 실은 트럭과 속을 알 수 없는 탑차 등이 들어가고 나서 나도 차량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서 올라갔다. 국방부 숙소로 다가가니까 형광비옷을 벗은 경찰들이 쏟아져나왔고, 진밭을 향해 걸어갔다. 나도 경찰들 뒤를 따라서 걸었다. 아니 카메라로 찍고나서 따라 걸으니까 경찰무리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경찰버스가 양쪽으로 시동을 켜놓고 매연을 뿜으면서 줄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경찰버스 사이로 계속 계속 걸었다. 화장실버스가 있었고, 들락날락 거리는 경찰의 모습이 보였다. 삼삼오오 핸드폰을 쥐고 담배를 피고 있는 경찰들, 양치를 하고 있는 경찰들, 그 많은 경찰들은 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버렸나보다. 천여명의 경찰들이 진밭으로 가는 이 좁은 도로에서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입을 헹군 물을 길가의 풀숲이나 개울에 뱉어낸다고 상상하니까 소성리가 얼마나 오염되고 있을지.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평화계곡으로 넘어가는 길과 진밭교를 건너 사드기지로 올라가는 삼거리에 진밭평화교당 몽골천막이 보인다. 교당옆에 사무여한단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그 옆에 원평화깃발이 함께 날리고 있다. 진밭교를 넘지 못하게 경찰들이 나란히 서서 길을 막고 있다. 진밭교를 넘어가면 부녀회장님네 감나무 밭이 있고, 소야훈의 어머니 묘가 있는데, 소성리 주민들의 조상을 모신 묘지가 있는 달마산자락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고 서있었다. 진밭의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른데, 땅은 눈물에 젖어 축축하기만 하다. 진밭평화교당에서 철야기도를 한지 1579일이 되는 날도 정산종사가 진리를 깨치러 걸었던 구도길을 여전히 걷지 못한다.      

마을회관으로 내려왔을 때, 우리 사람들은 십시일반밥묵차가 준비해놓은 묵밥을 한 그릇씩 먹고 있었다. 밥묵차에 현대기아차본사에서 꽤 오랫동안 농성을 하고 있는 박미희님이 와계셨다. 오래전부터 투쟁하고 있는걸 알지만 제대로 한번 찾아가본 적 없어서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서먹했다. 집으로 내려가려고 차문을 열었다가 갑자기 내 차안에 있는 <<회사가 사라졌다>> 책 두권을 꺼내서 박미희님을 찾아갔다. 찾아가 보지 못한 미안함과 갑자기 책을 드리는 게 어색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우리가 만든 책이라도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말을 두서없이 전하고 돈봉투도 아닌 책을 손에 꼭 쥐어주고 도망치듯이 내려왔다. 그이 옆에 평학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조이희님께도 한권 선물했다. 다음엔 만나면 조금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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