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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l 09. 2021

왜 내 눈앞에 서있나?

<소성리를 쓰다>

지난 월요일(5일)날 구미에서 뉴스풀글쓰기 강좌에서 기록노동자 희정이 밀양할머니들의 구술생애사 작업을 했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어린나이에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삶을 꾸려나간다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싶은데 그곳에서 짧게는 40년에서 길게는 60년을 살았다고 생각하니, 사실은 살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손톱이 닳도록 호미질을 했던 땅을 지키기 위해서 그 험한 산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서 새벽마다 올랐을 밀양의 할머니들, 송전탑공사를 막기 위해서 한전 깡패새끼들한테 온갖 험한 일을 당했던 분들을 나는 삼평리에서 만났고, 싸웠고, 눈물과 한숨으로 보냈으니까, 밀양할머니들의 이야기만 들으면 삼평리할머니들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일주일에 두 번 미군의 통행로를 확보하기 위해서 군경합동작전을 펼칠 때 소성리할머니들은 제일 앞자리에 앉아계셨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들을 도로 한가운데 앉게 해야 할까 싶지만, 할머니들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신다. 할머니들에게 사드는 한반도의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마을의 일이다. 그러니 남들을 앞장세울 수가 없다. 그래도 혹시나 경찰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었는데, 다행히 정보관들은 한다리 건너면 지천에 아는 사람이고, 뉘집 아들이고, 뉘집 사촌이라서 할머니들에게 함부러 하지 않을 거 같았다. 할머니들을 들어내기 보단 설득해서 스스로 걸어나가게 모시는 거처럼 보였다. 부녀회장님도 들려나가다가 할머니들에게 탈이 생기면 안된다고 누누이 강조하시고, 할머니들을 최대한 설득해서 꼭 걸어나가시게 했다. 연로한 할머니들을 경찰들에게 들려나가게 할 수는 없다. 사실 나는 할머니들이 가장 늦게 나오시지만 경찰이 안전을 보장해줄거란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나보다.      

그전에 나도 들려나와버리면 마을에 갇혀서 현장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헛된 기대를 하고 있었나보다. 촬영을 하기 시작하면서 할머니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현장에 남아있었다. 여자경찰들이 할머니들 주위로 몰려들면 할머니들은 “내 몸에 손대지 마. 나는 내가 알아서 나갈거야”를 외친다. 여자경찰도 할머니가 스스로 나가시라고 회유하지만, 좀처럼 할머니가 금방 일어날 거 같지 않으면 다시 손으로 할머니 팔을 잡고 끌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러다가 코맹맹이 애교섞인 목소리로 여자경찰이 “저희는 할머니 몸에 손댈 수가 없잖아요.”라고 말하면서 할머니들 스스로 일어나셔서 나가시라고 재촉한다.      

할머니들은 나가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사드기지를 건설하러 올라가는 공사인부들의 차와 기름을 실고 다니는지 알 수 없는 탱크트럭 그리고 거대한 탑차가 들어가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 금방 일어설 수가 없다. 결국 할머니들 몸에 손댈 수 없다는 여자경찰들은 금연할머니의 팔을 잡아당겼다. 할머니는 “내 몸에 손대지 마라. 내가 알아서 나간다”고 역정을 내지만, 여자경찰은 시간에 쫓기듯이 팔을 잡아당기려고 하다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가 다시 팔을 잡아당기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역정을 내고, 급기야 여자경찰의 모자를 잡아당겼다. 화가 단단히 나신거다. 그럴 때 대화경찰은 입으로는 여자경찰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하지만 적극적인 제지를 하지 않았다. 적극적인 제지를 하지 않으니까 여자경찰도 행동을 멈추지 않고 할머니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들려고 했다. 할머니는 대노하셔서 여자경찰의 모자에 붙은 아크릴 마스크를 붙잡고 놓지 않으셨다. 결국 대화경찰이 중간에서 말려서 할머니의 분노를 달랬고, 이번에 대화경찰이 할머니의 팔을 잡아끌어서 일으켜세운다. 마치 할머니를 부축하는 거처럼 보이겠지만, 조그만 할머니는 커다란 여자경찰들과 남자경찰들을 상대하느라고 기운을 다 빼는 일이다. 남자경찰들이 할머니의 팔을 잡아끄는 것도 엄청 힘이 들어갈 수 밖에 없을거다.           

어제는 비가 왔고, 형광비옷을 입은 경찰들이 수없이 내려왔다. 도로에 나와 앉은 우리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할머니들만 남겨두고 뒤에 앉았던 집회참가자들이 다 경찰들에게 끌려나가서 마을회관에 갇히자, 경찰들은 거의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앞을 가로막았던 경찰병력은 어디로 다 들어가버리고, 트럭들이 사드기지로 향하면서 도로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할머니들 한분 한분 마을회관으로 나가고 있을 때, 광순할머니가 줄 서 있는 차량들을 봐버렸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겠다고 버티셨다. 왜 하필 ‘저것들이 내 눈앞에서 줄을 서 있느냐’면서 호통을 치셨다. ‘저게 안 보이면 나도 모른척 들어가지만, 저게 내 눈앞에 떡하니 서 있는데 내가 저걸 어떻게 들여보내느냐’고 언성을 높이셨다. 대화경찰은 잘못했다고 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여기서 경찰에게 정해진 작전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할머니라도 어떤 험한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집회대오는 해산을 당한 상태에서 할머니 몇몇 분만 분통터지는 현장에서 주저앉아서, 사드기지로 들어가겠다고 트럭과 승합차들이 줄서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건 또 얼마나 험한 꼴인가. 그걸 막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속상하고 원통한 일인가.      

남자 하나 좋다는 것만 바라보고 소성리로 시집와서 60여년 땅을 일궈서 자식낳고 키우면서 터전을 닦아온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야 속이 시원하겠냐고 소리치고 싶다. 그냥 안 보이게 해줬으면 좋겠다. 사드를 뽑았으면 좋겠고, 사드기지를 만들지 않기를 바라지만, 당장은 눈앞에 안 보였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을 무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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