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를 쓰다>
상돌할머니에게 금요일날 아침에 진밭에 보초설 때는 꼭 꾸꿍옷 입고 오시라고 했다. 이제 할머니들에게 진밭을 지키는 프로그램 중에 하나가 꾸꿍가 노래 연습하는 것이고, 나는 할머니들의 노래연습 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변변찮은 실력이지만 할머니의 공연하는 모습을 꼭 영상으로 만들어서 보여드리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다.
소성리마을구판장 이옥남사장님은 공공근로노인일자리신청을 하셔서 맑은 날은 출근을 해야 하고, 비오거나 일없는 날은 진밭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보초를 서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금요일날은 이옥남사장님이 출근을 하셨다고 한다. 부녀회장님과 꾸꿍 트리오 할머니들과 진밭초소로 올랐다.
꾸꿍가는 구전으로 불려오던 구슬픈 노래인데, 아사히연대가로 개사해서 부르니까 부르다보면 고쳐야 할 곳이 생기고, 부르다 보면 고칠 곳이 생겨서 할머니들이 몇 번의 연습 끝에 가사를 여러번 바꾸고 고쳤다. 커다란 우드락에 큼직한 글씨를 써놓고 앞에서 놓고 보았는데, 개사내용이 바뀐 부분을 고치지 않아서 부를 때마다 할머니들은 헷갈려하고, 틀렸다. A4용지에 타자를 쳐서 한 장씩 나눠드렸더니 할머니들은 종이를 붙들고 쳐다보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 연습은 도경임할머니가 한줄 선창하고 상돌할머니와 금연할머니가 따라부르면서 연습을 했다. 도경임할머니는 노래를 다 익혔지만, 꾸꿍가를 소성리에 내놓은 도금연할머니는 노래가사를 개사하고 나서는 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는 가사를 외우지 못한대다가 따라부를 때도 목소리가 따로 놀아서 계속 엇박자였다. 여러번 연습하다가 지겨워졌는지, 여상돌할머니는 예전에 삼동연수원 교무님이 불렀던 아리랑이 듣고 싶다고 하셨다. “그 교무님 아리랑 정말 잘 불렀는데” 추억하셨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아리랑’을 검색했더니 ‘진도아리랑’을 틀어주었다. 상돌할머니가 한참 귀를 기울이다가 ‘이거 아니다’ 고 하면 다시 ‘정선아리랑’을 틀어주었는데, 그것도 아니라고 해서 혹시나 사람이 다르면 또 달라질까 싶어서 송소희씨가 부른 아리랑을 틀어주었더니 송소희 목소리는 좋다만은 할머니들이 찾는 노래는 아니라고 했다.
아리랑을 검색해서 이것저것 들어보던 중에 ‘홀로아리랑’이 눈에 들어와서 혹시나 이거냐고 틀어드렸더니 할머니들이 맞다고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면서 좋아라 하셨고,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상돌할머니가 내게 ‘홀로아리랑’ 가사를 적어서 프린터 해오라고 명령하셨다.
“이 노래는 우리 할마이 셋이서 부르면 되겠다”면서 꾸꿍트리오가 부를 노래를 선정했다. 때마침 박형선교무님이 오셨고, 할머니들은 민들레합창단의 노래지도를 맡고 있는 박형선교무님께 다시 자문을 구했다. “우리가 이 노래 부르면 어떻겠는교?” 나는 음원도 구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박형선교무님은 이건 음원은 무용지물이고, 할머니들의 음정에 맞춰서 불러야 한다면서 시범을 보였고, 다음부터 보초 설 때는 박형선교무님에게 노래지도를 해달라고 할머니들이 요청했다. 그리고 노래연습할 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그 옆에서 부녀회장님은 꾸꿍가를 아사히연대가로 완성하면 사드투쟁가로 개사해서 다시 불러야겠다면서 또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옆에서 나는 소성리를 써야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앞으로 할머니들의 꾸꿍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