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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l 18. 2021

꾸꿍꾸꿍.. 사드때문에 못 살겠다.

<소성리를 쓰다>

어제(7월15일)는 새벽일찍 아랫마을 할머니들 차를 태워드릴려고 상돌할머니 댁으로 찾아갔다. 전 날 약속이 되어있었던 건데, 상돌할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는 창문을 열어서 몸살이 났는지 오늘은 도저히 못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걱정마시고 푹 쉬라고 말씀 드리고 경임할머니댁에 갔더니, 경임할머니는 벌써 나와서 앉아 계셨다. 너무 일찍이라서 커피 한잔 끓여준다길래 잠시 집안으로 들어가서 커피를 얻어마셨고, 상돌할머니가 편찮셔서 못 나온다고 전했더니, 원래 약골이라서 잘 아프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을 하신다. 아프다고 하면서도 생전 병원 한번 가는 일이 없다면서 걱정 반, 질타 반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러고보니까 2017년 사드가 배치되고, 사드기지건설공사를 한다고 경찰병력이 수시로 들어와서 싸울 때, 몸살이 난 할머니들 모시고 한의원으로 다녔을 때도 상돌할머니는 한의원에 가지 않았다. 괜찮다고만 하셨는데, 몸은 할머니들 중에 제일 약해보였다.      

도경임할머니와 새벽5시20분 넘어서 소성리로 올라갔다. 휑한 마을회관 앞으로 경찰버스가 올라오기 시작해서 차에서 내려서도 길을 건너지 못했다. 경임할머니는 경찰버스가 다 지나가고 길을 건널 생각인지 갓길에 앉았고, 나는 보다 못해서 팔을 뻗어서 경찰버스를 세우려고 하자, 이 망할놈의 버스는 내가 저를 막는 줄 알고는 자꾸 서행하면서 내가 뻗은 팔쪽으로 다가오면서 나를 위협한다. 나는 일단 서라고 팔을 뻗고, 또 그러면 비스듬히 옆으로 돌아서 지나가려고 한다. 아무튼 버스를 세워서 할머니더러 길을 건너시라고 했다. 바로 코앞에 마을회관이 있고, 구판장 이옥남사장님이 서 계신데 말이다.      

경찰버스가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가고, 우리 사드반대하는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로를 바라보면서 회관으로 모여든 할머니들과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국방부숙소쪽에서 경찰 한 무리가 내려오더니, 우리 앞에 주황색 폴리스라인을 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려왔고, 우리는 스프링 튕기듯이 벌떡 일어나서 도로로 나갔는데, 팔순이 넘은 도경임할머니가 의자를 엉덩이에 댄 채로 도로로 나와서 앉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재빠른지, 팔순넘은 할머니의 순발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성주경찰서 경비과장이란 키가 크고 날씬한 외형을 지닌 젊은 남자가 마이크를 쥐고 마을안에서 하는 합법적인 집회는 보장해줄테니까 도로에서 마을회관 쪽으로 이동하라고 떠들어댔고, 도경임할머니는 의자에서 내려와 도로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경비과장이란 젊은경찰이 마을길에 서있는 할머니들에게 불법을 운운하는 게 조금 가소로왔는지, 그가 뭐라고 떠들어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앉을 깔자리를 가지고 나와서 주섬주섬 나눠주더니 도로에 그냥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나서부터 우리는 경찰에게 도로를 불법점거하고 있는 불법사람으로 취급당하면서 체포될 수 있다는 협박을 지속적으로 들어야 했고, 국가폭력을 당해야 했다. 미국의 요구로 사드기지 육상통행로 확보를 위해 동원된 경찰침탈이 22번째 있던 날이다.      

김상패감독이 오랜만에 소성리로 내려왔고, 할머니들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했을 때, 도금연할머니가 잘 잡수시지 못했다고 한다. 몸살이 났는지 온몸이 아프다고 해서, 부녀회장님이 밤에는 난로가로 나오지 말고 무조건 푹 쉬라고 말씀드렸는데, 어지간하면 안 나올 분이 아닌데, 정말로 나오지 않아서 부녀회장님이 덜컥 걱정이 되더란다. 사실 부녀회장님도 며칠전 백신2차 접종을 하고 와서 쉬지도 못하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팔이 아파서 다음날은 쉬어야 할 판인데, 상돌할머니와 금연할머니가 편찮으시니까, 진밭에 보초 서기로 약속한 금요일날 도경임할머니만 혼자서 심심해서 안된다면서 부녀회장님은 쉬는 걸 포기하고 나오시겠다고 하고, 나는 모두 다 집에서 몸조리 하면서 푹 쉬시라고 간곡히 말씀드리고, 내가 진밭을 지키겠다고 해보지만,  부녀회장님 생각은 달랐다. 경임할머니가 못 오시면 그렇게 하겠지만, 경임할머니가 일부러 오셔서 약속한 것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우리가 꺽어선 안된다고 생각하신 듯 하다. 모두가 애쓰고 있지만, 지금 우리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아서 연로한 할머니들이 편찮으실까봐 전전긍긍 애만 태웠던 밤은 걱정만 쌓이면서 지나갔다.      

다음날 금요일 아침일찍 경임할머니 댁으로 갔다. 할머니는 벌써 집을 나설 채비를 마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돌할머니가 어떤가 집으로 찾아가보았더니, 약봉지를 들고 계신다. 금연할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람도 없는데, 가서 자리라도 지켜줘야 한다고 성치 않은 몸으로 집을 나설 채비를 하고 계셨다.  편찮으신데 나가지 말고 더 쉬시라고 만류해보지만, 이미 경임할머니에게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나가야 한다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경임할머니와 상돌할머니를 모시고 마을회관 앞으로 올라갔더니 도로 갓길 턱에 부녀회장님과 도금연할머니 그리고 백광순할머니가 걸터앉아있다. 백광순할머니는 텃밭에 김매다가 나와서 온 얼굴에 땀이 범벅이었고, 부녀회장님과 도금연할머니는 진밭에 보초서러 갈 준비를 하고 계셨다.      

부녀회장님은 금연할머니가 안 나오실거라고 생각하고 왔더니 금연할머니는 하루 푹 쉬고 자고 일어나니까 아픈 데가 멀쩡해서 아침 일찍 마을회관으로 나왔다고 한다. 회관마당에 비질도 했다고. 상돌할머니가 편찮으시다니까, 금연할머니도 진밭 지킬 사람이 몇 되지 않는 게 걱정이었겠지.  부녀회장이 안 나와서 전화할려던 찰나에 만났다고 한다. 

상돌할머니는 아직 몸이 편치 않지만, 한두시간 정도 진밭은 지킨다면서 흔쾌히 같이 올라갔고, 나는 상돌할머니가 지난번 말씀하셨던 <홀로아리랑> 가사를 큼직한 글씨로 프린터해 왔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할머니들에게 <홀로아리랑> 가사를 한 장씩 꺼내드리고 유튜브로 노래를 틀어드렸다. 

꾸꿍트리오는 홀로아리랑 가사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노래소리에 맞춰서 흥얼거리고 있다. 한참을 듣고 또 듣다가 노래도 불러본다. 그러다가 꾸꿍가 연습해야지 하면서 또 꾸깃꾸깃 접은 종이를 한 장 더 펼쳐든다. 도경임할머니는 개사한 가사를 다 외웠고, 도금연할머니는 아직 가사를 헷갈려한다. 원래 부르던 대로 부르지 못하니까 습관처럼 나오는 입말이 곤욕스럽다. 그래서 도금연할머니가 한 줄 부르면 두 분이 따라부르면서 연습을 시켰다. 그래도 처음 꾸꿍 노래를 알려준 사람은 도금연할머니이고, 원곡으로 부르면 구슬픈 가락은 도금연할머니의 목소리가 딱이다. 

“사드 때문에 못 살겠다”는 최대한 뽑아내서 구슬프게 불러야 한다면서 시범을 보이는데, 뽑아내는 게 예술이다. 그건 직접 들어봐야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진밭초소에 올라갔더니, 박석민님이 오셨고, 김상패감독과 단아씨가 올라왔다. 덕분에 영재씨는 내려가서 쉴 수 있게 되었고, 또 조금 있으니 대구에서 손법선님이 하루 진밭을 지켜주러 오셨다. 할머니들과 평화지킴이들이 북적대면서 진밭을 지켰다.     

진밭에 보초서는 건 사드기지로 올라가는 미군통행차량과 군사차량들이 소성리마을길을 함부러 통과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한 활동이다. 확실히 보초를 서고 있으면 미군차량은 함부러 올라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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