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야 Jul 10. 2021

진밭보초

<소성리를 쓰다>


지난 수요일은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오는 날이 아니지만, 할머니들은 진밭에서 보초를 서는 날이어서 나도 아침일찍 집을 나섰다. 전 주에 할머니들은 아사히연대가는 날 부를 ‘꾸꿍꾸꿍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부녀회장님이 ‘꾸꿍꾸꿍가’를 완벽하게 외워서 아사히 투쟁문화제에서 노래 부르면 밥을 쏘겠다고 약속을 했다. 나는 ‘꾸꿍꾸꿍’트리오 도경임, 여상돌, 도금연 할머니들이 입을 무대복을 준비했다. 그리고 할머니들의 노래를 뮤직비디오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집을 나서자 폭우가 쏟아질 조짐이 보여서 부녀회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비가 많이 내리면 내가 진밭보초를 설테니 할머니들과 부녀회장님은 하루 푹 쉬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 전화를 받은 부녀회장님은 내게 진밭을 선뜻 맡기지 않았고, 할머니들과 통화해서 의견을 물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차를 운전해서 소성리로 달려가고 있었다. 잠시후 부녀회장님이 내게 전한 말은 “할머니들이 비온다고 집에서 놀면 뭐하노, 진밭이나 지키고 있지” 라고 하셨다며 아랫마을 상돌할머니와 경임할머니를 모시고 소성리마을회관으로 오라고 했다. 


경임할머니 집앞에 도착하니까, 맞은편에 있는 재영아저씨네 참외작업장에서 경임할머니와 상돌할머니가 나오셨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집에 있는 것보다 진밭에 올라가서 보초서는 게 마음이 편하다면서 내 차에 올라탔다.


마을회관에는 도금연할머니와 구판장 이옥남여사 그리고 부녀회장님이 기다리고 있었고, 모두 함께 진밭초소로 올라갔다. 강형장로님과 조은학선생님이 새벽일찍 사드기지앞에서 아침평화행동을 하고 내려오셨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도 했지만, 물길이 막혔는지, 도랑에는 물이 흐르지 않고 빗물은 죄다 도로위로 흘러내려가는 듯 했다. 강형구장로님은 할머니들께 내려가시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지만 할머니들은 오히려 강장로님께 걱정말고 쉬러 가라고 당부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내가 준비한 꾸꿍무대복, 꽃무늬가 화사한 원피스형 앞치마를 할머니들께 입어보라고 드렸다. 금연할머니와 상돌할머니가 꾸꿍옷을 입자마자 절로 엉덩이를 흔들어대면서 ‘릴리리야, 릴리리야, 얼쑤 좋다’ 흥얼거렸고, 우리는 모두 즐겁게 한바탕 웃음을 쏟아냈다. 


할머니들 세분은 비가 오는 진밭 도로에서 꾸꿍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비소리에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잠기긴 했지만, 장관이었다.  조은학선생님이 영상을 찍게 해서 비오는 진밭을 소성리할머니들이 지키고 있다고 소성리평화마당 사람들에게 알렸다. 


할머니들은 ‘비오는 날이라고 사드가 안 들어오더나’ , 사드가 들어오던 날, 밤새도록 비가 내렸던 기억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찰청인권위가 오는 날에도 우리는 쓰러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