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부름 앞에
15개의 별고을 촛불이야기
이글은 성주의 글쓰기 모임인 ‘다정(多情)’ 회원들이 성주의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소감을 쓴 것입니다. 11월 21일 현재 성주의 촛불은 132일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시작된 촛불의 광장에는 이제 난로가 등장했습니다. 난로 주위에는 할매들의 삼삼오오 모여, 시린 발들을 녹이며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글쓰기 실력은 부족하지만 마음을 담았습니다.
[삶이 보이는 창 109호] 에 실렸습니다....
7월 12일, 2016년
-역사의 부름 앞에
눈을 감는다. ‘사드투쟁’을 생각한다. 굵직한 기억들이 떠오를 줄 알았는데, 정작 잡다한 것들이 정신을 흐린다. 집중하려고 애를 써본다. 겨우 잡힌 기억이 뜻밖이다. 7월 12일, J교회 1층 아동부실. 그리고 모임을 알리던 떨리는 손가락. 그 때를 더 기억하기 위해 SNS를 살핀다. ‘아, 맞다. 삭제했었지.’ 사드투쟁 초기 며칠에 한 번씩 단체 텔레그램 방을 삭제하고 다시 개설하기를 반복했다. 보안 때문이었다. 수첩을 뒤적여본다. 7월 12일, 화요일, 분신 같은 수첩에 그 날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거의 빠짐없이 기록하는 습관이라 분명 뭐라도 적혀 있어야 한다. 이상하다. 왜 일까? 갑작스럽게 잡힌 일정이었나? 기억이 없다.
국방부의 사드배치 최적지 공식 발표가 나던 7월 13일. 하루 전날, 우리(세월호를 기억하는 지역모임, 함께하는 성주 사람들, 함성)는 J교회로 모였다. 모임을 <함성>에서 소집했다. 그 모임에는 J교회 젊은 집사님들과 폐기물매립장 투쟁을 했던 삼산리 주민 등 40여 명이 같이 자리했다. 그 자리에서 김찬수 대표(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강연이 있었다. ‘사드’가 무엇인지 알려준 짧고 축약된 강연이었다. 사람들의 충격은 컸다. 성주 사드배치반대투쟁은 ‘사드 레이더와 전자파, 미국의 MD 체제 완성, 북한·중국·러시아와의 긴장 국면 고조,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긴장 강화와 동북아 평화 위협’ 등 이 정권을 넘어 미국과 심지어 일본과도 싸워야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이 싸움은 나의 능력과 의지 밖의 일임을 확인한 절망적인 자리였다.
나는 겁이 많다. 그래서 늘 최악을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 날도 비슷했다. ‘성주군과 군수가 앞장서서 반대투쟁을 시작할 것이다, 규탄 대회, 삭발, 혈서, 단식, 그리고 몇 번의 집회. 그러다가 이런저런 빌미로 발을 뺄 것이며, 이를 저지하려는 군민들은 성산포대 밑 철조망을 부여잡고 마지막 사투를 벌일 것이다. 용산이 그랬듯이, 강정이 그랬고 밀양과 청도가 그랬듯이, 극악한 정권은 공권력으로 진압할 것이다, 결국 앞장섰던 활동가들은 구속되고, 남겨진 이들 또한 치유하기 힘든 깊은 내상을 입고 이곳 성주를 떠날 것’이라고 나는 예견했다.
하지만 모임 결과는 달랐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당위적 책임감이 공유되었고, 그 제안에 대한 동의가 모아졌다. 서로의 연락처를 돌려 적고 긴급하게 대표자들을 조직했다. 함께한 이들에게 이 날벼락 같은 사건이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가 우리에게 짐을 지워준 것이라 여기고 함께 싸워나갈 것을 결의했다. 구체적 역할이 주어지면서 개별적 두려움과 공포가 집단적 결의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두운 길’ 한가운데 서 있는 것만 같은 기억이 난다.
다들 돌아간 자리를 정리했다. 회의 내내 형들이랑 잡기 놀이를 하던 김 목사님 셋째 민이 자리가 과자 봉지로 어지러웠다. 하얀 얼굴에 눈웃음이 예뻐 한번 안아보려면 늘 퇴짜를 놓던 민이, 이 녀석이 버리고 간 봉지를 치우며 눈물이 솟구쳤던 기억, 절로 터져 나온 기도가 떠오른다. “이 아이들을 지켜주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싸움은 이미 이 날, 7월 12일 시작되었던 것이다.
다정회원 조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