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호프와 두 번의 김 판매,, 그리고 cms생계비 마련을 위하
그때 한참 옥수수를 수확한다고 낫을 들고 옥수수밭에서 작업할 때 하늘만 보고 하는 편한 농사라고 했는데 수확하는 일은 정말 장난 아니게 막일였다. 그래도 별로 손댄 거 없이 알은 작지만 옥수수가 쑥쑥 자라 장대같이 키가 큰 걸 보니 뿌듯했다. 실하게 잘 익었다 싶은 것을 잘라보면 새 노무 새끼들이 갉아먹어서 형편없다. 이런 것들은 상품가치가 없으니 천상 우리 먹을거리가 되겠지, 원료비를 뽑기 위해서 팔기도 해야 했지만 옥수수 팔아서 큰돈 마련할 것이 아니라서 이웃과 나눔을 하기로 했다. 옥수수 수확에 희년 공동체 식구들이 하루 품앗이한 것이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되었기에 나눔은 마땅한 것이었다.
그리고 투쟁하는 사업장에도 나눔을 하고 싶었다. 그 당시는 가까운 곳이 어디가 있을까? 척박한 구미 땅에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무척 관심이 갔지만 한 번도 찾지 못했던 곳이 하나 있었는데 아사히글라스라는 공장의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소식이었다. 금속노조가 가입을 받아주지 않고 논란이 많다는 소식에 더 마음이 쓰였지만 낯선 구미 땅에 선뜻 찾아가기엔 나도 소심한 A형이다.
때마침 옥수수도 수확했겠다 나눔 하기 위해 한번 용기 내서 찾아 나서야겠다고 맘을 먹고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주소를 확인해서 찾아갔다.
공장 앞에 넓은 팔 차선 도로는 엄청 넓고 커 보였는데 그곳에 양쪽으로 천막농성장이 쳐진 모습은 과히 장관이었다. 음.. 엄청난 대기업 노조 같은 느낌? 도로 양쪽으로 쳐진 천막농성장은 어디에 가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어준다. 너무 수줍게 옥수수 전해드리러 왔다고 하고는 차 한잔 마시라는 것을 거절하고는 자루에 든 옥수수만 내려놓고 되돌아갔다.
되돌아 운전하러 가는 길에 괜히 나한테 화가 났다. "너 뭐니? 한 시간을 운전해왔는데 꼴랑 5분 만에 집에가고싶어하다니,, 너 그래서 뭘 어떻게 할래?"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내성 정에 화가 났다. 다시 운전대를 돌렸다. 천막농성장에 몇몇 남자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고 나는 아까 나를 맞아준 그 남자, 싹싹하니 스스럼없이 나를 대해준 그 사람에게 다가가 커피 한잔 마시고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좀 어리숙하고 어눌하게 말했다. 그는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친절을 베풀어주었고, 차를 대접해주었다. 그리고 오늘의 일정을 알려주었다. 선전전 일정이 있다고 하며 나를 안내해주었다. 그때 처음 만났던 싹싹하고 친절한 사람. 이명재 동지였다.
그때 참 많은 사람들이 대형마트 앞 도로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공장에서 쫓겨나 매일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그들에게 다가갈 방법이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요리저리 관찰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뭐 그리 대단히 깊은 인연을 맺은 건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맺었던 인연으로 일 년 오 개월 동안 아사히 비정규지회 투쟁의 언저리에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 있다. 금속노조 가입 논란은 구미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와 아주 절친 동지마저도 온갖 오해와 구설수에 그들을 오해했었고, 나는 내가 아는 수준에서 논쟁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만큼 눈에 보이게 안 보이게 수많은 진실을 왜곡하거나 논란을 만들만한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에 떠돌아다닌 것도 사실이다.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을 위해서 수련회에 참석하고 그 동지들과 버스를 타고 삼 박 사 일 동안의 순회를 하고, 그때 그건 나에게도 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때 많이 안타까웠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버스를 맞춰 투쟁사업장을 찾는 긴 여정의 시간을 달렸는데 어디서도 조명받지 못했던 것들이 말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삼일 밤낮을 나가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내 가슴에 새겨두었던 그 모든 것들을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써대기 시작했다.
네 번에 걸쳐 뉴스민에 연재했었다. 천기자가 내게 글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해줘서 고마웠다. 내 글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투쟁을 의미 있게 살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들의 공동투쟁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고 사회적으로 알려져야 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로 확대되길 바랬던 내 마음이 컸다.
그리고 두 번의 호프와 CMS, 두 번째 이어지는 김 판매,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지 않는 투쟁사업장이 없듯이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철철이 따라다니는 재정사업 "김앤장을 팝니다."
김앤장을 팔자고 이야기된 건, 그들이 서울로 상경투쟁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끼리 모여서 김앤장 타격투쟁을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하다가 우스갯소리로 "김앤장을 재정사업으로 하면 좋겠네요" 했던 농담이었다. 그걸 촛불 소식지 편집팀에" 김앤장 팔면 광고하나 실어주면 안 돼? " 하고 물었던 것을 "김앤장을 그냥 팔면 재미없으니까 김앤장을 가루 내자고 하면 훨씬 선전효과가 크지 않겠냐"라고 했다. 그래서 가루는 청국장 가루를 판매하라고 조언을 얻었다. 그런 농담을 주고받은 것들이 어떻게 아사히 비정규지회에 전달되어서 정말 김앤장을 팔게 된 건가 모르겠다.
지금 성주에서 김앤장을 팔고 있다.
지난번에도 김을 팔았고, 일부 친한 사람들에 겐 CMS 넣어달라고 졸라대기도 했다. 물론 그 정도는 상당히 나와 관계가 되어야 부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번 김앤장이 가지는 의미는 또 다르다. 김앤장과 같은 노조파괴 전문 법률 집단을 응징하자는 선전 낙수효과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훨씬 더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가을에 김을 팔 때 사실 가능할까 싶은데도 이웃들에게 도전을 했었는데 이웃 중 매우 호의적인 분이 많은 양 주문을 받아주셔서 좀 팔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아줌마들의 주문은 "생김 없나"였다. 가정에선 조미김보다 생김이면 좋은데 말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하는 재정사업이 아니니 원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번엔 사드 반대 투쟁하면서 맺었던 인연들께 염치 불고하고 "김앤장"을 사달라고 소심하게 부탁을 드리고 있는 중이다. 단톡 방에도 올려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전화 돌려 부탁해본다.
다행히 김앤장이 뭔지 몰라도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주문하는 이가 생겼다. 올해 김앤장 판매목표가 100박스였다. 벌써 101박스를 주문받았으니 목표 달성률 100% 이상 달성했다.
목표를 좀 더 상향 조정해야 하나 하는 행복한 고민도 살짝 해본다.
김앤장 포스터 보면서 화낸 적 있었다. 언제까지 투쟁하는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하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들, 지금 해고되어 복직 투쟁하고 있는 그들이 노조의 깃발을 움켜쥐고 놓치지 않는다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게 되는 날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이겠지, 그리고 그들이 공장으로 돌아가서 예나다름없이 시간으로 돈 벌어먹고사는 임금노동자로 산다고 하더라고, 그들의 투쟁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 사회에 던지는 질문과 교훈이 있지 않나?
금속노조에 대해서 회의스럽고, 노동조합이 더 이상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하지 못하는 조직 논리에 불신이 깊어졌지만 지금 투쟁하는 이들에게 생계비를 마련하는 것 역시 투쟁이고 전술이다. 아사히 자본의 가장 큰 관심사가 해고노동자들의 생계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일 거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자신의 속을 다 까보여 자본을 안심시켜줬다.
우리는 그럴 수가 없지 않나? 이기는 싸움을 하자고 했다.
이기려면 총알 없이 전쟁터에 내보내지 말자.
생존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 우리보다 힘이 훨씬 더 센 자본을 이길 방법이 별로 없다. 우리의 덩치를 모아서 그들의 덩치보다 더 크게 만드는 수밖에 말이다.
구미 아사히 비정규지회 "김앤장 판매"로 생계비를 다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생계비를 마련해야 하고, 자본과의 싸움에서 승전보를 울릴 수 있도록 지지하는 세력들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다.
우리의 연대가 보잘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