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진실에 눈을 뜨다.

by 시야

15개의 별고을 촛불이야기

이글은 성주의 글쓰기 모임인 ‘다정(多情)’ 회원들이 성주의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소감을 쓴 것입니다. 11월 21일 현재 성주의 촛불은 132일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시작된 촛불의 광장에는 이제 난로가 등장했습니다. 난로 주위에는 할매들의 삼삼오오 모여, 시린 발들을 녹이며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글쓰기 실력은 부족하지만 마음을 담았습니다.


드디어 진실에 눈을 뜨다

이수미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서울대 박종철 군 물고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박종철 군의 아버지는 거리에서 시위하는 학생들은 모두가 빨갱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2016년 7월, 사드 배치 확정지가 경상북도 성주로 발표나기 전까지 정치는 정치인들의 놀이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정치는 내 삶의 방향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적당한 싸움질은 정치의 필요조건이며, 그렇게 하면서라도 조금씩 우리나라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성밖숲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군수가 군민들과 함께 서울로 국방부를 항의 방문하며 혈서로써 대응을 할 때도 무덤덤했었다.

2016년 7월 15일, 그날은 국무총리와 국방부 관계자들이 사드 배치의 정당성과 안전성 등에 대하여 성주 군민들에게 설명을 하러 내려온 날이었다. 나에게는 ‘성주정보화농업인’의 한 사람으로 경북정보화농업인경진대회에서 상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수백 명의 사복경찰들이 성주군청 주변을 에워쌌다. 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이 성주군청 마당에서 국무총리 일행을 맞았다. 그런데 국무총리의 입에서는 성주 군민들이 원하는 사드의 안전성에 대한 자료나 사전 검토사항 등에 대한 답변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성주 군민들의 거센 항의가 있었다. 국무총리 일행은 황급히 관사 안으로 몸을 피했다. 이로써 그날의 모든 일들은 일단락 지어지는 줄 알았다.

나는 어슬렁거리며 군청 옆 도로를 걸어 우체국 앞으로 일행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 때 성주군민들에게 쏟아지는 이상한 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종북놈 새끼들, 저것들 다 좌파야. 외부세력이지!” 학업을 잠시 미루고 광장으로 몰려나온 학생들과 막바지 참외 수확에 한창이던 내 옆집의 참외 농사꾼들에게 퍼부어대는 말이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은 나의 무던하던 시각을 날카롭게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성주에는 성주 관내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들을 사고 팔 수 있는 먹거리 단체 카톡방이 있었다. 성주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 공간에 모여 생산한 농산물을 팔기도 하고 필요한 농산물을 구입도 할 수 있는 좋은 온라인 공간이었다. 성주로 귀촌한 나에게는 의심하지 않고 우리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좋은 장터였기에 진작부터 가입해있었다. 이 단톡방이 본래의 취지를 잠시 뒤로 하고 사드를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는 방이 되었다. 이 방에 모인 1,300여명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방에서 성주군민들은 사드 반대에 대한 여러 가지 참신한 의견은 물론, 행동 방식을 일사천리로 내놓았다. 민주적이었으며 신속했다. 많은 의견들이 이 방에서 나왔고 행동으로 옮겨졌으며, 활동 상황들이 공유가 되었다. 나는 그날 이후 단체 카톡방에서 많은 정보를 접했다.

성난 민심을 전달하는 ‘새누리당 장례식’ 퍼포먼스를 보았고, 외부세력 논란에 휩싸일 때는 ‘1318 카톡방’의 공지를 보고 파란 ‘평화리본’을 제작에 참여했다. 스스로를 외부세력으로부터 분리하는 성주의 한 차원 높은 투쟁 방법을 봤다. 성주 투쟁을 한껏 왜곡해서 보도하는 언론의 민낯도 보았다. 언론은 정말 무지막지했다. 성주의 진실은 ‘찌라시’보다 못한 언론에 묻혔다. 그러나 나의 의문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광주를 되돌아보았고, 세월호를 되돌아보았고, 강정 마을과 밀양, 역사교과서, 더 멀리는 만주에서의 독립운동 당시의 친일파의 행적까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심한 몸살에서 깨어날 수가 없었다. 미안하고 죄스러움에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을 쪼개어 리본을 만들었다, 찜통더위를 무릅쓰며 1인시위를 하는 성주군민들의 모습을 보았고 전국을 멀다 않고 다니며 성주의 상황을 알리고자 애쓰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SNS로 성주의 상황을 퍼나르기 시작했다. 비로소 나는 성주 때문에 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나는 내가 할 일을 하나 둘 찾으면서 조금씩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계절은 흘러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버렸다. 그러나 나의 정신세계는 아직도 2016년의 여름에 머물러있다. 나의 여름은 비인간적 취급에 치가 떨렸던 여름이었고 왜곡된 언론이 만들어낸 기류에 아무런 의심 없이 편승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분노로 표출되었던 여름이었다. 권력이라는 무지막지한 무기를 마구 휘두르는 몇몇의 무리들에 “여기 사람이 있다!”며 외칠 수 있게 한 2016년의 여름이었다. 성주의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고 그 여름은 아직도 동행중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