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리본의 탄생

by 시야

15개의 별고을 촛불이야기

이글은 성주의 글쓰기 모임인 ‘다정(多情)’ 회원들이 성주의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소감을 쓴 것입니다. 11월 21일 현재 성주의 촛불은 132일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시작된 촛불의 광장에는 이제 난로가 등장했습니다. 난로 주위에는 할매들의 삼삼오오 모여, 시린 발들을 녹이며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글쓰기 실력은 부족하지만 마음을 담았습니다


파랑리본의 탄생

김경분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성산포대의 사드배치 결정.

아무것도 모르고 인터넷에 ‘사드’라는 두 글자를 검색해보니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다.

나는 군청으로 향했다.

벌써 많은 군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안 된다고 외치고

무더운 날씨 탓에 땀들은 눈물과 하나 되어

비가 오듯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다시 돌아와

냉동실의 모든 것들을 꺼내고 얼음을 만들었다

아이스박스에 물과 얼음을 담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이틀이 지나고 ‘비대위’가 결성되었고

하나둘 싸움의 대열을 갖추어 갔다.

모든 대열이 정리가 되어갈 때쯤

군청 잔디에서는 어느 누군가의 시작인지는 모르지만

파랑리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하!”

내가 별고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일을 찾은 것이다.

이삼일이 지나고 무더운 날씨 탓에

장소를 공방으로 옮겨서 리본을 만들게 되었다.

재료비도 부족했고 재료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서문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젠장. 무더운 날씨 때문에 상점들이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난 것이다.

여기저기를 수소문을 해보니

칠성시장에 리본 소매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쪽으로 차를 돌렸다.

머리핀, 머리고무줄, 옷핀,

이것저것 잔뜩 사가지고 성주로 향했다.

오는 도중 차안에서 갑자기

가슴이 울컥해서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눈물은 그냥 흐르게 내버려두고 차를 몰았다.

다사 부근쯤 오니 마음이 진정되고 정신도 맑아졌다.

(젠장, 우리 친정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이렇게 울지 않았는데, 지랄)

집에 와서 리본을 만들어

저녁 때 촛불집회 가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백악관 10만 서명 때문에 리본은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밤을 새워가면서 리본을 접었고

내가 속해 있는 봉사단체에서도 나와 함께 리본을 접었다.

갑자기 궁금했다.

파랑리본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나비효과 생각 : 작은 날개 짓을 시작으로 성주평화와 한반도 평화, 세계 평화로 번져나가는 폭풍 같은 나비의 효과를 기대하면서 생각하게 됨.

나비의 색깔 : 색깔은 노랑나비, 파랑나비, 빨강나비 등등 여러 의견 중 안정을 상징하는 파랑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빨강색과 검정색의 현수막 색깔을 보면,

군민들 스스로 지치고 힘들어질 것 같아서

군민들의 지친 마음을 안정시키는 뜻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파랑색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평화다.

그래서 평화의 전도사 파랑나비를 생각하게 되었고

1318이라는 카톡방을 통해 너도나도 모여서

파랑리본을 만들게 되었다.

우리는 믿는다.

파랑리본이 평화의 나비가 되어서

전 세계로 퍼져서 사드 철회와 함께

세계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평화의 염원을 담은 손끝에서 탄생한

파랑리본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져서

우리와 영원을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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