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의 별고을 촛불이야기
이글은 성주의 글쓰기 모임인 ‘다정(多情)’ 회원들이 성주의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소감을 쓴 것입니다. 11월 21일 현재 성주의 촛불은 132일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시작된 촛불의 광장에는 이제 난로가 등장했습니다. 난로 주위에는 할매들의 삼삼오오 모여, 시린 발들을 녹이며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글쓰기 실력은 부족하지만 마음을 담았습니다.
황소 뒷발에 채인 날
“투쟁위를 중심으로 사드배치 막아내자!” “투쟁위를 중심으로 이 땅 평화 지켜내자!” 투쟁위 소속 촛불문화제 사회를 맡은 이재동 씨의 선구호로 군청 광장의 촛불들은 뜨거운 메아리로 함께한다. 촛불문화제 38일 파랑나비 광장의 앞자리에 앉아 함께 구호를 외치고 박수를 치던 군수에게 마이크가 건네졌다.
“군민의 목소리는 엄연히 다르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가 주장하는 바를 논리로 논리정연하게 설득해야 합니다.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야유하고 욕하고 비난하고 그러한 일은 성주 군내에서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의견은 어디에서 나오든, 누구 입에서 나오든 존중되어야 합니다. 저는 군민들의 의견이 분분해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의견이 한군데로 모이지 않고 제3의 장소 문제가 나왔으면 그것 또한 투쟁위에서 검토해야 합니다.”
“내려오세요! 그만하고 내려와요!”
“제 말씀을 들어보세요. 우리 군민들은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투쟁위원들은 우리 군민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모으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이 언젠가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군민 모두가 승자가 되어야지 패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군민들의 의견을 투쟁위에 하나하나 다 담아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 싸움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끼리는 뭉쳐야 합니다. 싸움하지 말고 제발 우리 군민이 살 길을 우리가 찾아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16년 8월 19일)
군수가 발언을 하자 촛불을 든 군민들은 계속해서 소리쳤다.
“내려오세요!”
“군수님, 제3부지는 안 됩니다. 그곳 또한 성주입니다.”
“군수님, 왜 그러십니까? 우리 군민들 버리시면 안 됩니다.”
40여 일 동안 군수는 많은 일들을 했다. 군청 현관 앞 단식투쟁, 성밖숲 사드배치반대 혈서 쓰기. 서울역 집회 삭발식, 성주 유림 단체와 함께한 상경 집회, 8·15 광복절 사드배치반대 집회와 907명 삭발식, 그것을 지휘하고 뒤에서 밀어주고 받쳐주던 성주군수였다. 많은 군민들은 군수의 행보에 적극 동참하며 한여름 아스팔트 위의 땡볕을 견뎠다. 군수가 모이라고 하면 모이고, 상경하자고 하면 버스를 대절하고 낮과 밤을 한마음 한뜻으로 싸웠다. 하지만 그는 협잡꾼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를 따르며 군민들의 믿음을 저버린 배신자였다.
8월 22일. 성산읍 성산포대가 아닌 성주 내 제3부지를 국방부에 요청하기 위한 긴급 기자회견이 있었다. ‘1318 단톡방’에 난리가 났다. 많은 군민들이 군청으로 달려갔다. 투쟁위원들의 절규로 기자회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군수님 안 됩니다. 살려주십시오. 군민들 목소리가 안 들립니까?” 군민들은 울먹이며 호소했다. 하지만 군수는 절규를 냉정히 뿌리치고 항의하는 투쟁위원들은 끌어냈다. 사지가 들려서 내침을 당했다. 그리고 문은 닫힌 채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항의하는 군민들이 회견장 부근으로 모였다. 뚫을 수 없는 경찰 병력이었다. 3백 명이 넘는 경찰 병력과 성주군 공무원들에 의해 군민들은 다시 끌려나왔다. “믿었던 저 군수 새끼가 황소 뒷발차기로 군민들을 인정사정없이 조차삤다!” 그저 참외 농사만 잘 짓고 가족들만 평안하면 아무 걱정 없을 것 같던 성주군민들의 민심은 마른 논바닥 갈라지듯 쩍쩍 갈라졌다. 성주군의 최고 의결권을 가진 군수는 군민들의 믿음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려버렸다. 제3부지 찬성에 군수와 함께한 도·군의원들과 각 사회단체회장단들, 10급 공무원인 이장들 대부분은 군민들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군청 평화나비광장에는 “배신자의 말로를 똑똑히 보여주마!”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 글귀를 입술을 깨물고 곱씹었다,
군수는 새누리당 탈당서를 제출하지 않았으며, 간계를 써서 군민들을 갈라놓고, 종북 몰이로 여론을 악화시켰다. 우리 4만 5천 군민을 군수가 고립시킨 것이다. 하지만 곧 모두가 일어나 군수라는 황소의 네 발목을 꺾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것이다. 민중은 밟을수록 꿈틀거리며 꺾을수록 기세가 등등한 법이다.
며칠 전, 어느 날 밤 촛불의 그는 “요즘 제 꼬라지가 말이 아닙니다”라며 하소연을 했다. 그때는 군수에게 그나마 약간의 동정은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촛불들은 인도로 내쳐졌다. 비 내리는 그 처량한 밤들을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추석에 고향을 찾은 가족, 친지들의 방문을 우리는 꼬라지가 말이 아닌 채로 맞이했다. 우리는 다시 옛 경찰서 자리로 옮겨 촛불을 든다. 우리는 이 땅에 평화가 오는 날까지 촛불을 꺼뜨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