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촛불 길 위에 서다.

by 시야

15개의 별고을 촛불이야기

이글은 성주의 글쓰기 모임인 ‘다정(多情)’ 회원들이 성주의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소감을 쓴 것입니다. 11월 21일 현재 성주의 촛불은 132일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시작된 촛불의 광장에는 이제 난로가 등장했습니다. 난로 주위에는 할매들의 삼삼오오 모여, 시린 발들을 녹이며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글쓰기 실력은 부족하지만 마음을 담았습니다.


평화의 촛불, 길 위에 서다

여정희 (2016. 9. 11.)


군청 주차장. 이름도 의미도 없던 이곳에 ‘평화나비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60일 동안 밤마다 촛불을 밝혀 평화를 외쳤고, 나비의 날갯짓으로 전국에 평화촛불을 일으켰다. 우리의 목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는 광장이 된 이곳은 우리에게 평화와 민주주의를 알게 해준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사드가고 평화오라”는 외침으로 뜨거운 60일을 여기에서 보냈지만, 61일째가 되는 날 우리는 광장을 도둑맞았다. 군청 역시 불이 꺼진 채 공무원들이 군민들의 출입을 차단했다. 검은 그림자만 깜깜한 그 곳을 지키고 있었다. 우습다. 도대체 누구로부터 군청을 지키려는 것일까. 군청의 주인은 군민인데, 참으로 우습다. 광장을 뺏는다고 우리의 입을 틀어막을 수는 없다. 우리의 입이 열려 있는 한 광장은 어디든 만들어 낼 수 있다.

61번째 촛불을 켜기 위해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집회를 할 수 없는 군청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귀신놀이도 하며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촛불도 켰다. 우리는 이 상황을 즐겼다. 두 달을 저들과 싸워보니 알게 되었다. 답답한 자들은 저들이고 우리는 여유롭게 즐기면 된다는 것을. 군청 앞마당 아스팔트에서 더 열악한 길거리로 내몰렸지만 어쩜 다들 그렇게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지. 새로운 공간, 새로운 자리여서 일까. 평화를 외치는 우리는 더 뜨거웠고 더 즐거웠다. 우리는 안다. 분노로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그러니 즐길 수밖에.

성주문화원에서 경산네거리까지 집회 행렬이 길게 이어진 덕분에 뒷자리에는 마이크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긴 행렬에 촛불은 파도가 되고 구호는 메아리가 되고 노래는 돌림노래가 되었다. 앞사람의 환호에 뒷사람은 이유도 모른 채 덩달아 손뼉치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그저 아이들 마냥 즐거워했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젊은 엄마들도, 엄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아이들도,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허리도 다리도 아프다 하시는 할머니들조차 집회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먼저 일어나 집으로 가지 않았다. 60일을 지나고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도 잘 싸워왔다. 이날은 특히나 더 성주군민들이 더 위대해 보였다.

우리의 표정을 고스란히 담아내지 못한 언론에서는 군청을 빼앗긴 성주 군민들이 화가 많이 나 있다고 말했지만, 우리 중에 아무도 인상을 쓰거나 화내는 사람은 없었다. 촛불을 약화시키려고 정부와 새누리당이 온갖 탄압을 하지만 우리는 두드릴수록 더 단단해지고 밟힐수록 더 강해지는 민중이 아니던가. 머리 위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어도, 장대비가 쏟아져 내려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던 우리가 아니던가.

군청 마당을 쓰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집결하게 만들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촛불만은 꺼지게 할 수 없다는 절심함이었을 것이다. 저들의 술책은 또 실패다. 우리의 촛불이 약해지기는커녕 더 뜨겁게 타올랐으니 말이다. 우리의 대오는 유연해서 어떤 환경에서든 어떤 조건에서든 분명 적응하고 진화할 것이다. 우리의 평화촛불은 지금 길 위에 서 있지만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 21세기 투쟁의 역사를 쓰고 있는 우리는 이제 다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더 크게 평화를 외쳐야 한다. 저들의 막힌 귀청이 뚫릴 때까지.

미국은 우리의 외침을 왜 거부하는가


여정희 (2016. 10. 11.)

세계에서 제일 힘이 센 나라, 우리의 우방이라 불리는 나라, 미국. 그 힘센 친구의 나라 미국이 무서운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겠다며 저 북쪽에 있는 적보다 더 좋고 더 큰 무기를 이 땅에 들여놓고자 한다. 이런 그들의 말에 우리는 그저 입 닥치고 고개만 주억거려야 하나.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더 센 무기로 나의 삶이, 나의 자유가, 나의 꿈이 보호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무서운 쇳덩이는 평화를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10만 7천명이 ‘아름다운 나라’ 미국에 요청했다. 괴물 사드는 이 땅에 들여놓지 말라고.

미국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평화나비광장에서는 매일 밤 촛불이 밝혀지고, 초전면 소성리에서는 1인시위가 이어졌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뜻을 좀 더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지난 7일 성주 군민과 김천시민이 항의 서한을 들고 미 대사관을 찾아갔다. 성산포대에도, 초전 골프장에도, 이 땅 어디에도 괴물 사드는 들여놓지 말라고.

우리의 우방이라 했던, 우리의 친구라 했던 아름다운 나라 미국은 우리를 문전박대했다. 종이 한 장을 받아 들지 못한 힘센 나라 미국은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를 무기 팔아먹기 위한 호구쯤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했건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고,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낼 만한 용기와 지혜쯤은 갖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미 대사관으로 출발하던 날 군청 마당엔 혈기왕성한 25세의 청년 3명(석창우, 이주민, 이서준)이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사드 철회를 위해 성주군청에서 포항까지 200km를 걷는다고 했다. 이런 청년들이 있어 참으로 든든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봤다.

같은 날, 용산 국방부 앞에서는 200여명의 원불교 교무님들과 성주군민이 함께한 평화기도회가 있었다. 시가지의 잡다한 소음 사이로 들리는 고즈넉한 종소리가 참 평화로웠다. 평화를 지향하는 종교인 원불교 성지에 전쟁 무기가 들어온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미국과 대한민국 정부는 타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또 같은 날, 백철현 공동투쟁위원장과 김충환 촛불주민공동대표, 김천투쟁위원 2명은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사드 배치 철회를 빠른 시일 내에 당론으로 채택하라는 요구도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성주 군민들과 김천시민들은 광화문 세월호 광장을 찾았다. 길 건너 보이는 세월호 천막만으로도 눈시울은 붉어졌다. 분향소 앞에 섰을 땐 차마 얼굴을 들기가 미안했다. 너무 늦게 찾았다. 다른 사람의 가슴 찢어지는 고통조차 나의 바쁜 일상보다는 우선순위가 되지 못했다. 남의 고통이 결국 나의 고통이 되어야만 비로소 알게 된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본과 결탁한 권력에 짓밟혀 본 사람만이 진실에 눈을 뜨게 되는 현실. 밀양의 할머니들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더라면, 세월호의 아픔을 모른 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사드가 이런 식으로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밤마다 평화나비광장에서 촛불을 켜고, 저마다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즐겁게 싸우고 있다. 반드시 사드를 보내고 평화를 안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이기도 하지만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는 희망의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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