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높은 양반이 내게 "현장에 자리났으니까 일하게 해준다"고 만 했으면 아마 나도 마음이 훅 딸려갔을텐데, 그 사람은 내가 일했던 현장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다고 고개를 흔들더라구요. 대신에 다른 직장을 구해주겠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는 기대할 게 없었지요. 내가 나이도 있는데, 다른 직장인들 좋은데 들어갈수도 없을테고, 다니던 곳 멀쩡히 놔두고 다른데 갈 이유도 없자나요. 돈 천만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닙니까? 농담삼아 돈 오천만원이라도 주면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일년치 년봉은 되야 한번 생각해볼까 말까 할긴데 아사히글라스는 고작 돈천만원에 우리더러 포기하라고 하는데 이건 너무 무시하는거라 생각들어서 오기가 더 나더라구요.
그 높은 양반은 고작해봐야 아사히글라스 일본외투기업의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였다. 노조를 흔들기 위해서 2차희망퇴직을 받으려고 아사히글라스 정규직 들 중 친분이나 관계되는 사람을 찾아서 수소문하고 만나서 노조를 그만두라고 회유하고 협박하는 것이 그들의 할일이었나보다. 고작 해 봐야 돈 얼마찔끔 주면서 노조활동 그만두라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다시 현장으로 복직 시킬 의사가 눈꼽만큼도 없었다. 종섭씨가 원하는 것은 돈 몇푼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일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였다. 종섭씨는 다른 말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2차 희망퇴직 들어오기 전에 천막농성장에서 밤마다 철농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이상하게 자꾸 "얼마 받으면 그만둘래?" 하는 질문을 던지길래 그냥 하는 소리인갑다 싶어서 종섭씨는 "나는 오천만원은 줘야 한번 생각해볼거다"고 대꾸하곤 더이상 대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제?" 하면서 택도 아닌 돈에 그만두면 억울하다는 분위기로 끝나곤 했는데 그런 질문이 잦아지고 자꾸 돈 얘기를 오고가는 것이 불편했던 종섭씨는 그런말을 안 들을려고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봤더니 당시 노조의 한 간부가 회사측과 모종의 계약이 있었는지 조합원들에게 돈 얼마 받으면 끝내자고 쑤시고 다닌 모양이었나보다. 2차 희망퇴직으로 반 이상 사람들이 떨어져나가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때 그들의 대화가 그냥 우연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합원들 몰래 뒷거래한 간부들은 2차 희망퇴직을 하면서 다 떠나가버렸다.
공장에서 쫓겨난 이들에겐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쫓겨나고싶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쫓겨난다는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손으로 그만두겠다고 하면 몰라도 말이다.
성한씨는 처음부터 노조에 가입할 수 없었다. 노조를 만들때 공장이 떠들썩했지만 수습기간이라서 혹시나 불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그냥 열심히 일만 익혔다. 성한씨 부서의 사수가 얼마나 끔찍하게 일을 시키는지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들어간지 한달 좀 지났는데 살이 빠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를 키워야 하고 가정살림을 꾸려서 살아야 하니 일해야 했다. 아사히글라스에 들어오기 전에 물류창고에서 텔레비젼 물량을 창고로 쌓고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매일같이 무거운 짐을 이고 들고 하다보니 허리가 배겨나질 않아서 오래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겨우 얻은 일자리인데 수습기간을 잘 보내고 얼릉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성한씨의 수습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회사가 먼저 문자로 해고를 통보해버린다. 실컷 조심조심 살얼음 걷듯이 조심히 걷고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성한씨는 눈치볼거 없이 노조에 가입하고 지금까지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여성들이 많은 곳일 줄 알고 들어갔는데 남성들만 있어서 실망했어요. 그래도 조건이 좋았고, 사실 노조하면서 현장에서 눈치보지 않고 일했어요. 직장 동료들끼리 서로 편의봐주면서 편하게 일했지요. 노조가 현장을 꽉 잡고 있었거등요. 파업도 엄청 많이 했고요. 임금수준도 높았고 복지수준도 아마 구미 최고 였을걸요. 그때 총각들이 많아서 삼성반도체에 여성들이 많으니까 누가 미팅 같은걸 알선한 거에요. 그래서 나갔지요. 그때 지금 집사람을 만났는데 만난지 2주일만에 결혼했어요. 사고치거나 한 거 아니고요. 처음 만났는데 괜찮더라구요. 소개해 준 사람도 둘이 잘 어울린다고 자꾸 이야기 하고, 그때 집사람이 갓 학교 졸업하고 현장실습나와 어렸거든요. 저랑 여섯살 차이 나는데 뭐 사랑이 뭔지도 몰랐고 그냥 괜찮아 보여서 연애랄 것도 없이 만난지 이주일만에 결혼하자고 했지요. 한국합섬에서도 폐업투쟁끝까지 했었거등요. 그때 집사람이 엄청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지금 또 비정규직이면서 노조한다고 하다가 해고되서 싸우니까 요즈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거 같아요. 저도 스트레스 받지만 어쩔 수 없지요.
아사히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의 이야기가 가득 실린 책이어야 한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직접 작성하는 글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글쓰기를 해보지 않았던 조합원들이 정말 글을 쓸까? 누군가 대신 써줘야 하는거 아닌가? 반신반의했는데 기우였다. 정작 당사자들은 스스로 글을 쓰고싶다고 했다. 4명정도가 인터뷰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고 나머지 18명의 조합원이 알아서 글을 작성하기로 약속했다. 대단히 놀라운 결과였다.
물론 막연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는건 좀 무모해보였다. 그래서 지난 일년 칠개월동안 벌어졌던 수많은 사건사고들과 그 안에서 산증인이었던 조합원들이 생생한 목소리를 적기로 한거다.
인터뷰를 하게 되면 주제를 벗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게 된다. 사람사는 이야기가 어찌 한가지만 있겠는가?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 중에도 가장 걱정거리나 고민거리가 화두가 될 수 밖에 없다. 이제 곧 고3이 되는 아들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아빠의모습이 역력히 엿보인다. 좀더 친절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인터뷰의 주제를 벗어나지 않았던 건 내가 아직은 덜 성글어서 그런가보다.
좀더 시간을 두고 편안하게 상대가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 할 거 같다.
세명의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내용을 정리하면서 그들과 이야기 속에서 건져내야 할 그들의 이야기는 또 이렇게 기록 해 두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