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2017년9월19일
사드배치를 8월말까지 완료시키겠다는 정부발표가 있었던 쯤이었다.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마당 한켠에 도수덕엄니가 먼산 바라보면서 앉아계신다. 여느때처럼 “어머니 안녕하세요. 마을회관에 안 들어가십니까?”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드렸는데 수덕엄니의 얼굴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고 계셨다. 엄니 옆에 앉아드렸더니 “이제 살 낙이 없다. 사드 들여놓겠다는데 무슨 수로 막겠노? 이제 사는 희망이 다 사라져버렸어” 하시는거다. 사드가 소성리로 들어온다고 했을때도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할매들은 텔레비전도 안 켜고,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에 우두커니 앉아 계셨다고 했다. 그래도 들어오지는 못하게 막아보자면서 금방 기운을 차리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수덕엄니의 한숨소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마을회관으로 들어가지도 않으시고, 밥상을 차려놓고 식사하시라고 불러도 못 들은 척 바깥에만 계셨다. 마음이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보였다. 밥상차려놓고 모시러 가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마을회관 앞에는 오셨으니, 마음이 좀 누그러지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믿었다. 그러나 마음속에 체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니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나보다.
오늘에서야 도수덕엄니의 방황했던 이야기를 부녀회장님은 편하게 말씀하신다. 체념을 해버리니까 마을회관 일에 협조를 안 해줘서 너무 신경쓰이고 애먹었다고 하신다.
그런데 일박이일 소성리를 떠나 밤새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엄청나게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사드가 들어왔으니 세상 끝난 줄 체념하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마음의 병을 얻은 도수덕엄니가 연대자들의 따뜻한 배려와 돌봄, 매일같이 소성리 마을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정성에 조금은 마음이 풀리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속에 있는 설움을 그날 밤에 많이 쏟아내면서 다시 기운을 얻은 듯 하다고 했다. 한참동안 마을회관일에 협조를 안하던 도수덕 엄니가 “그래 이왕 엎질러진 거 좀더 해보자. 내가 밥당번할게, 형님 내하고 밥 같이 지으입시다” 하시면서 마음을 좀 더 내어주시더란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도수덕엄니는 늘 말없이 자리를 지키셨지만 아주 단호한 분이셨다. 사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 얼굴에 쓰여져있는 듯 했다. 이름을 여쭈면 “나는 이름같은 거 없어요”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경계하셨지만, 경찰과 대치할때면 버럭 화를 내는 모습도 여러번 보았던 듯 하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지 않으셨다.
사드가 들어갈 때도 가만히 있지 않으셨다.
사드가 들어간 후로 사드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집에서 회관으로 올라오는 길에 누군가가 마구 소리를 질러서 내다봤더니 도수덕 엄니였다. 길을 가던 사람이 “할머니 사드가 어디있어요?” 하고 묻더란다. 처음엔 위로 쭈욱 올라가면 된다고 해놓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들이 “사드 구경하러왔어요” 하더란다. 그 말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 도수덕 엄니가 펄쩍 뛰면서 화를 내신거다. “이 양반이 정신이 있나없나, 여기가 어디라고 놀러와? 어디 구경할게 없어서 사드를 구경하러오노? 그럴라면 사드 너거집에 들고 가뿌라”며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게 화가 나서 마을회관으로 들어갔더니 면사무소에서 방역을 한다고 여기저기 하얀연기를 내뿜고 다닌다. 면 공무원이란 자들이 공무를 보러 마을회관에 들락날락 거렸다. 그런데 초전면에서 좀 높은 자리에 있는 공무원이 들어왔다. 할매들께 인사하면서 “어디 다치신데는 없습니까?” 하며 능글맞게 들어온거다. 이것을 본 도수덕엄니가 “ 와요? 우리 죽었나 살았나 구경하러왔오? 사드 들어올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양반들이 와 사드 다 들어가고나니까 소성리주민들 다 죽어삐맀나 싶은교?” 하고 고함을 지른거다. 그 공무원은 그기 아니라면서 꼬리를 내리고는 바로 나가버렸다. 그만큼 수덕엄니 마음속에 채인 것이 많았던거지. 나는 바로 곁에서 “엄니 잘 하셨어요. 저같은 사람이 화내면 버릇없다고 오히려 욕먹었을텐데 엄니가 화를 내니까 찍소리를 못하네요. 할 말은 하고 사셔야지요” 하면서 응원했다. 나의 응원이 엄니께 뭐그리 힘이 될거라 기대하지 않지만, 수덕엄니가 저렇게 목소리라도 높여서 속에 채인 분노, 화를 풀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처음 수덕엄니를 뵈었을 때 새색시같이 말씀한마디 안하시고 자리만 지키던 분이 며칠사이에 엄청 우울하고, 분노스럽고, 좌절스러운 감정의 기복으로 무척이나 괴로우셨을거 같다. 다행히 힘을 좀더 내시겠다고 다짐을 하셨다는 소식은 정말 기쁘지 아니한가?
오늘은 소성리엄니들과 춤을 추면서 야간시위를 하는 날이다. 엄니들은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지만, 율동을 할때는 단디 배워야 한다면서 다그친다. 뭐라도 하나 야무지게 배우겠다는 자세는 확실하다. 오히려 율동을 갈치는 사람들이 고민스럽다. 배우고자 하는 엄니들의 열정을 따라갈라니 힘든거 맞다. 그래도 우짜노? 배우고싶은 사람있으니까 힘들어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