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여행

by 시야

<소성리야간시위>

2017년9월18일 (월)

오늘은 원고마감일이다. 꼼짝을 못했다. 여행 떠난 소성리엄니들이 오실 시간에 맞춰 나가본다는 것도 못 했다. 날이 깜깜해져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공기를 쐬러 마을회관 앞으로 걸어나갔다. 소성리평화지킴이들은 난로가에 한무리, 검문대에 한무리 모여있다. 금연엄니가 눈이 반은 감긴 듯 피곤한 기색으로 앉아계신다. 일박이일로 다녀오시느라 피곤하실텐데 말이다. ‘순천 국가정원?’ 나라별 정원박람회를 구경하고, 온천도 다녀오셨단다. 하룻밤 묵은 숙소가 깨끗하고 가는 곳마다 연대자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셨다고 좋아하신다. 제대로 대접받고 온 기분이라고 편의점 엄니가 말씀하신다.

때마침 부녀회장님이 정리할 것이 있다면서 마을회관으로 오셨다. 부녀회장님 뒤를 따라 마을회관으로 들어갔다. 어제와 오늘, 일박이일동안의 여정을 이야기 들었다.

사드가 소성리로 들어온다고 결정나고, 소성리에 종합상황실이 꾸려졌다. 연대단위들이 소성리로 모여들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소성리를 찾았다. 상주하면서 평화지킴이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골촌동네에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밥을 해댄 것도 7개월이 되었다. 사드발사대 4기 추가 배치 완료되는 시점에 마을회관의 부엌에서는 피로에 지친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나보다. 불만과 불평을 꾹꾹 눌러보지만 어디서라도 삐죽삐죽 새어나오고 있었나보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위기의 순간에 봉착해있었던 터였다.

부녀회장님 생각에 그냥 있을 일이 아니라서 부녀회원들끼리 한번 나가서 밥이라도 먹으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맙게도 원불교를 비롯한 연대단위에서 마을주민들 바람쐬러 나가는 것을 적극 권유하면서 지원해주었다.

어디를 갈지를 정할 새도 없이 마을주민들은 가기로 이야기 했다가도, 이런 기분에 어딜 가냐면서 가지말자고 했다. 그래도 연대자들이 저리 성의를 보이는데 바람쐬고 기분전환하러 나갔다 오자고 설득해서 부녀회원 중 금연할매 밑으로 잘라서 엄니들만 가기로 했다. 상할매들은 모시고 가더라도 긴 여행이 버거울거 같았다. 모두 모으면 엄니들 스물다섯은 될텐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열다섯명의 엄니들과 노인회장이 길을 나서셨다. 그리고 원불교교무님이 동행해 주셨다.

아침 일찍 버스에 오르는데 소성리 평화지킴이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천원, 오천원을 모아서 98,000원을 부녀회장님 손에 쥐어주며 잘 다녀오시라 인사를 하더란다. 그 돈을 손에 쥐고 버스에 올라타는데 자식을 버리고 도망가는 어미심정이 이럴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눈물이 앞을 가리더란다.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면서 뒤를 돌아보니까 자리마다 앉은 소성리엄니들이 하나같이 눈물을 훔치고 있더란다.

가는 곳마다 어떻게 소식을 알았는지 소성리엄니들 온다고 연대자들이 마중나와주었다. 구경가는 곳 표를 끊어주고, 식사를 대접해주었다. 선물까지 챙겨주어서 엄니들이 다니면서 남에게 이리 민폐를 끼칠 줄은 몰랐다고 하지만 내심 흐뭇해 하신 듯 했다.

부녀회장님께 재미있었냐고 여쭈니, 재미있다기보다 갓만에 많이 웃었다고 한다. 숙박시설은 정갈하고 편안했다. 모두 모여서 같이 놀만한 게 윷놀이였다. 짜장면 내기 붙은 윷놀이로 실컷 웃고 떠들었다.

사람들은 소성리주민들 관광간다고 말하지만, 사실 지난 수개월동안 소성리마을 부녀회는 매일같이 주민들과 연대자들의 밥을 챙겨야했다. 사드 배치는 완료되어버렸다. 모두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내부를 추스르지 않고는 뭣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던거다. 함께 버스를 탔던 교무님들이 잠자리로 돌아가시고, 주민들끼리만 모였다. 밤을 지새우더라도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부녀회장님은 모두가 의논해서 마음을 모으지 않으면 지금까지 한 것처럼 할 수는 없을거다라고 생각하였다. 늦은 밤까지 소성리엄니들은 속에 있던 수만가지의 이야기를 나눈 듯 했다.

앞으로 이 싸움이 얼마나 갈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이 거기서부터 시작된 듯 했다. 그간 속상하고, 섭섭함을 다 풀 길은 없겠지만, 싸움을 계속 해나갈 수 있을지를 확인해야했다. 마음은 조금 누그러진 듯 했다. 바쁜 농사철에는 마을회관 부엌일을 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도맡아 책임있게 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이들의 이야기며, 지금까지 했는데 이제와서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며, 조를 짜서 돌리자는 의견이며, 어차피 해왔는데 좀 더 가보자고 의기투합하면서 밤새 긴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러고나서 다음날 버스를 타고 달리는 길에 운전기사님이 노래를 틀어주니까 뒤에서 노랫말을 따라하는 소리가 흥얼흥얼 들리기 시작했다. 부녀회장님이 이왕에 노는거 신나게 놀면서 스트레스를 확 날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바지를 걷어부치고 일어섰더니 바로 맞은편 마지막 자리에 노인회장님(마을로 보면 제일 높은 시숙인 셈)이 떡하니 쳐다보고 있더란다. 그만 자신이 없어 자리에 앉아버렸다.

버스운전기사가 눈치를 챘는지 가장자리에 버스를 세운다. 이왕에 온 거 실컷 놀아보라고 하더란다. 그 말에 자신을 얻은 부녀회장님이 노인회장님께 “회장님, 앞자리에 앉으시거나, 시선을 딴데로 보고 계십시오. 시숙이 쳐다보고계시니까 사람들이 마음껏 놀지를 못합니다”라고 했단다. 한참을 버스에서 놀다보니까 노인회장님이 안 보이더란다. 규란엄니에게 큰 시숙뻘인 노인회장님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는데 어디계신지 안보였다고 한다. 아마도 맨 끝자리에 누워계셨을거란다.

소성리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는 길에 부녀회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제수씨들 놀라고 자리피해주시느라 노인회장님께서 젤 고생많으셨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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