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 야간시위> 주먹밥
2017년10월5일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 추석이 지나가고 있다. 오늘 소성리종합상황실의 강현욱교무님이 나의 글쓰기 연재 타이틀 ‘소성리 야간시위’를 도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강력한 항의의 표현으로 “헐” 하고 찐하게 한자 찍어줬다.
명절은 자기검열의 시간인 듯 하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할 만큼 형식과 격식에 매이지 않고 사는 나지만, 명절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눈길,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꼼짝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번 달 질라라비에 기고한 글에서 주먹밥에 관해 하루종일 기억이 새록새록난다.
그때, 사드반입이 임박해있다는 긴장이 바짝 조여올 때, 임순분부녀회장님은 내게 상황이 터졌을 때 밥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의논했다. 김밥을 서너군데로 나눠서 몇 백개를 주문해두자고 했었다. 그러나 김밥은 누군가가 찾아와야 할텐데, 상황이 긴박해지면 들어오는 길이 다 차단 당할 것이 뻔해서 불가능한 안이었다. 김밥을 직접 만드는 것은 너무 많은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 그냥 밥에 김치 쫑쫑 썰어놓고, 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일거다. 그런데 밥과 김치도 계속 퍼날라야 한다면 부엌에 누군가가 계속 일을 해야 할텐데, 가능할 수 있을까? 부엌일을 한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아야 했다. 딱 한방에 밥이 해결되어야 할거다. 순간 주먹밥이 생각났다.
아들, 딸 어릴 때 소풍가거나, 도시락 싸야 할 일이 있으면, 김밥은 도저히 못 만들어주고, 주먹밥을 만들어주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장점과 멸치와 김가루 그리고 깨와 참기름 등 영양가도 높고 단백하게 먹을 수 있다. 거기에 반찬 한 가지 정도 애교로 넣어주면 딱이다.
막상 상황이 터지면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나, 미리 밥해서 주먹밥을 준비해놓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부녀회장님이 미리 잔멸치와 김가루 등 장을 봐놓으셨다.
금방 지은 보슬보슬 흰쌀밥에 잔멸치를 부어서 두 손으로 이리저리 굴리다, 주먹쥐고 꼭꼭 눌러주면 둥근 주먹밥의 모양이 나온다. 그 옆에 넓고 둥근 쟁반에 김가루를 부어놓고, 그 위로 주먹밥을 굴리면서 밥의 둥근면에 김가루를 묻혀서 완성시킨다. 그리고 나서 주먹밥을 한 개 한 개 종이컵에 담아놓는다. 그렇게 만든 주먹밥이 천개는 넘을 거다. 커다란 밥솥 세 개를 다 가동시켜서 밥을 했다. 작은 압력밥솥도 동원해서 밥을 해댔다. 사드가 반입된다는 통보를 받자마자 마을회관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움직일 때, 성주에서 올라온 여성들은 부엌으로 들어섰다. 주먹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여성분은,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부엌으로 들어와서 주먹밥 만드는 일을 거들어주었다. 금방 김이 빠진 밥솥을 들고 와서 뜨거운 밥을 주걱으로 퍼서 커다란 볼에 넣고, 참기름과 소금을 넣어 밥에 간을 한다. 밥을 한 주먹 퍼서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뜨거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성은 장갑도 끼지 않는 맨손으로 뜨거운 흰쌀밥을 이리저리 떡 주무르듯이 주물러댄다. 손바닥이 빨갛게 물들었는데도.
화상을 입을까 걱정이 되어서 장갑을 권하지만, 그녀는 ‘원래 식당일을 해봐서 뜨겁지 않다’면서 맨손으로 모든 일을 다 해냈다. 주먹밥이 어느 정도 상당량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하나둘 전장으로 나간다. 부녀회장님을 비롯해서 연로한 소성리엄니들은 모두 전장으로 나가셨다. 부엌에는 그 여인이 남아서 뒤치다꺼리를 다 해주셨다. 김치도 썰고, 단무지도 썰어놓아 라면과 세트로 먹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 여인의 손은 내 손에 비하면 반쪽크기였다. 작고 오목한 손이 음식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터라, 그 녀의 빨갛게 달아있는 손바닥을 보면서도 음식을 잘하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지나갔다.
9월6일, 깜깜해지도록 도로를 점거하고 버티고 있다보니 쟁반을 들고 전장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쟁반에는 종이컵이 나열되어있었다. 종이컵 속에는 주먹밥 한 개씩 얌전하게 들어앉아있었다. 그 안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주먹밥이 하나씩은 다 돌아갔을지는 헤아려보지 못했다. 그 시각에 나가서 라면을 먹을 수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꼼짝 달싹을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럴 때 만난 주먹밥이 얼마나 반가웠겠나? 밤을 지새워야 할지도 모를 우리에게 소중한 일용할 양식이었으니.
그 싸우는 와중에 자신에게 주어진 주먹밥이 어디서 왔을지 사람들은 궁금했을까?
아무리 좋은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보급이 원활하지 않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 지혜는 여성들의 머리와 손발에서 나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사드배치가 완료되었고, 시간은 흘렀다. 임회장님은 그날, 9월6일사드가 들어오던 날, 그 여인이 부엌일을 해준 것이 너무나 고맙다. 그 여인이 부엌일을 잘 해준 덕에 임회장님과 소성리엄니들은 부엌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전장에 나가서 열심히 잘 싸울 수 있었다. 그 여인 덕에 전장에 나가서 싸운 병사들이 모두 허기는 면했으니 말이다.
그 여인 한번 더 만날 수 있기를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