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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대용 Mar 09. 2017

탈린 한 달 살기: 마지막 주말

하지 축제, 올드 탈린 그리고 헬싱키

탈린에서 지낸 지 어느덧 한 달이 다되어간다. 6월 마지막 주는 하지 축제(Mid Summer Festival)가 껴있는데 그게 목요일 저녁이었다. 그래서 금요일 하루 휴가를 쓰고 그 축제를 온전히 즐겨보기로 했다. 발트 3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는 1년 중 하루가 가장 긴 하지에 축제를 하는데 각 나라, 각 지역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즐긴다. 우리는 그 축제를 어디서 즐겨야 하나 고민이 많았고,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보통 하지 축제에는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도시에서의 축제는 사뭇 다르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해변가에 친구들과 모여서 밤새도록 고기 파티를 하기도 한다고 했고, 조용히 교외로 나가서 한적한 곳에서 사우나를 즐기기도 한다고 했다. 우리가 처음 접한 하지 축제는 전통 방식이었고, 그런 축제를 즐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현지인들이 Open Air Musium을 추천해주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속촌 같은 곳. 저녁 6시부터 시작한다고 하여 퇴근하고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서 우선 허기진 배를 달래러 저녁부터 먹으러 이 곳에 유일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중세시대 느낌이 나서 그런지 괜스레 RPG에서 새로운 마을 주막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뭘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주문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고르는 메뉴를 유심히 보고 몇 개 골라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본격적으로 축제가 시작되려는지 어떤 행진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의상을 입고 지나가는데 구경만 하고 있던 우리도 모르게 그 행렬에 이끌려갔다.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대사를 외치고 장작에 불이 붙으면서 의식이 시작되었다. 노래 가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반복되는 일부분을 우리도 자연스레 따라 불렀다.

몇 분간 주변을 빙빙 돌면서 노래 부르다 끝이 나고 어떤 무리들은 다시 줄을 지어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일부는 그 자리에 남아서 다른 사람과 만담을 즐기기도 했고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주문하기도 했다. 우린 행렬을 따라갔다. 따라가서 도착한 곳에선 비슷한 순서로 의식이 진행되었다. 이번엔 우리도 그 행렬 속에 뛰어들어 함께 빙빙 돌았다.

그 후부터는 여러 장소에서 각종 행사들이 진행되었고, 우린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걷다가 도착한 곳에서 또 다른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뭔가 단체로 춤을 추는 공연이었다. 흥겨운 음악에 우리도 빠져들어 구경했는데 순간 춤춘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같이 춤추자는 것이다. 와이프는 쑥스러운지 쭈뼛하다 어느새 무리에서 함께 춤을 추었고 나도 그랬다.

그 축제를 그냥 보는 게 아니고 우리도 함께 그 축제를 즐겨서  정말 마치 중세시대로 건너가 축제를 즐기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 와이프가 낯선 남자와 춤을 추고 있다.

그렇게 한껏 뛰고 나니 살짝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간식거리를 먹으러 가서 쉬면서 주변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그러다 회관을 쓴 한 부부를 보았는데 우리도 그 화관을 정말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그 화관이 어디서 났는지, 어디서 샀는지를 물어보았는데 웃아며 다짜고짜 우리에게 화관을 씌운다. 읭? 그러더니 사진도 막 찍어주신다.

비록 화관을 구하진 못했지만 나름 화관을 써보는 소원성취(?)도 하고 멋진 사진도 건졌다.


해가 이제야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는데 아직도 11시 근처다. 허허... 축제가 아직 한창이긴 하지만 대중교통 이용하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돌아가기 시작했고 우리도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정말 흥겹고 즐거운 축제였고 세계 테마 기행에서 봤던 하지 축제만큼이나 전통적이고 좋았다.


그리고 다음날 토요일은 마지막으로 올드 탈린 산책을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올드 탈린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 곳에서는 결혼식 행사의 일부로 보이는 풍경을 보았는데, 뭔가 특이해 보였다. 신랑, 신부가 제한 시간 내에 아기의 기저귀를 갈 수 있는지를 측정해보는 것도 하고, 측근들이 돌아가며 축사를 건네기도 했다. 지나가던 우리도 모르게 멈춰서 흐뭇한 미소로 축하를 보내고 있었다.


마지막 일요일은 아침 일찍 짐을 챙겨 나와 배를 타고 헬싱키로 넘어왔다. 그리고 중앙역 락커에 짐을 맡기고 짤막하게 시내를 구경하면서 이번 여정을 마무리했다. 

나름 헬싱키에서의 만찬

지난번 여정은 네 개 도시를 정신없이 돌아다녀서 열심히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온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탈린에 집을 두고 주말에 틈틈이 돌아다녔더니 탈린이 제2의 고향이 된 느낌이었다. 두 가지 타입에 각각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여행을 좀 더 전투적(?)으로 하려면 체력이 많이 필요한 편이고, 한 곳에 베이스를 두고 움직이는 건 여행할 수 있는 거리는 줄어들지만 한곳에 확실히 집중할 수 있고, 주말 시간을 활용해도 충분히 많은 곳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달에 한 도시를 살아보는 것은 좋은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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