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저물어 갈 때면, 자연이 주는 작은 행복을 누리곤 한다. 이동하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울긋불긋한 산과 들녘, 도로 옆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가을빛 풍경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선생님을 만난 날도 그랬다. 깊어 가는 가을, 선선한 바람이 부는 하루였다.
내년에 기획하고 있는 교육이 있어 나의 강의를 듣고 싶다는 이유로 먼 길을 찾아오셨다고 했다. 강의가 끝난 후, 선생님과 함께 교육장 옆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짧지 않은 한 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는 반은 강의에 관한 것이었고, 나머지 반은 선생님이 몇 해 전부터 겪고 있는 번아웃에 대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사회복지사였다. 많은 직업군에서 감정노동자가 존재하지만, 사회복지사는 번아웃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도 번아웃을 검색하면 사회복지사가 사례로 안내될 정도다.
지역사회에서 10년을 헌신한 선생님은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평가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돌보지 못했다.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렀고, ‘일’이라는 인생의 벌레가 조금씩 갉아먹으며 깊은 상처를 남겼다. 결국, 우울증과 무기력감이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지금의 힘든 상황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출근길이 지겹고,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다고 말했다. 나 역시 같은 일을 14년 동안 해온 터라 선생님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떻게 답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가장 필요한 것은 병원 진료를 받는 것이라고 권했다. 또한, 건강이 최우선이기에 직장을 내려놓고 온전한 쉼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선생님은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압박감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잠시라도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급한 일을 마무리한 후, 병가를 신청할 것을 추천했다.
그 순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만 따뜻한 공감과 응원의 말을 건넬 뿐이었다. 그렇게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찾아왔다. 다시 만난 선생님의 얼굴에는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지난날 내내 드리워졌던 어둠이 사라지고, 잊고 있던 미소가 되살아났다. 궁금해서 물었다. 그동안 선생님은 병원 진료를 받고, 몸을 움직이며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하나의 계절을 지나며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말이 참 다행이었다.
우리의 삶은 다람쥐 쳇바퀴 인생처럼 반복된다. 익숙한 일상이 주는 안정감이 있지만, 어느 순간 뜨겁게 살아온 흔적들이 허공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만약 가까운 사람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그저 마음을 다해 들어주고, 진심을 담아 응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무엇을 해도 해결되지 않고, 죽을 만큼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 남은 힘을 쥐어짜며 버티지 않았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과 무너진 삶의 균형 속에서 마치 싱크홀 위를 걷듯 위태로운 사람이 있다면, 잠시라도 그 길에서 멈출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깊고 어두운 길을 억지로 걸어갈 필요는 없다. 가끔은 신발을 벗고 길가에 주저앉아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도 괜찮다. 그리고 지친 나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자.
돌아가는 길이라도 결국 길이다. 계획된 시간, 목표, 경쟁에서 잠시 멀어졌다고 해서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안전하고 지혜롭게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그렇게 단단한 마음과 지속적인 발걸음이 모이면,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예방주사를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