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국화꽃, 어머니를 다시 보다

by 독립사회복지사

어머니는 오랫동안 지독한 가난과 일찍 가족을 떠난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바쁘게 사셨다. 시간과 돈에 쫒기는 삶 속에서 짧은 나들이조차 사치라고 여겨졌다.


어린 시절, 내 마음속의 어머님는 크지 않은 모퉁이에 작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없는 아버지가 없는 한부모가정에서 시작해, 조금 자란 뒤에는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어 조손 가정이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한 따뜻한 추억이 많지 않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틋하고도 안타까운 사연이 우리 사이엔 남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 마음 속 그리움이 오래되어 단단하게 굳어지자, 그 감정은 미움으로 변했다. 어머니는 먼 도시의 식당에서 일하셨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외할머니 집에 왔다가 하루를 머무시곤 떠나셨다. 때로는 얼굴만 잠깐 비추고 다시 떠나기도 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금강 건너 도시에 있는 식당에서 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고, 나는 너무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할머니가 말한 그 길을 따라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어린 나는 강에 있는 다리만 건널 수 있으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몇 시간을 걸어도 다리는 보이지 않았고. 더디고 작은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어둠이 내리자 무서움에 울음을 터뜨렸고, 울면서 다시 걸어온 길을 되짚어 돌아왔다.


그저 친구들처럼 너무 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닫아버렸다. 더 이상 어머니를 그리워하지도,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슬프고 아픈 경계가 생긴듯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작은 계기가 찾아왔다. 바로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어머니는 국화꽃을 좋아하셨다. 그러나 늘 생계에 쫓기느라 그렇게도 좋아하는 가을 하늘 아래 피어나는 국화꽃을 자주 만나지 못하고 사셨다.


넉넉하지 않은 생활 형편에 어머니 생일은 작은 부담이었다. 그날도 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마땅한 선물을 고민하던 중 작은 상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상점 입구 진열장 한켠에 종이로 만든 빨간 국화꽃이 붙어 있는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점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용기를 내어 상점 문을 열었다.

가게 주인 어르신은 친절하게 상품들을 소개해 주셨고, 나는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빨간 국화꽃 액자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재료비랑 만드는 방법을 부탁드립니다."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 가게 주인 어르신은 말했다.


"아니, 그것을 총각이 직접 만드려고? 쉽지 않을 텐데... 저게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재료와 액자를 구입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시간을 정해 한 달 동안 종이를 접고, 자르고, 말고, 붙여 종이 국화꽃 액자를 완성했다. 마침내 어머니 생신 날, 그 투박하고 거친 종이 국화꽃 액자를 어머님께 드렸다. 향기도 없고, 손재주가 없는 아들이 만든 선물이지만, 어머니는 국화꽃을 코 끝에 가져가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국화꽃에서 은은한 향기가 나고, 생화와 같구나.”


평소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감정표현이 서툴고 무뚝뚝하셨는데, 그날은 말도 많고 표정도 부드러웠다.

이제 나는 세 아이가 아버지가 되었다. 반백 년을 살고 나서야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하게 되었고, 조금 이해할 수가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빈자리와 가난,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이 어머니로 하여금 따뜻하고 다정한 말을 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어머니가 편한 존재는 아니지만, 내게 주어진 아버지라는 역할에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여유가 생겼다.


국화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이 익숙하지 않고 서툴렀던 아들이지만, 어머니의 남은 삶이 국화꽃처럼 '영원한 행복'이 함께하는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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