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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담 May 13. 2016

사랑이 무엇이길래

#사랑 #이별

― 형이 사랑을 알아?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고2 때 만난 첫사랑과 단 한 번도 헤어지지 않고 11년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 여섯 살 배기 아들과 네 살 배기 딸을 둔 결혼 7년차 유부남입니다. 햇수로 치면 18년을 함께 해왔고, 사춘기와 대학 입학, 군 입대, 사회생활, 출산 등 사람이 일생동안 겪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들을 모두 형수와 함께 해왔습니다. 따지고 보면 따로 살아온 날보다 함께 살아온 날들이 더 많은 셈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 형수를 대하는 형의 태도는, 저의 기준으로는 조금 못돼 보였습니다. 이 부분이 항상 안타까웠던 저는 한마디 덧붙입니다.


― 형, 사랑은 이별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야. 형이 여자한테 차여서 술 먹다가 친구 품에 안겨서 울어봤어?


그는, 그래 나 사랑 모른다 하며 웃습니다.


그날 저녁 퇴근 후 그의 집 앞에서 형수와 함께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걸쳤습니다. 평소와 달리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나온 터라 형수는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형수는 신나서 오전에 있었던 일을 형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치원 엄마들하고 우연히 커피를 마시게 됐는데, 다른 엄마들 얘기를 듣다 보니 우리 남편만 한 사람이 없구나 싶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형은 여전히 툭툭거렸지만 형수의 말이 싫은 기색은 아니었습니다.


― 저는요, 두 가지 꿈이 있는데요, 하나는 말을 하는 직업을 갖는 거고요, 다른 하나는 사랑을 하는 거예요.


제가 오전에 형에게 했다는 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나서 형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는 정말 남편 한 명밖에 없었는데 남편은 자기보다 투명하지 않은 것 같아 억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이 또다시 툭툭 거리며 걸 수 있는 것을 다 걸고 맹세하건대 너 하나밖에 없었다고 말하자, 형수는 너무 해맑은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입니다.


― 그래? 그럼 사랑은 지워야겠다.


형수는 슬며시 형의 팔짱을 낍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왠지 머쓱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랑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형에게 그렇게 말했을까 부끄러웠습니다. 사랑이 뭔지 모르기도 모르거니와, 조금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도 진짜 사랑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은 무엇일까요, 친구 품에 안겨서 서럽게 울 때 그것은 사랑이었을까요, 형과는 달리 지금 여자친구의 눈치를 부지런히 살피는 저의 모습은 사랑일까요.


이별 후에 오랜 진통을 겪었습니다. 그 진통이 끝날 무렵 저는 어렴풋이 아, 사랑은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그늘이 있기 마련인데 사랑이 크면 클수록 그 그림자도 커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이치가 그렇다는 것을 그냥 알기만 하면 좋았을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또 상처받는 것이 무서워 일종의 보호막을 만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반대로 그림자의 크기를 제한함으로써 제 감정을 조절하게 된 것이지요. 지금 눈앞에 있는 빛에 환희하기보다, 있을지 없을지도 잘 모르는 암흑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겁쟁이가 된 것이지요. 불꽃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손을 댔다 그 맹렬함에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린 갓난아이가 다시는 불꽃을 만지지 않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흔히 사랑의 끝을 보아야만 사랑을 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아는 것이 저에게처럼 이런 의미라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사랑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들은 사랑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기 전에 들어가려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은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가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올려놓은 사진에는 잘생긴 작은 그와 예쁜 작은 그녀가 손을 잡고 서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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