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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Aug 03. 2015

제주의 여름소리

여름에 귀를 기울인다.

ㅣ 매미 소리

 지금이야 손으로 곤충을 잡으려면 먼저 팔에 소름이 돋는 아가씨가 되었지만, 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여름 방학이면 잠자리채와 통을 들고 다니며, 아파트 단지를 누볐다.

 곤충을 잡는 나름의 노하우도 가지고 있었는데 잠자리는 어딘가에 앉아 있을 때 잠자리 눈 앞에 손가락을 돌려 어지럽게 만든 다음 날개를 잡으면 되었고, 메뚜기나 방아깨비는 뒤에서 조용히 다가가 살짝 오므린 손으로 덮으면 그만이었다. 가장 난이도가 있는 것은 역시나 매미였는데 대부분 나무 위에 있기 때문에 키가 작은 나는 잡기가 어려웠었다. 그래서 나는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가만히 매미소리에 집중해서 내가 잡을 수 있는 매미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탐구생활에 '곤충표본' 과제가 있을 때는 더더욱 열심히 곤충들을 잡으러 다녔다. 만족할만한 채집을 끝내고 돌아와 아빠나 삼촌의 흰색 와이셔츠를 의사 가운처럼 입고는 잡아온 곤충들에 에탄올 주사를 놓고, 좋아하는 색으로 칠한 스티로폼 위에 핀으로 꽂아 멋진 표본 액자를 만들어 냈다.

 매미소리에 이렇게 귀를 기울였던 적도 있었는데 여름 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매미소리는 이제는 소음에 가깝다. 여름밤 조용하고 시원한 산책을 특유의 우렁차고 날카로운 소리로 방해한다. 문득 어릴 때 배운 매미의 일생이 떠오른다. 7년 동안 어둡고 축축하며 답답한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내다가 마침내 땅위로 올라와 2주 동안 살아간다는 매미. 수컷 매미는 암컷매미를 찾기 위해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울어대는 것이다. 어릴 적 매미에게 지은 죄를 생각하며 아름답게 들어보려 노력해 봤지만

 '니 짝에게는 이 소리도 아름다운 소리로 들리겠지? 아, 그래도 나한테는 안되겠어 매미야!!!'



ㅣ 소나기 소리

 발끝에 남아있는 더위까지 식혀주는 소나기 소리가 좋다.

 시원한 막걸리와 내가 좋아하는 깻잎전, 감자전, 해물전, 김치전을 떠오르게 하는 소나기 소리가 좋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 바람에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책을 보며 듣는 소나기 소리가 좋다.

 우산이나 우비 없이 비를 맞아본 적이 언제였을까?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날 숲 속에 비 맞으러 가봐야겠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속에 서있으면 크고 작은 고민을 하느라 뜨거워진 머릿속까지 시원해지겠지?



ㅣ 모기 소리

 위이이이잉 탁! 탁탁!! 위이잉 탁탁 탁탁탁!!!!!!!

 단잠을 깨우는 모기소리에 눈을 채 뜨지도 못한 채 모기보다 빠르게 손으로 휙! 소리가 나는 곳을 잡아챈다. 모기보다 빠르게 손을 휘둘렀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꿈 때문에 몇 번 팔을 들었다 내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김없이 다시 다가오는 위이이잉 소리.

 열대야를 이겨내고 겨우 잠이 들었는데 이제는 모기라니! 여름밤 잠을 청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참고 참고 참다가 결국에는 일어나서 불을 켜고 모기를 찾기 시작한다.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밝아졌으니 정신을 못 차리거나 내 피를 잔뜩 배에 싣고 무거워서 벽에 붙어 있다가 눈에 띌 만도 할 텐데 이 밤에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든 나보다는 생존본능이 강한가 보다.

 '24시간 켜 놓을 수 있는 모기향을 사왔어, 이제 안녕!



ㅣ 파도 소리

 평온하게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엉켜있던 생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생각들이 제자리를 찾고 나면 이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이 때다. 통기타 하나를 들고, 그녀 옆에 앉자. 파도소리에 맞춰 조용한 음악을 연주하자. 그리고 평소보다 낮은 음성으로 속삭여 보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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