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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Sep 08. 2015

은빛 억새로 빛나는 제주살이

꽃보다 예쁜 단풍이 있고, 높아서 시원한 하늘이 있는 가을은 도시에서도 사랑스러운 계절이다. 도시의 가을이 그러한데 제주의 가을은 오죽 하겠나.

봄에는 유채꽃, 여름엔 수국이 있다면, 가을의 제주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억새다. 가을 억새가 제주의 바람에 맞춰 넘실거리며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장관이기도 하다.


억새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제주의 억새가 특별히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넘실대는 억새파도 너머로 보이는 평화로운 오름들과 억새밭을 두른 돌담 때문이겠다. 제주의 어느 것과도 잘 어울리는 돌담은 다음 기회에 이야기해 보고!

가을엔 제주 어디서든 억새를 만날 수 있겠지만 내 마음에 걸려있는 액자에 담긴 곳을 보자.


#1. 산굼부리

내가 제주의 억새를 처음 만난 것은 2013년  11월 초 퇴사를 앞두고 친구와의 여행에서 찾은 산굼부리에서였다. '굼부리'라는 것은 화산의 분화구를 말한다. 기생화산인 오름이 360개가 넘는다는 제주에서도 유일한 마르형 화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아찔할 만큼 깊은 화구를 가지고 있는데, 올라온  것보다 훨씬 더 깊어 보인다.

가을이 되면 이 산굼부리는 내 키보다 큰 억새들로 뒤덮인다. 산굼부리 정상에 서서 동쪽의 오름들과 함께 바라보는 것은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아쉬운 점은 다른 도립 관광지보다 입장료가 비싼 편이라는 것이다.

산굼부리. 2013
#2. 따라비오름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오름. 내 경우는 멀고 먼 동남쪽에 있는 표선은 잘 가지 않게 되는 곳이기에 '여유로운' 여행자에게만 추천하고 싶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도 적다.

일 년 전 개천절에 찾은 따라비 오름. 가시리 마을에 있는 허름하지만 맛있는 나목도식당에서 착한 가격의 두루치기로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따라비오름 앞에 들어섰다. 오름을 오르기도 전부터 가득한 억새의 물결에 빠져 정작 오름은 오르지도 않을  뻔했다. 하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오름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또 한번 넋을 잃는다. 날씨가 좋은 날에 북쪽을 바라보면 굽이치는 제주의 동쪽 오름들과 함께 한라산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오름에서 내려와 억새 사이를 걸으며 바람과 억새가 만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걸어보자. 이게 바로 여유롭고 낭만 있는 가을날의 산책이다.

따라비오름. 2014


#3. 제주도 곳곳의 드라이브 도로

제주도 곳곳을 달리다 보면 그림 같은 곳이 넘쳐 나는데 그때 그때 좌표를 기억할 수는 없다.

당신의 여행에도 꿈같은, 그림 같은 그 곳이 나타나 주기를!

성이시돌 목장 가는 길 /2014


제주 억새 자랑을 해두었더니 친구가 가을에 억새를 보러 온단다. 무난하게 산굼부리를 추천해줬는데 그런 관광지 보다는 제주도민 추천 찬스를 바라는 눈치다. '우연한 드라이브 길에 평생 잊지 못할 억새 장관을 만나게 될 거야'라고 말해주었더니, 그새 또 검색을 해보고는 '평화로 드라이브 길이 억새가 그렇게  예쁘다는데?'라고 물어왔다. 순간 '평화로가? 흠... 그런가?'하고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아~ 내 출근길이거든'이라고 덧붙였다.

매일 왕복하는 그 길이 억새가 예쁜 길이었다니... 감사하고 감동적인 것들이 일상에 묻혀버리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출근길에 평화로를 유심히 살펴보니 억새가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자, 오늘은 제주 여행 계획을 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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