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죄수들
항상 무한한 예술의 유토피아를 가슴에 품고 살았던 빈센트에게 실제 발 딛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1890년 빈센트가 사망한 해에 그린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죄수들>에서 ‘죄수들의 원형 보행’은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원환을 빙빙 돌고 있는 빈센트 자신의 모습을 닮았다. <별이 빛나는 밤>이 천상의 소용돌이를 보여준다면 ‘죄수들의 원형 보행’은 지상의 소용돌이를 보여주고 있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_정여울
원하는 곳에 갈 수도 없고,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는 감옥. 그림에서 고통받는 죄인들의 삶을 보면서,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로움에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이 그림의 핵심인가? 나의 삶은 뱅글뱅글 좀비처럼 걷고 있는 저 죄수들보다 나은 삶인가? 그래서 위로가 되는가?
사방이 막혀 있는 감옥. 그 속에서 죄수들은 매일 반복된 일상을 규칙적으로 보낸다. 지정된 장소에서 명령받은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 죄수들. 그 가운데서 눈에 띄는 가운데 한 사람. 눈동자가 표현되지 않았지만 분명 우리를 향해 응시하고 있다. "내가 불쌍해 보이니? 넌 나랑 다를 것 같아?"라고 말하는 듯한 차가운 얼굴. 내가 지내는 곳이 감옥이 아닐지라도, 창살만 없지 너의 현실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듯한 무언의 메세지.
허무할 정도로 매일이 같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다시 쳇바퀴에 내 몸이 굴려지고 있다. 왜 밥은 세 번이나 먹어야 하는지, 왜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것인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 하지만, 심지어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사람조차도 반복된 노동(물론 다른 형태이겠지만)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겹고 벗어나고 싶어 안간힘을 다해 새로움을 추구하며 애를 쓰지만, 결국은 "다 카포"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듯 반복은 여전하다. 무력해지다 못해 슬픈 현실이다.
티치아노의 <시시포스의 형벌> 작품은 제우스가 자신을 속인 죄에 대해 시시포스에 내린 형벌 이야기이다. 시시포스는 저승에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했는데, 산꼭대기에 이르면 바위는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 그 바위를 다시 들고 산을 오르는 행위를 또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고역은 그에게 영원이 되풀이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은 바로 '반복'인 것이다.
그 형벌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싱크로율 120프로.
무거운 돌을 이끌고 산 위에 올라야 한다는 의무이자 억압. 그것을 감시하는 자. 흔들림없이 버텨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 발걸음마다 짓눌리는 바위의 무게들.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 고통의 훈장으로 얻은 딱딱한 굳은 살까지. 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살아 있는 한 끝없이 매일 반복해야 한다는 절망감이지 않을까?
사방이 막혀있어 도망갈 수 없는 형벌의 시간들 속에서,
그 반복된 행동들 속에서 난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나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고흐를 생각해 본다. 자신의 그림이 현실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던 그는 왜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반복적으로 이젤 앞에 앉았을까?
동서남북 어디서도 자신을 화가로 인정해주지 않지만, 하늘 위의 별을 보면서 자신의 꿈을 노래하면서 별을 그렸던 고흐. 그는 물리적으로 사방이 막혀있다 할지라도, 하늘은 막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나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 위로 치솟아 캔버스를 뚫고 상승하듯, 나의 꿈은 어디서도 막히지 않고 하늘 위로 날아오를 것이라는 희망. 그 간절함.
자신을 부정하고 있는 가혹한 현실이 고통스러워 미칠 지경이지만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반복된 행동의 의미를.
마음이 약해져서
남들과 자꾸 비교되어서
내 꿈에 다가가는 것이 힘들어서
나의 꿈에 누구도 관심 가져 주는 것 같지 않아서
이게 맞는 방법인지조차 나 자신이 의심스러워서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려워서 자꾸만 움츠려들 때에도
그래도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건
하늘은 뚫려 있다는 것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옛말이 있지만 다른 건 다 무너져도, 고통에 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하늘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오히려 사방이 막혀있기 때문에 그 고독함 속에서 나는 하늘과의 연결고리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내 정수리 위로 펼쳐진 무한의 세계를.
형벌이지만, 형벌이 아님을
빛을 찾는 아름다운 시간임을
어디에 있든 그건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이기에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다 해도 괜찮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억압의 상황에서
더욱 선명하게 뚫려 있는 유일한 하늘 길.
나의 정수리가 빛이 나는 시간이다.
똑바로 가운데를 쳐다보고 있는 죄수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은 시시포스
죄수도, 시시포스도, 나도
고통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행하는 의미를 생각한다.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신과의 연결이고
어떤 이에게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꿈의 장소
내가 어디에 있든 천국은 내가 만들고 만나는 것..
생을 사는 동안 신앙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고 싶다.
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Oscar Wilde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살고 있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보며 산다.' - 오스카 와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