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
잠을 자고 있는 집시 여인.
얼마나 피곤했는지 생계수단으로 보이는 악기와 물동이를 옆에 둔 채로, 모래 위에 몸을 맡기고 곤히 잠을 자고 있어요. 몸이 모래알 안으로 빨려 들어가도 모를 듯이요.
그림 속 또 다른 등장인물인 사자.
꼬리를 바짝 세운 채 냄새를 맡으며 맛있는 먹잇감을 탐색하는 걸까요? “웬 떡이냐”며 만찬을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타이밍입니다. 그런데 이 사자는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사자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어떤 욕망도 사나움도 느껴지지 않아요. 잡아먹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듯한데요? 살짝 귀엽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꼬리를 바짝 올리고 경계태세를 갖추어 여인을 지켜주듯 보이기도 해요.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동화 같은 이야기.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
루소는 1884년 프랑스 북서부 도시 라발에서 가난한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가정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일찍부터 아버지를 도와 일을 시작했지만, 늘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가난은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아픈 아내와 7명 아이의 가장으로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던 그는 파리시 세관원으로 취직해요. 파리 센강으로 들어오는 물품들을 기록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일이었어요. 그 시대 평범한 가장이었던 루소. 매주 60시간 이상을 세관원으로 성실하게 일을 했던 그는 40세 무렵 삶에 변화를 주기 시작합니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취미활동을 시작한 것이죠. 학교 다닐 때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긴 했지만, 한 번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는 그가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거예요. 그것도 독학으로요. 세관원을 은퇴하기까지 10년 가까이 주중엔 세관원으로 일하고 주말엔 그림을 그립니다. 루소처럼 정식으로 그림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고 취미로 독학한 화가들을 소박파(naive art)라고 해요. 그림이 꾸밈없이 순수하다는 의미이고, 보통 본업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기에 ‘아마추어 화가' ‘주말 화가'라고도 부르죠.
이러한 사연 많은 그의 그림은 한 마디로 ‘듣보잡’ 그림이었어요. 인물의 비례나 원근법 등이 정확히 맞지 않고, 투박하며 서투른 느낌이 들거든요. 소위 '잘 그린' 그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죠. 하지만 루소는 그림 그리는 진한 취미를 멈추지 않았어요. 그리고 1886년 ‘앙데팡당전’이라는 독립예술가 협회전에 참가하면서 화가로서 활동을 시작해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자기 선언이었어요. 딸린 식구들을 생각하면 엄청난 도전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의 그림은 사람들로부터 아마추어 같다는 평가를 받았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어요. 당시에 유행하는 인상주의 화법도 아닌 데다, 그들이 혐오하는 검은색을 과감하게 즐겨 썼거든요.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또 과거 아카데미 스타일 거장들의 기법은 구사하지도 못했고요. 그래서일까요? 다른 화가들보다 '잘 그린' 그림은 분명 아닌데 빠져드는 매력이 있어요. 어린아이가 그린 것만 같은 그의 순수함과 그림에 대한 애정이 그림 속에 녹아져 있기 때문일까요? 실제로 루소는 자신의 그림을 사랑했어요.
“나는 내 노력으로 얻은 나만의 자유로운 스타일을 바꿀 생각이 없다” - 앙리 루소
자식처럼 사랑했던 자신의 작품에 쏟아지는 비난에 그는 작품 활동을 포기했을까요? 자식 같기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고 더 애정을 주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렇듯이 꾸준히 내 생활의 일부인 듯 그림을 그렸어요. 누군가를 위해서 그린 것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도 분명 집시 여인처럼 고단한 날들도 많았겠지요. 하지만 그림 그리는 행위로 자신을 위로했고, 누군가를 따라 하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표현했어요. 그는 분명 그 속에서 진정 자유로웠고 자신이 창조한 작은 세계를 무척이나 사랑했을 거예요. 그 꾸준함으로 쌓아 올린 자신만의 색, 그의 고유함이 그림에서 묻어 나와요.
"아마추어여도 괜찮아. 좋으면 너의 방식대로 해. 손 놓지 말고. 그만두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삶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던 날이 없었을 그가 우리에게 하는 말, 들리시나요? 바빠서 못하고, 돈 없어서 못한다고 얼굴을 찡그리며 한숨 쉬는 우리에게요. 분명 힘든 현실의 삶이었지만, 시간을 쪼개어 하고자 하는 일을 일상의 습관으로 지속했던 루소는 행복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환상과 신비로움, 그리고 어린아이 와도 같은 순수함과 유쾌함 이 모든 것이 그의 삶을 말해주고 있어요. 화가가 된 이후에도 인정받기까지 또 10년. 화가가 되기 위해 주말마다 그림을 그렸던 시간들과 화가 이후의 삶까지 20년이죠. 나이 60이 되어서야 그의 진심을 화가들도 알아봤고, 피카소는 그를 자신의 작업실에 모셔 동료화가들에게 ‘위대한 예술가’라고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꿈의 습관.
단번에 해내기 어려운 숙제이죠. 정말 소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그 습관이 저의 꿈을 말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다만 알아채지 못했을 뿐. 루소 할아버지로 빙의해서 다시 음성지원 해드릴게요. “좋아하는 일 시간 없다 핑계 대지 말고, 참지 말고 조금이라도 시작해. 그건 나의 삶과 같이 가는 거야. 계속 쌓아 올려. 나 봤지? 20년 이상 안 그만두고 했잖아. 뭐가 나와도 나온다니까. 이거 장기전이야" 미련하리만큼 우직했던 그로부터 삶을 배워요. 그 미련함이 그를 자유롭고 아름답게 만들었듯, 우리 또한 그렇게 날아오르기를 바라봅니다.
#습관 #루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