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의 유혹을 넘어서

-고수가 되려면

by 한병철 Mikhail Khan

어제는 오랜만에 친한 후배와 만나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 후배는 서울팔괘장연구회 회원이자 나의 무술 제자이기도 하고, 학교 직계 후배여서 우리끼리의 친밀감이 좀 남다르다. 이 후배는 한국에서 가장 큰 검술단체의 사무국장이며, 본인 스스로도 무술도장을 여러개 운영하며 사업가로써도 성공한 무술 사범이다.


어제는 그 후배에게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짚단베기장 이라는 곳이 있는데, 주로 검술하는 사람들이 방문하여 짚단을 베어보는 곳이다.

그런데 진검 짚단베기장을 자주 출입하는 사람들이 검술 기술이 이상하게 변한다는 것 이었다.

어느 베기장 인가는 거론하지 않겠다.


진검 베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베기장을 운영하는 사장님과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검술의 고단자이거나 사범 인 곳도 드물지만 있기는 하다. 그런데 여기서 거론하는 베기장은 사장과 직원들이 무술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 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베기장에 방문하는 검술가들의 짚단베기를 오랫동안 관찰하다보니, 나름 대로의 안목이 생긴 것이다. 잘 베는 사람과 못 베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고, 베기를 할 때 자세, 시선, 몸 움직임, 잔심주기 등등도 오래 보다보니 대충 알게 됐다고 한다.


우리가 탁구와 당구를 어디서 배웠던가 생각해보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구장 사장님이나 선배에게서 배운다. 탁구와 당구를 학원가서 돈을 지불하고 배웠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집 철가방 몇 년 하다보면, 중화요리를 어깨너머로 배워서 독립하여 중국집 개업하는 사례는 사실 매우 흔하다. 나이 좀 있는 중화요리 주방장들 중에는 젊어서 철가방 배달하다가 요리 배워서 독립한 사람들도 많다. 어깨너머 배우는 것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초보자들이 이런 베기장을 방문하면, 초보자들이 하는 것을 뒤에서 보고 있다가, 이 아저씨들이 훈수를 둔다는 것이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해’, ‘그렇게 베면 안 베어져’, ‘자세는 이렇게~’, 이런 식으로 시시콜콜히 훈수를 둔다는 이야기 였다.


그런데 여기서 베기를 지도받고 온 사람들을 보면 어딘가 자세와 기술이 잘못돼 있었다고 하며, 이런 사람들을 자주 접하다보니 어디 베기장에서 배웠는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다. 어떤 자세는 A베기장의 기술이고, 어떤 자세는 B베기장의 독문 기술이라고 한다.


잘못 배우고 온 수련자들은 사범의 교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오히려 자기가 배운 것이 맞다고 강변하기도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요리를 할 때 감칠맛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통상적으로 버섯류, 다시마, 멸치, 새우젓, 북어, 황태, 가쓰오부시, 간장, 치즈, 액젓, 양파, 마늘, 고기류 등등에서 재료를 선택하고 요리해서 감칠맛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감칠맛을 쉽게 내겠다고 방송에 나와서는 요리에 설탕을 한컵씩 부어넣은 사람도 있었다.


설탕을 때려 부어서 요리하는 사람 밑에서 음식을 배운 사람은, 정통 쉐프들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즉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진검베기장에서 이런 일 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백종원식 요리에 익숙해진 사람은 이연복이나 여경래 쉐프의 정통 요리 스타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뭐하러 힘들여 복잡한 요리를 하겠는가? 설탕 한컵만 부으면 간단하게 해결되는데 말이다.


Image_fx (1).jpg 설탕을 부으면 모든것이 해결될까요?




아인쉬타인과 운전기사의 일화가 떠오른다.


아인쉬타인과 운전기사가 단짝이 되어 전국 강연을 다니곤 했는데, 어느날 운전기사가 말했다. ‘박사님이 강연하실때마다 뒤에 앉아서 상대성이론을 듣다보니, 이제는 저도 강의할 수 있을거 같아요’ 라고.


그래서 아인쉬타인은 자신의 얼굴을 모르는 모임에 가서 그 운전기사를 아인쉬타인이라며 강연대에 세웠다고 한다. 운전기사가 청산유수로 똑같이 강의를 하고 끝나자,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성이론에 대한 질문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운전기사는 ‘그런 쉬운 질문은 나의 운전기사도 알 겁니다. 거기 맨뒤에 운전기사님, 일어나서 이 질문에 답변해 보세요’ 라고 했다 한다.

이 이야기는 유머로 나온 얘기이고, 이 에피소드의 사실 여부는 나도 모른다.


이 에피소드는 '단순 암기'와 '진정한 이해'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제대로 음식을 하는 것과 설탕을 한컵씩 부어서 요리한 결과물은 같을 수가 없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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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을 어깨너머 야매로 배운 베기장 고인물이, 고수인 척 하며 초보자를 가르치고 있다. 기본기를 배운적이 없고, 근본원리와 이치를 모르면서 무술을 가르치는 것은, 아인쉬타인의 운전기사 썰과 비슷한 것이다.

최근에는 야매 무술인 뿐 아니라, ‘병행’과 ‘찍먹’도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무술 도장을 돌아다니며 기술을 쇼핑하는 사람들은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상당히 많았다.


무술을 정식으로 전수받지 않고 '야매'로 배우거나 훔쳐 배워서 대성한 사례를 고대부터 지금까지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무술은 대개 스승으로부터 체계적인 가르침을 통해 전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몰래 배우는 행위는 비윤리적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완전한 숙달에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술계에서 훔쳐배워서 대성한 사례로 거론되는 것은 양가태극권의 창시자 양로선의 일화가 있다.


태극권의 한 유파인 양식 태극권의 창시자인 양로선(楊露禪)은 종종 몰래 무술을 배워 대성한 인물로 언급된다. 그는 진가구(陳家溝)의 진가권(陳家拳)을 배우기 위해 그곳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며 담장 너머로 진가권의 수련을 훔쳐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후 그는 진가권의 정수를 파악하여 자신만의 태극권을 창시하고, '양무적(楊無敵)'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무술가로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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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4465.JPG 양로선이 올라가서 무술을 훔쳐보았다는 담장
IMG_4466.JPG 양로선이 무술을 배웠다는 마당


그런데 양로선이 무술을 훔쳐 보면서 입문한 것은 맞지만, 사실은 스승밑에서 정식으로 사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인 생활을 그만두고 진가구를 떠난 이후에도, 세 번이나 진가구를 방문하여 장기체류 하면서 계속 배웠다. 양로선이 태극권을 몇 번 훔쳐보고 얼렁뚱땅 배운 것이 아니다.


무술이든 다른 어떤 전문 기술이든, '야매'로 훔쳐 배우는 것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진정으로 대성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스승 아래에서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따르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선 깊은 이해와 통찰, 그리고 올바른 가치관의 형성까지 포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무술 - 단순한 기술을 넘어선 정신 수양


무술은 단순히 싸우는 기술을 넘어선다. 그것은 육체를 단련하고, 정신을 수양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철학을 담고 있다. 이러한 깊이를 '야매'로는 결코 얻을 수 없다.

무술 외의 다른 전문 기술 분야에서도 스승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좋은 스승의 지도가 없으면 그 재능을 꽃피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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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이든, 음악이든, 요리든, 미술이든 어떤 전문적인 기예든 '야매'로 훔쳐 배워 대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더라도, 그것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진정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이자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훌륭한 스승 아래에서 정규 커리큘럼을 성실하게 따르는 과정이 필요하다.


좋은 스승은 단순한 기술 전달자를 넘어, 제자의 재능을 발굴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며,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함양하도록 돕는 인생의 나침반과 같다. 그들은 지식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고, 시행착오를 줄여주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고 싶다면, '야매'의 유혹을 뿌리치고 훌륭한 스승을 찾아 그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확실하며, 궁극적으로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기억해야 한다.


진검 베기장의 야매 교습 사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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